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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꿈 Sep 17. 2018

보육교사가 된 이유

나의 또다른 길이 되다

 본래 나의 꿈은 작가였다.



 사실 아이들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졌던 사람도 아니었고, 지나가는 아이를 보며 귀엽다거나 예쁘다고 생각하며 한참을 바라본 기억도 없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취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내가 좋아했던 것은 만들고, 꾸미고,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언니, 오빠보다는 어린 동생들이 많아 함께 놀고, 돌봐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험들 때문인지 나는 부모님과 의견을 나누며 보육교사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학교에서 듣는 과목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분야라서 신기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깊이 있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보육학개론부터 영유아교육에 대한 다양한 과목들을 듣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아야만 했고, 현재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생각해보아야만 했다. 나에게는 그런 점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이다. 어릴 적 나의 모습과 나를 기르던 부모님, 선생님의 모습들을 떠올려보면서 책에 나온 학자들의 말과 비교해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조금 더 솔직하게는 어른들의 잘못을 꼬집어내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교과목에 나온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아동을 하나의 인격체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 정의내리고 있었고 나의 성장과정 속에서 어쩌면 당연하게도 존중받지 못했던 일들이 하나 둘씩 떠올랐기 때문이다. ‘역시 그 때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라는 생각 하나로 재미를 느꼈다.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잘못했을 때에 매를 맞는 것은 당연했지만 책에서는 잘못된 훈육방법이라 말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사고를 치는 것도 당연했고, 오만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도 당연했고, 미숙한 생각도 성장의 과정 중 일부였다.


 내가 자라온 현실 속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아이들은 어른들의 계속된 잔소리와 간섭을 견뎌내지 못했다.

 내 기억으로는 스스로 아직 어리니까 몰라서 그렇다, 아이가 모르면 어른이 책임지고 이끌어 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 왜 아이의 책임으로만 몰아붙이느냐고 나름대로 주장했던 것 같다. 어른들이 하는 말과 행동들이 그렇게나 완벽하고 타당한 것들인지 늘 의문스러웠다. 학교에서 부모와 자녀, 가정환경, 양육방식 등에 대해 익히고 생각해보면서 나의 그런 주장들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고 무언가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에 어른들의 잘못을 꼬집어내는 재미를 찾았던 만큼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기에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일석이조’였다. 학교생활을 하면서는 보육교사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자아성찰의 시간을 주로 보냈던 것 같다. 나는 그 때까지도 온전히 아이들에 대한 생각보다는 대부분 나 자신에게 머물러있었다. 당장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대학교 생활에 자유분방함을 느끼고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에 집중하며 하나씩 성취해나가는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당시 교사의 인성에 대해 핫이슈였던 만큼 내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고, 갈고 닦는 일도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보살피기 이전에 나 자신부터 올바른 됨됨이를 가져야하기 때문이다. 나부터 잘해야 누구든 나를 보고 배울 점이 있다고 했다. 실제 일부 과목에서도 보육교사의 인성이나 자질에 대해 고민해보도록 하는 부분이 있고,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양한 성격 검사와 지능 검사를 경험하면서 점차 자신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알게 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 대한 공부라면 당연히 흥미로울수밖에!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고, 의미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인데 나는 언어 지능과 자아성찰지능이 같은 점수로 가장 높게 나왔다. 현직 보육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상위 지능과 동일하다고도 하여 정말 적성에 맞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실제 근무 중인 현재로서도 적성에 잘 맞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영유아와 관련된 다양한 이론들을 배우게 된다. 그런데 그 이론들의 명칭부터가 참 신기했다. 놀이이론, 마음이론 등등……. 아이들이 놀이하는 것에도 일정한 단계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마음’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심리학에서도 배우는 몇 가지의 이론들을 유아교육에서도 접한다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신기했다. 덩달아 ‘사람’을 대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기도 했다.



