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자화상
어제 낙원상가 가던 길에 마주친
모피코트 아저씨를 오늘 저녁에도 보았다.
Four Button 검은색 가죽자켓에
부인 것인지, 본인 것인지 알 수 없는
모피코트를 걸쳐 입은 아저씨는
저녁 때라 그런지 오늘은 선글라스가 없다.
체크무늬 모직 통바지에 감색구두는 그대로
호남형에 풍신이 좋다.
오십대 후반즈음으로 보일까
육십대나 그 이상이면 꽤 동안 소리 들었겠다.
오늘은 날씨도 푹하고- 심지어 영상 7도라는데
모피코트 아저씨는 덥지도 않나
원래 매일 그렇게 입고 다니는걸까
종로3가에는 매일 나오는걸까
아니면, 우연히 마주친 것일까
종로3가에 올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퇴근무렵 적적해진 마음에
한잔 술이 당겨서
휴대폰을 뒤적거렸으나
마땅치 않아
허허로움 안고 전동차에 올랐는데
문득, 떠오른다.
이 공허는 실재하나
관계와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것일까
사람을 만나서 해소될 성질의 결핍인가
한바탕 술에 젖어 속 안의 것을 끄집어 내고
짖이기면 사라지는 것일까
대관절, 나와 만날 그 어떤 이가
그런 것 따위에 관심조차 있겠나
모피코트 아저씨는 종로3가에 왜 나왔을까
춥지도 않은 입춘 직전의 날씨에
가죽잠바 모피코트 걸치고
오늘도 종로3가에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Rockers에 앉아 버드와이저를 세병 시키고
70-80 락음악을 들으며
조심조심-
혓바닥으로 입안 가득 머금은 홉의 맛을 찾아 내듯
내밀한 - 숨길 것도 없는 - 마음 속 들여다봐
아-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소통하고 싶었던 사람은-
공허의 저편에
무심한 얼굴로 제 반쪽을 찾아 헤매는
모피코트 아저씨
버드와이저에 마른안주를 씹어 먹으며
모피코트를 벗어 던지고 싶은
불혹의 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