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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꿈 Nov 17. 2018

엄마, 아픈 게 아니라 그냥 몸이 불편한 거야

그 해, 그 아이들과

 나의 기억 속에 가장 아름답게 남아있는 일 년이 있다. 그 해는 바로 처음으로 장애통합반 교실을 맡았던 해이다. 학부모 상담을 하면서 한 어머니께서 해 주신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뭉클해졌던 적이 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는 아이에게 물었다고 한다.

 “반에 아픈 친구가 있다고 했지? 그 친구는 잘 도와주고 있어?”

 그랬더니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엄마, 아픈 게 아니라 그냥 몸이 불편한 거야. 아픈 거 아니야.”

 그 말을 듣고 장애통합반 교실에서 아이가 무언가를 깨닫고,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선생님들께 감사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내가 장애우를 처음 대해보았던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자원봉사를 갔을 때이다. 로비에 서서 안내를 기다리고 있을 때, 산책을 마치고 온 듯한 20살 남짓 되어 보이는 남자가 느닷없이 나의 손목을 잡고 어딘가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다 나를 의자에 앉히고, 자신도 의자에 앉은 채 신문지를 펼쳐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짚는 것이었다. 나는 신문지에 있는 글자와 그림을 읽어주었고, 그 오빠는 신문지를 다음 장으로 넘기며 계속해서 손가락으로 글자와 그림을 짚었다. 느닷없이 손목을 잡힌 채 어딘가로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나는 사실 겁이 났었다. 그래도 무언가 소통이 되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어 다행이었다. 사실 장애우들이 생활하는 그 곳에서 나는 꽤나 낯설었고, 두어 번 봉사활동을 간 뒤로는 다시 방문했던 일이 없었다.


 장애통합반 교실은 정교사와 장애통합교사가 하나의 교실을 함께 이끌어간다. 나와 함께 했던 장애통합교사는 경력이 많은 분이셨고, 그만큼 배울 점도 많은 분이셨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반편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를테면 여러 가지 게임 활동을 하면서 승패보다는 협동에 의미를 두어 진행하는 것이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는 방법에 대해서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 반 친구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상황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애통합반 아이들은 한 반에 3명으로 구성이 된다. 그 중에는 발달이 늦고, 공격성을 보이는 아이도 있었는데 그 때마다 아이들은 그 친구에게 “하지 마. 아파.”하고 비교적 단순하고 짧은 말로 알려주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미안해.”하고 사과했을 때 “괜찮아.”하고 받아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이미 그러한 상황들에 익숙해졌고, 당연한 듯 그러한 상황이 펼쳐질 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 아이가 공격성을 보이는 경우는 대개 밥 먹기를 거부할 때이거나 놀이시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놀잇감 정리하기를 거부할 때와 같은 경우였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을 제외하고는 아이들과 어울려 뛰어 노는 것을 좋아했고, 친구들의 이름을 몽땅 외워 부르기도 하였다. 그 아이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저귀를 뗀 첫 날에도, 글자를 읽기 시작했던 날에도 교직원들은 모두 놀라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치 경사가 벌어진 것처럼 말이다.


 또 한 명의 아이는 자폐성향이 있었는데 숫자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다. 자폐아들은 의도치 않은 행동들이 자꾸만 나타나게 된다고 한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마음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한 자리에서 뱅글뱅글 도는 행동과 같은 상동행동이 나타난다. 숫자가 순서대로 쓰여 지지 않았을 때, 원하는 노래가 계속해서 나오지 않을 때 그 아이는 꼬집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행동을 보이곤 했다. 그 아이와 가까이 있는 장애통합선생님의 팔에 난 멍자국이 흐릿해질 때쯤이면 또 다시 새로운 멍자국이 짙어지곤 했다. 선생님께서는 그 아이가 무언가 한 가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체화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도를 닦는 마음으로 가르치고, 또 가르치셨다.


 3명의 아이 중 한 아이는 뇌병변이 있는 아이였다. 당시 7살이던 그 아이는 “엄마.”“아빠.”와 같은 단순한 몇 가지의 단어를 말할 수 있었고, 하체에 힘이 없어 6살 때까지만 해도 걷는 것에 무척 힘이 들었다. 발로 바닥을 딛고 일어서기조차 힘들어했다. 그 아이는 매일같이 보조기구를 이용해 놀이터에서 걸어보기를 했고, 손잡이를 잡고 계단 오르내리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1년이 넘도록 연습을 반복하자 그 아이는 보조기구가 아닌 교사의 손가락만 잡고도 한 걸음씩 떼기 시작했고, 아무런 도움 없이 1~2초만이라도 스스로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걷지 못했던 아이가 스스로 서고, 조금씩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는 것 또한 정말 경이로운 일이었다.


 장애통합선생님의 희생정신이 놀라운 것은 끊임없는 반복 교육으로 장애통합반 아이들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장애통합반 아이들도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반복해서 가르치면 스스로 습득해나가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그저 남들보다 조금 느릴 뿐, 다른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보통 사람들은 어느 한 부분이 불편하다고 하면 안타까운 마음부터 가지고, 밥 먹는 것이든, 손 씻는 것이든, 무엇이라도 도우려는 마음이 앞선다. 우선 나의 경우만 보더라도 장애우를 대할 때에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하는 것인지, 어떤 부분을 어느 정도 도와주어야 잘 도와주는 것인지 도통 가늠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 봉사활동을 갔을 때에도 훨씬 낯설고,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장애통합반 아이들도 다른 아이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장 좋은 태도라고 생각했다. 그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처럼 스스로 해낼 수 있는 범위가 있고, 그 범위까지는 해볼 수 있도록 계속해서 격려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무조건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것이 그들을 위한 일은 아니다. 영유아기에 나타나는 개인차를 고려하듯이 그 아이들도 개인차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에 맞게 수준별로 활동이나 적절한 교구를 제공해주면 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장애통합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한 1년의 시간이 이토록 아름답게 남아있을 수 있는 건, 그 아이들로부터 나 또한 무언가를 깨닫고, ‘함께 하였다는 것’에서 작은 감동이 내 마음 속 한 켠에 깊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배경에는 장애통합반 선생님의 유능함과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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