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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Oct 22. 2024

회사 부적응자

회식에 가야 한다는 무거운 마음과 가볍게 먹기만 하고 오자는 마음 반반이었다. 하지만 금요일에 사업예산 때문에 본부장으로 전결라인을 바꿔야 했던 건은, 오늘 다른 사람이 동일한 예산으로 올렸을 때 상사전결로 난 걸 보고 회의가 차올랐다. 상사는 그저 내가 하는 일에 훼방을 놓고 싶은 것이었다. 내가 그의 잘못된 판단으로 청에 가서 협의하고 온 다음(그의 판단이 틀린 후부터)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다른 사람의 노룩패스결재와는 달리 문구 하나하나를 읽고 수정하는 식이었다.


그는 내게 묻는 걸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건 자신이 알고 있지 못한다는 말과 동의어기 때문이다. 난 기관총괄 업무를 맡고 있어서 상위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업무를 맡고 있다. 후배가 해당과업이 승인이 필요한지 물어봤을 때 명백히 승인받아야 하는 업무라고 말했다. 개발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행안부고시 전자정부성과관리 지침에 따르면 국제협력사업은 사전협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나와 있었다. 그래서 (행안부를 안받아도 되니) 상위부처승인도 받지 않아도 되겠냐고그쪽 보스가 우리 보스에게 물어본 모양이었다. 우리 보스는 그렇다는 답변을 했고 그렇게 알고있던 실무자가 내게 물은 것이었다.


나는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무자는 1달이상이 소요되는 승인을 받지 않고자 했지만 받아야 하는 걸 안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상위의 실무자에게 다시금 확인을 받고 알려주겠다는 말과 함께 실무자를 돌려보내면서 보스는 날 믿지 않는구나 하는 기정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믿었다면 내게 그거 어떻게 되는거냐 물었겠지. 명백히 사이가 틀어진 지점이 있었고 그 후 데면데면하고 있지만 애써 사이를 돌려놓으려는 노력을 하기 싫다.


생각해보면 옳다는 것과 그르다는 것에 예전부터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태어날때부터 자라기까지 선생이 틀릴때면 그때부터 나이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 태도는 성적을 잘받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그때부터 난 싸가지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회생활을 할때도 상사가 틀리면 굳이 그걸 지적하고야 마는 스타일이었다. 반면 후배가 틀린것에는 그럴수도 있다고 치부했다. 왜 옳고그름에 그렇게 집착하는지 생각해보니 그건 자존심 때문이었다. 자존심을 버리면 좀더 수월하게 사회생활 할 수 있을텐데 타고난 성정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삶을 살며 모든 것에 맞을 수는 없다. 맞는걸 늘리고 틀린걸 줄이는게 조금 더 삶을 잘사는 방법일테다. 타인을 대할때도 그 기준을 낮추면 될것 가지고 나는 오래 괴로워했다.


방금도 회식을 가는데 동료가 물었다. '차 어떻게 갈 거야?' 저는 유연근무라서요.라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차사고가 나서 가능하면 차를 안 끌고 다니려 하고 조심성이 많은 옆자리 동료도 마찬가지여서 차를 막상 운행할 수 있는 사람은 나와 후배밖에 없었다. 하지만 과거의 일에서 가능하면 나와 동승하지 않으려는 상사와 같이 타고 싶은 마음은 나도 물론 없었고, 다른 때 같았으면 차 호의는 잘 베푸는 나도 선뜻 태우고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안정적 월급이 성공적 투자의 발판이 될 수 있단 걸 알면서도 얼마 전 은행에 가서 직업이 없으면 소득증명이 안 되는 현실을 맞이한 탓에 쉽게 퇴사하지 못하겠다. 포기하기엔 좋은 직장인 것이란 것도 알고. 하지만 요새는 자꾸만 생각이 회사를 나가는 쪽으로 기운다.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더 좋아질 삶을 자꾸만 고민하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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