요즘 아이들은 답을 찾는 데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검색창에 몇 단어만 넣으면 요약이 뜨고, 듯사람(AI)은 더 매끈한 답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답이 쉬워질수록, 학교는 더 답을 묻습니다. 수행평가도, 보고서도, 발표도 “정답처럼 보이는 형식”을 요구합니다. 아이들은 배움을 위해 쓰기보다 ‘평가를 통과하기 위해’ 씁니다. AI 시대의 역설입니다. 정답은 흔해졌는데, 우리는 정답을 고르는 기술에 더 집착합니다.
얼마 전 어느 교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아이가 아주 그럴듯한 보고서를 냈고, 교사는 ‘듯사람(AI)이 쓴 것 같다’며 의심했습니다. 아이는 억울해했고, 교사는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결국 남는 것은 불신과 통제였습니다. 표절 검사, 금지 규정, 감시가 늘어납니다. 여기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듯사람(AI)를 막는 것이 공정인가, 배움을 바꾸는 것이 공정인가?”
이럴수록 배움의 중심은 바뀌어야 합니다. 듯사람(AI)이 갈음(대신)할 수 있는 것은 ‘정답 찾기’입니다. 듯사람(AI)이 대신하기 어려운 것은 ‘물음 세우기’와 ‘근거 세우기’, ‘함께 해내기’입니다. 그러니 학교는 아이를 정답 기계로 만들 것이 아니라, 물음의 주인으로 세워야 합니다. 나세움 배움이란, 남의 답을 잘 베끼는 능력이 아니라, 내 삶의 문제를 내 말글로 뜻을 묻고, 뜻나눔으로 근거로 설득하며 길을 열고, 뜻해냄으로 삶을 바꾸는 힘입니다.
그런데 기존의 교육/학습 틀은 이 전환을 자꾸 방해합니다. 교육은 누군가가 가르치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학습은 누군가가 요구한 목표를 달성하는 쪽으로 굳기 쉽습니다. 그 틀 안에서 “인격을 키우자”는 말은 곧 “인격도 평가하자”로 변질될 위험이 큽니다. 경주 트랙 위의 인격은 결국 점수의 언어가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길 위의 배움은 다릅니다. 물음·근거·뜻나눔·해냄이 남고, 그 과정이 곧 ‘스스로 서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 듯사람과 더불어 시대의 공정은 더 분명해야 합니다. 공정은 ‘같은 문제’가 아니라 ‘도달을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누구나 기초소양에 닿도록 돕고, 각자의 탐구와 해냄이 존중받도록 기록하는 것. 교실에서는 “듯사람(AI)을 쓰지 마라”가 아니라 “듯사람(AI)을 어떻게 썼는지 밝히고, 내 판단과 근거를 덧붙여라”로 규칙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듯사람(AI)이 넓히는 격차(정보·도구·환경의 차이)가 줄세움으로 달라붙지 않습니다.
오늘의 뜻배음: 오늘 쓰는 글 한 줄이라도 “정답”이 아니라 “내 물음”에서 시작해 보기.
다음 질문: 듯사람(AI) 시대에 학교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배움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