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침에 일어났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꾸만 과거에 했던 일들이 후회가 되고 피아노도 별로 즐기지 못했다. 보통 음악을 연주하면 나아지는데 오늘은 내 분노와 감정을 피아노에 쏟아넣는 느낌이었다.
반복되는 일상, 에 대한 번아웃이 왔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나는 너무 많이 흔들렸다. 그러기엔 기분이 좋은날과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 너무 많았고 저하되는 날엔 모든걸 포기하고 싶어진다. 맛있는 걸 먹고 기분을 풀라고 애청자가 말했지만 또 그렇게 단순하기만 한 내가 아니라서 버거울 때가 있다.
이럴때 누가 있으면 더 나아진다는건 신화 아닐까. 상상속에서만 존재하는. 슬픔을 함께하면 더 낫다는 말은 잘 모르겠다. 감정은 너무 쉽게 전염되고 아무것도 안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잡지를 봤는데 효능감 체크리스트가 있었다.
-출근을 했다
-밥을 먹었다
-가족을 돌보았다
-반려동물을 산책시켰다
와 같이 일상적인 것들을 한걸로 그래도 오늘 한것들이 있으니 좌절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정말 그런걸로 하루를 버텨내야만 하는건가. 도망가고 싶었다. 막상 그렇게 도망가도 한계에 부딪힐 걸 알지만, 어딘가 '불만족 '스럽다. 무엇이? 내 의지대로 그만둘 수 없는 회사, 내 마음같지 않은 주식, 나에 대한 실망감,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단 불안감.
#2
회사에서 친한 동생이랑 엘베앞에서 마주쳤는데 그녀가 산책을 하자고 해서 별말없이 따라나섰다. 날씨가 좋았고 거절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었다. 말이 없길래 이것저것 물었다. -인사는 원해서 된거야? - 저번에 도서관 앞에서 너희부부 봤는데.
근데 동생은 약간 침체되어 보였다. 한참을 말이 없다가
-저 난임휴직 내려고요
하는 것이었다.
-어? 그래?
갑작스런 말에 당황했지만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임신준비를 일년동안 했는데 안돼서 병원에 가니까 난임이라고 하더라고요. 의사도 회사 쉬면서 준비하는게 나을것이라 해서 보스한테 말씀드렸어요. 보통 남자가 여자보다 일찍 죽으니까 남편이 자기 먼저 죽으면 저 혼자 남을때 외로울거 같다고 해서 임신을 계획했는데..
-그렇구나. 잘될거야
라는 상투적인 말밖에 해줄 수 없었다. 그리고 난 결혼도 안하고 아이도 생각이 없는데, 똑같이 싱글이었던 그녀와 이미 다른 갈래길을 걷는것 같아 마음이 씁슬했다. 혼자살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지만 나 또한 힘들때가 있고 그럴때면 그냥 참는다. 배신당하는 것보다 그게 나으니까. 누굴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에너지가 드니까 안하게 된다. 그래도 나는 못하는 휴직을 그녀가 하니까 부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