 학교생활이 재미있었던 또 한 가지의 이유는 역시 만들고, 꾸미고,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만 할 수 있으면 되었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놓은 집합체처럼 다가왔다. 그 곳엔 정해진 틀이라곤 없었다. 물론 기본적인 커다란 틀은 있었지만 그 안에서 자유롭게 교수 방법을 선택하고, 교실 환경을 구성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오면서 정해진 틀이 너무 갑갑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유아교육은 역시 매력적인 게 분명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1년 내내 큰 변화가 없는 교실,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 가는 과목이 아닌 주입식 교육이 주로 이루어져 너무나도 지루하고, 갑갑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유아교육에서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아이들의 작품을 꼭 게시판이 아니어도 바닥, 창문, 천장 어디에든 전시할 수 있었고, 교육 내용도 반드시 계획된 것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의 흥미와 요구에 따라 다양한 활동을 제시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한 가지의 주제 속에서 아이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교사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적절한 재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아직 학교에 가지도 않은 어린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어디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학교에서 영유아 시기의 아이들에 대해 공부하지 않았다면 3살 아이들은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 5살 아이들은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 전혀 가늠하지 못했을 것이다. 보육실습을 나가기 전까지도 실제 그 연령대의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지내고 있는지 가늠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연애를 책으로만 익혀서는 안 되듯 아이들 또한 책으로만 익혀서는 전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보육실습을 나갈 당시에는 사전관찰실습을 나간 이후로 본 실습 4주의 기간이 주어졌다. 실습 기간 동안에 어린 아이들의 1년은 그 차이가 무척이나 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고, 그 작은 아이들도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들은 훨씬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았다. 당시에는 3살 아기들도 자기 자리를 기억한다는 것이 참 신기했으니 말이다.


 한 달 동안 실습을 하면서 나에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에 대한 인식이었다. 평상시에 영유아들과 함께 지내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작고 어리고, 어른의 보호와 도움이 많이 필요한 아이들이라는 생각 정도였는데 막상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보니 아이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고, 참 순수하고 사랑이 가득 차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첫 날이라 내가 낯설었을텐데도 먼저 다가와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이것저것 궁금해 하는 모습들이 귀여웠고,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더 성장한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정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이런 것 저런 것 따질 줄을 몰랐다. 또래 간에 다툼이 일어나도 금세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잘 지내기도 했다. 자기보다 부족한 부분이 있는 친구를 스스로 도와주기도 했고, 또 도와주는 것을 즐겁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2014.10. 보육실습일지 소감 中


 지금에 와서 실습생 때 썼던 글, 초임 시절에 썼던 글들을 읽어보면 나 또한 얼마나 순수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했는지가 드러난다. 조금은 유치해보이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장 순수한 교사로서의 모습인 것 같아 지금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도 한다. 실습생 시절에는 낮잠 시간마다 “엄마-엄마-”하고 울던 아이를 재워주면서 가슴이 미어지기도 했었다. 어린 나이에 엄마와 하루를 함께 하지 못하고 기관에서 떨어져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내가 저 아이들 나이 때만 해도 엄마와 하루 종일을 함께 보내면서 동네 놀이터에 나가면 친구들이 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기관 생활을 한다는 게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아직은 각자의 입맛대로, 각자의 성격대로, 각자의 가정 분위기에 맞게 그 안에서 편안하게 자라야할 나이인 것 같은데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과 같으니까 말이다.



 우연히 책장에서 수첩 한 권을 펼치게 되었는데 그 안에는 아이 한 명, 한 명 마다 페이지별로 정리가 되어있었다. 초임 시절에 이 아이는 얼마만큼 먹고, 어떤 음식을 주로 좋아하는지, 성향은 어떻고, 어떤 놀이를 주로 하는지, 무엇에 안정감을 느끼는지 등등 사소한 것까지 기록해 두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한 아이를 금방 파악해내는 일이 어렵다고 판단했던 터라 그런 노력을 기울였던 것 같다.


 이 수첩의 맨 앞 장에는 이 한 문장이 적혀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가치로운 일이다.’

 취직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성심성의껏 나의 일을 대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그 시절을, 잊지 않고 기억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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