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12월 크리스마스까진 휴일이 없어서 더 암울하게 느껴졌다. 어제 잠은 자다 깨다의 반복이었다. 눈을 떴지만 일어나기가 싫어 한참을 누워있다가 준비하고 창밖을 봤더니 비가 오고 있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했더니 상사는 자리에 없었다. 아침마다 얼굴 보고 인사하고 싶지 않은데 인사 안 한다고 뭐라고 하니 억지로 했더니 그는 얼굴을 보지 않은 채 대답하곤 했다. 오늘은 그가 자리에 없어서 안도했다.
몇 번이 곤 기안을 반려당해서 아예 파업했다. 올린 기안을 회수해야 했지만 그마저도 누가 이기나 보자 하고 회수 안 하고 그대로 놔뒀다. 실무자가 일정에 쫓겨하는 줄 그도 알고 있지만 핑계를 대며 결재를 안 해준다는데 내가 수정사항을 바로 반영하여 올린다 한들 결재가 날까? 그럼 또 리젝 당할 것이다. 그래서 그가 수정하라고 한 견적서를 한동안 노려보고 있었더니 그는 또 대놓고 내 화면을 보는 게 화면보호기를 통해 보였다. 그럴 때는 타인이 날 훔쳐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수치심이 든다. 하지만 월급에는 그런 게 포함되어 있는 거니까 구질구질하게 다닌다.
수정은 애초에 다 했지만 월요일 오전을 날려버리고 나니 점심시간이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사직서 내겠습니다' 한마디면 되는데 그걸 못해서 끙끙대고 있는 나 자신도 한심했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회사를 그만두면 매달 창출해야 할 월급, 하지만 애초에 프리로 전향한 친구가 했던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라는 말이 혼재가 되어 서로 싸웠다. 점심에는 집에 와서 어머니가 가져다준 청국장을 끓여 먹었다. 온 집안이 청국장 냄새로 도배되었고 다 먹었을 땐 속이 니글니글했다.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시킨 다음 또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곤욕스러워했다.
회사에 도착하자 상사는 할 말이 있는 것처럼 괜히 내 자리 옆의 다과를 집어 들며 나의 눈치를 봤다. 천성이 예민한 나는 그런 움직임 하나하나가 신경이 쓰이고 다 알지만 모른 척하고 있는다. 역시 그는 말을 걸었다. '그거 수정해서 올려야지 왜 가만 놔두고 있어' 나는 힘없이 '예'라고 했다. '기안할 때마다 반려했잖아'라는 말은 마음속으로 삼켰다. 어차피 내가 이유를 말하려고 해도 그는 듣지 않을 것임을 과거의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1초도 안돼 준비해 놨던 기안을 올렸지만 그는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1시간 뒤에 돌아왔다. 결재를 올리라고 말하면서 결재하기 싫은 것이었다. 그는 역시 돌아와서 견적서의 투입률 핑계를 댔다. 계약의뢰건도 아닌 예산변경건에 왜 견적서가 들어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올렸더니 또 투입률을 굳이 퍼센티지로 조정해야 한다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나를 불러서는 또 한참을 옆에 서있게 했다. 정말이지 이제 이런 건 그만하고 싶었다. 나는 그 옆에서 '리트를 준비해야 해. 그럼 이런 소모적인 시간은 겪지 않아도 되니까. 라이선스가 안될 수도 있지만 여기서 겪는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그게 훨씬 이득인 거야'이런 생각을 하면서 공직인 사람들이 쉬쉬하며 리트를 준비하고, 합격한 사람들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산다는 기사 내용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렇게 기안한 결재문은 다음 결재자에게 수정을 당했다. 그가 수정한 투입률 때문이었다. 6개월의 과업수행기간을 그는 7개월로 조정했는데 그 때문이었다. 나는 야마가 돌아서 간신히 화를 참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내가 실수했네'라고 했지만 결국 기안은 다시 내가 회수해서 올려야 했다. '이 짓거리를 언제까지 해야 되냐' 나는 이미 죽은 신에게 소리쳤고 나 자신에게 소리쳤다. 졸업하고 취직을 못해 집에 있는 친척동생이 부러워지는 시점이고, 역시 취업이 안돼 학원가에 있는 친척친구도 차라리 그녀는 이런 일을 겪지 않으니까 어쩌면 취업이 된 게 이 모든 고통의 시작이었구나 통탄이 들었다. 나는 견딜 수가 없어 사색이 된 채로 조퇴를 하고 회사를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