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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Oct 16. 2024

위로가 필요할 때

그렇게 조퇴하고 돌아오니 시간은 다른 개념으로 흘렀다. 공간을 바꾸기만 했는데도 회사에서의 숨 막히는 느낌이나 시간이 아주 느리게 가는 느낌은 아니었다. 확실히 같은 2시간이었지만 집에서 활용하면 더 효율적으로 쓰는 기분이었고 실제로 그랬다. 나는 한동안 인강을 봤는데 그럴수록 퇴사에 대한 갈망은 커져갔다. 한참을 인강을 봤는데도 퇴근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 정말이지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한 달에 삼백만 원만 있으면 살 거 같은데 그게 안 돼서 하루에 8시간을 저당 잡혀야 하는 삶은 종속이었다.


아까부터 두통은 지속됐다. 밖엔 비가 내리고 있어 산책을 나갈 수도 없었고 요가수업이 있는 날도 아니었다. 머리는 지끈지끈 더 아파왔다. 나는 부리나케 마사지를 검색했다. 이런 날은 타인의 힘으로라도 내 몸의 기를 회복해야 했다. 근처의 안마원을 검색해 전화했지만 당일 예약은 안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오늘 받아야 했다. 결국 예전에 살던 동네에 전화했다. 거긴 낙후되고 이제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가지 않는 곳이었지만 맹인 안마사가 공을 들여 만져주는 곳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그는 몸의 근육을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있었고 받고 오면 확실히 개운해짐을 느끼곤 했다.


나는 고조된 신경과 다급함으로 '한 시간 뒤 가도 되죠?'라고 물었다. 그는 오랜만이라고 했다. 비를 뚫고 운전을 하는데 '20km를 운전해서 가야 하나'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 거리를 감안하고서라도 받고 싶었다. 가본 적이 있는 곳이었지만 갈 때마다 길은 헷갈렸고 전화를 해서 위치를 물어보고 나서 주차하고 올라갔다. 터덜터덜 계단을 올라가니 슬리퍼가 바로 신을 수 있게 방향이 잡혀 있었다. 그런 세심함이 가게를 찾게 하는 이유였다. 발소리를 들은 지 그는 가게로 들어서자 인사를 했고 초점 없는 그의 눈은 너무 오랜만이어서 생경했다. 그에게 눈을 돌렸다가 황급히 옷 갈아입는 곳으로 간 이유였다.




가게의 옷은 항상 약간의 땀냄새가 났다. 평소 같으면 그런 것에 질색을 하며 발길을 끊었겠지만 나는 가끔 여기가 생각이 났다. 그건 나만한 딸이 있다는 그의 말 때문이기도 했고 그가 삶을 향해 보여주는 진지함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그의 상황이었다면 그럼에도 삶을 긍정하며 살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그는 지압점을 누르게 시작했고 신기하게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두통이 옅어져 가는 게 느껴졌다. 그는 목에서 승모근으로 이어지는 지점을 누르다가 가슴 위 근육을 찬찬히 풀기 시작했다. 쇄골을 따라가며 차츰차츰 누르는 것은 참기 어려울 정도의 강도였다. 그는 겨드랑이에서 늑골로 이어지는 부분을 이완시켰고 손끝에 이르러 힘을 주었다. 차가웠던 손이 그의 압으로 인해 온기가 돌아왔다.


라디오에서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나오고 있었고 그는 내게 읽어봤냐고 물었다. 먼저 대화를 시도하지 않지만 상대방이 물으면 대답한다. 그가 그 책을 물어올 것이란 미묘한 확신이 있기도 했다. '예'라고 말하자 그는 점자책을 통해서 이미 그녀의 모든 책을 빌려놨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와 점자책은 그렇게 다 빌릴 수 있군요 서점은 품절 사태인데요'라고 했더니 그는 웃으며 예전에 읽어봤는데 난해했다고 답했다. 그는 그러는 동안에 다리가 가끔 저린다는 나의 말에 허리 근육에서부터 엉덩이, 허벅지에서 종아리까지 이르는 부분을 마사지하며 '바깥쪽이 저려요 아니면 안쪽이요?'라고 물었지만 '그건 정확히 모르겠어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내 몸이지만 어느 부분이 어떻게 안 좋은지 정확하게 떠올릴 수 없었다. 발가락은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그는 구슬을 다르듯이 발가락의 동그란 부분을 누르기 시작했다.


지압이 끝나자 두통이 사라지고 몸이 따듯해진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도 삶에 지칠 때면 불현듯 여길 찾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그 가게는 여전히 거기 있을 거라 생각하니 위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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