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이 자아의 출몰지, 회사

사(社) 생활 #프롤로그

by Secret ef
회사의 실체.
나와 크게 겹침 없는 '자아들의 결집체'인 공간





사람은 관계를 맺고 산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시간을 지나왔으며 이 시간 속에서 우린 서로 다른 자아를 형성했다.


회사란 '출근'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나이가 되기까지 각기 다른 인생을 거쳐 빚어낸 각양각색의 자아가 매일같이 모였다 흩어졌다는 반복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이유로 회사에 한 발 내딛는 순간부터 우리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자아들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각기 자아들마다 흘러 온 인생의 모양이 다를 것인데 이 자아들을 예측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더욱이 문제는 변이 자아의 탄생이다.

나를 포함한 모든 자아들은 존재의 목적이 매우 뚜렷한 '회사'의 존립을 위해 필요한 직위, 직급, 직책 등의 체재라는 옷을 한 겹 더 입어야 하며 이 순간 <변이 자아>로 재탄생된다.


나와는 다른 자아들을 마주하는 자체도 곤욕스러운데 세상에! 변이 자아들과 마음 맞춰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일'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니. 회사에서 적게는 하루에 십 수 번 '저 사람은 대체 왜 저러는 거야...!'라는 마음의 말이 화라는 제어하기 힘든 감정과 함께 단전 어딘가에서부터 치밀어 오른다. 이 감정의 소용돌이가 휩쓸고 지나가면 회사, 회사 사람들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오고 당장이라도 회사를 떠나고 싶은 욕구가 치솟는다.



사(私) 생활의 자아 = 나의 순수 자아

사(私) 생활의 자아가 만들어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고 이 시간 속에는 인내, 노력이 수없이 수반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졌다. 왜? 매 순간 지나 온 모든 과정은 누구나 처음이었으니까. 처음 마주한 현실에서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해왔고 그 선택의 결과를 통해 통증을 동반한 성장이라는 것을 해야 했으니까.


그러나 사(社) 생활의 자아는 입사의 순간부터 회사의 존속, 성장을 위해 우리도 모르는 사이 '회사에 부합하는 자아'를 당장 만들도록 강요받으나 많은 사람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사(社) 생활의 자아를 만들기 시작한다.


사(社) 생활의 자아가 만들어지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社) 생활에서 형성되는 자아가 자연스럽게 사(私) 생활의 자아와 마주하고 충돌하고 조율하는 '이상적 자아형성과정'을 회사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회사는 회사의 발전이라는 방향에 부합하는 자아를 걸러내기 위해 '인사평가'라는 제도를 한다. 이 평가는 회사의 목표 실현에 최대한 근접한 사(社) 생활의 자아에 후한 점수를 주며 높은 자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높은 자리는 한정적이다. 어쩔 수 없이 사(私) 생활의 자아보다는 사(社) 생활의 자아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 결국, 사(社) 생활의 자아는 사(私) 생활의 자아를 침식하기도 하며 사(私) 생활의 자아와 대립되기도, 타협하기도 하며 혼란스러운 변이 자아가 된다. 변이 자아가 탄생한 초기에는 변이 자아의 탄생이 불편하게 느껴져 '이 길이 맞는 길인가' '이게 내가 생각한 삶인가' 등등 많은 고민을 하지만, 일정 시간이 흘러 회사에 익숙해지면 변이 자아가 내 자아라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가 오늘도 상식적이지 않다 평가한 회사의 어떤 사람은 아마도 사(私) 생활의 자아를 잃고 사(社) 생활의 자아로(만)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겠다. 반대로 내가 닮고 싶은 어떤 사람은 사(私) 생활의 자아와 사(社) 생활의 자아, 두 자아가 끊임없이 충돌-교류-조율하는 조화 과정을 통해 이상적 자아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오늘도 회사에서 사람으로 인해 부정적 감정을 느꼈다면, 각기 다른 인생을 살며 형성한 자아들이 회사라는 시스템에 의해 변이 자아가 되어 그런 것이라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렇다면 오히려 두 자아의 경계를 인지하지 못하는 상대가 측은해질는지도.




저자는 오랜 회사생활로 심신이 매우 지친 상태였다.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오랫동안 고민하여 얻은 최근까지의 결론은 '회사는 불완전한 자아가 많기 때문'이었다.


회사 입사 전까지 회사 내 모든 이들이 빚었던 예뻤던 자아는 회사 입사와 동시에 다른 자아가 되길 강요받았고, 이로 인해 예뻤던 자아는 다른 자아로 변형되었으나 개개인이 자아의 변형을 들여다보기 전에 회사는 이미 '다음(NEXT)'의 계획과 실행을 요구했다. 이로 인해 회사 내 모든 개개인은 각자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자아의 성장이 이뤄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성찰할 여유 없이 경쟁시장으로 뛰어들었다. 이 글을 쓰는 본인 역시 불완전한 자아로 회사생활을 하고 있을는지도.


본질을 보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회사는 실체가 없다. 그저 동일 목적을 위해 고용된 사람들이 모여 그 목적을 이행할 수 있는 움직임의 공간을 제공할 뿐이다. 회사는 목적 달성을 위한 이상적 조직구조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빠듯하다. 때문에 회사는 회사라는 공간에 있는 모든 변이들을 이상적 변이로 성장시키는 데는 아쉽게도 큰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그러니, 회사에서 사람으로 인한 문제는 지속적으로 발생될 것임이 자명하다. 사람에 의한 문제의 상황은 중단될 리가 없다는 의미이다. 이를 깔끔하게 인정하고 나니 인식의 변화가 왔다, 모든 상황에서 오는 압박을 마음과 몸으로 고스란히 받고 이를 짜증과 화로 풀기보다는, 각 상황의 압박을 어떻게 현명하게 풀어나갈 것인가로 말이다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회사 동료 누군가는 나로 인해 유사하거나 같은 압박을 받고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사람과의 관계를 끊지 않는 이상 회사에서 사람으로 인한 문제는 없을 수가 없으니까.


저자는 회사원 모두에게 말하고 싶었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불완전한 변이 자아'가 될 수 있기에, 혹은 이미 되었을 수 있기에 지금의 내 자아가 진정한 내 자아가 맞는지 살펴보라고. 자신도 모르게 사(社) 생활의 자아가 내 진정한 자아라 여기고 있는 게 아닌지.



photo by. Marc Mueller (pe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