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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꿈 Oct 25. 2018

언젠가는 어른

조금 더 멀리 내다본다면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이였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생택쥐페리《어린왕자》中.    


 나도 가끔은 오지랖 넓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작고 어린 아이들을 혹여 상처라도 나지 않을까, 스트레스라도 받지는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고 애지중지 살펴가며 보살피는 부모님들을 보면서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났을 때 저 아이와 가족들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보기도 한다.


 누군가가 엄마나 아빠가 되어 쓴 책들을 읽어보면 역시 아이들은 생각만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옛날부터 정설처럼 내려오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라는 말을 여실히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만나는 작고 어린 아이들은 부모님이 세상의 전부이고, 어른들의 말이면 다 옳다고 생각하고, 조금 유치한 방법으로도 금방 넘어가서 의도적으로 나쁜 길로 빠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올바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그 개념조차 서지 않은, 그만큼 순수한 나이이기 때문이다.


 가령 교실에서도 친구들끼리 다툼이 있으면 꼭 교사에게 묻곤 한다.

“선생님한테 이른다!”

“거 봐, 선생님이 그렇다잖아.”

 그들에게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은 교사의 말 한마디인 것이다.

 20살이 넘은 지금도 아버지는 종종 나의 아주 어린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자신의 무릎 정도의 높이를 가리키며 “딱 요만했었는데. 언제 이렇게 불쑥 컸나?”하고 혼잣말처럼 이야기하시곤 한다. “어릴 때는 볼에 뽀뽀도 해 주고, 폭 안겼는데 이제는 다 큰 숙녀가 되었네.”하고는 어쩐지 씁쓸해 보이는 웃음을 짓고는 안방으로 돌아서신다. 그런 상황에서 나의 모습이란, 딸 치고는 제법 무뚝뚝한 성격 탓에 아버지의 그런 말을 듣고도 별 다른 반응이 없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버지의 그런 심정을 이해하기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탓일까. 아니면 나의 용기가 부족한 탓일까. 애교가 많고, 그저 “아빠!”하고 부르며 졸졸졸 뒤를 따라다니고, 등에 업혀 다녔을 어린 시절의 조그마한 나의 모습을 아버지는 아직도 선명한 기억 속에 간직하고 계신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인생은 실망의 연속인 것 같다. 어른이 되기만 하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렸고, 누군가를 열렬히 몸 바쳐 사랑했지만 그것 역시 영원할 수는 없었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들을 찾아서 하게 되고, 그 안에서도 지키고 싶었던 어떤 가치를 사회생활 틈에서 지켜내기도 어려웠다. 한 때 기대고, 마음을 나누었어도 시간이 흘러 연락이 뜸해지는 인연들이 늘어갈 때마다 새로운 인연들을 대할 때에도 선뜻 모든 마음을 다하기가 어렵다. 앞으로도 실망할 날들이 무수할 것을 생각하면 그냥 체념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또 기대하며 살게 되지만, 혹여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저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2017.05.

 고사리 손으로 그저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던 어린 아이는 세월이 흐르는 대로 그 시간을 먹고 불쑥 자라난다. 부모님의 따뜻한 품 안에서 지내다 그 품에서 점차 벗어나기 시작할 때 아이는 비로소 ‘어른’이 되어있음을 실감한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그 아이도 자식을 갖게 되었을 때 부모님의 마음을 어떤 말로 형용할 수 있을 것인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다는 것, 마냥 어리기만 한 내 아이가 낳은 더 작고 여린 존재를 대한다는 것. 배우 김수미는 한 TV프로그램에서 손자, 손녀를 보면 제 2의 인생이 열린다고 했다. 지금까지의 인생과는 또 다른 행복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식도 어른이 되고, 부모도 더 큰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함께 일했던 한 선생님께서는 4살 아이 손을 잡고 출퇴근하는 다른 선생님을 보며 다섯 살까지가 딱 품 안의 자식이 맞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때를 누려야한다며 농담 아닌 농담을 던지기도 하셨다. 딱 품 안에 안을 수 있을 때까지가 내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은, 그 때까지는 오로지 부모님 말이면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고 따르는 때라서 그렇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가고, 사춘기가 오고, 대학생이 되면서 아이들은 조금 더 복잡한 고민들을 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을 겪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만의 주관을 만들어갈 것이다.


 어쨌든, 아이들도 언젠가는 어른이 된다.

 그래서 때로는 ‘아주 먼’ 미래를 내다보며 아이를 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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