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달력
2026년 새해 달력이 배포되어 왠지 맘이 또 쫌 그렇다. 돈 늘어나는 건 좋아하면서 나이 많아지는 일은 이토록 부담인가. 달력은 늘 젊고 아름다운 사진으로 치장한다. 시간의 흐름과 새해 오는 일은 별개라는 듯, 커버 사진엔 Paradise라 멋지게 인쇄하여 늙어가는 필자를 자극한다. 한장 두장 넘길 때마다 세상 최고의 풍경이 펼쳐진다. 우리 사는 세상엔 없는 곳, 파라다이스라...!
페르시아 카펫
페르시아 카펫의 문양들을 볼 것 같으면 르네상스시대와 겹치는 시기의 페르시아 문명을 기억이라도 해내려는 듯, 화려한 정원을 꾸민 게 많다. 일일이 손으로 짜 넣은 노고가 대단하다. 가끔 종횡으로 뻗어나간 수로가 한복판에 그려진 카펫을 볼 수 있다. 곧 사방으로 흘러가는 강을 형상화한 거로 보인다. 이슬람 정통 이상향인 낙원 같은 정원 모습을 그려내고자 함이다.
차하르 바그. 네 구획으로 짜여진 정원을 말하는바, 두 수로를 교차시켜 공간을 넷으로 나눈다. 핵심은 구획이 아니라 물줄기가 사방으로 흐르게끔 하여 교차점에 분수나 정자를 짓고 세상의 중심처럼 보이게 한다는 데 있다. 물 많은 동양의 나라에선 굳이 이럴 필요가 없기에 생각지 못한 걸까. 건조하고 황량한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라 그들은 이토록 녹음이 우거지고 강이 흐르는 이상향을 꿈꾸며 낙원Paradise이라 말했을 테다
바빌론 공중정원
우리에게 함무라비법전으로 친숙한 고바빌론제국 멸망 후 3세기 동안, 이 지역은 앗시리아 지배 아래 놓인다. 722년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사마리아지역을 혼혈정책으로 더럽혔다는 그 나라다. '더러운 사마리아인'이란 말은 이래서 생긴다. 당시 남유다인들은 사마리아 지역 통과를 꺼려했음에도, 그리스도께선 사마리아를 피하지 않고 외려 그곳에 들어가 중요 사역을 하신다. 다섯 번 이혼, 여섯 번째 동거 중인 그 '수가성 여인' 이야기도 이때 등장한다.
앗시리아는 제국 말기 때 내전에 휘말린다. 이 상황을 기회로 삼은 칼데아인들은 나보폴라살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켜, 기원전 612년 수도 니네베/니느웨를 함락시키고 신바빌로니아를 건국한다. 세계사에 유명한 네브카드네자르 2세/느부갓네살 때 최전성기를 구가, 기원전 586년 남유다를 정복한다. Boney M의 히트송 Rivers of Babylon은 바빌론으로 끌려간 히브리민족의 애환을 담은 노래다. 이른바 세계사에서 배웠던 '바빌론의 유수' 이야기다.
네브카드네자르 2세는 영롱한 푸른색 벽돌로 바빌론의 문(이슈타르 문, 독일에서 몽땅 떼어다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전시)과 바빌론의 공중전원 등을 건축한 자다. '고구려에는 연개소문이 돌아가시자 나라가 망했다'는 애들 마당놀이 노래처럼, 신바빌로니아도 그의 사후 곧 쇠퇴, 결국 동쪽에서 힘을 키워온 페르시아 아케메네스왕조의 키루스 2세/고레스왕에게 멸하고 만다. 기원전 539년 일로, 역사책 및 구약성경 역대기 맨 끝과 에즈라/에스라서 맨 앞에 공히 나오는 이야기다. 삼천포로 너무 멀리 빠진 듯싶다. 원래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가자.
'네브카드'씨에게 시집 온 여인, 아미티스. 앗시리아를 정복하기 위해 바빌로니아와 동맹 맺은 메디아 왕국 공주다. 누구라도 그렇지만, 멀리 남의 나라로 시집 간 아미티스도 고향 산과 우거진 숲을 그리워한다. 이에 '네'씨는 아내를 위해 삼삼하고 거대한 계단식 정원을 하나 만든다. '공중'이라 이름 붙었지만 실제 허공에 뜬 게 아니라 높은 곳에 조성된 이유에서 붙은 별칭이다. 정원을 잘 유지하기 위해 물 공급 시스템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정원 한가운데를 열십자 형태의 수로가 흐르도록 했을 테니 당연 물길은 4방으로 뻗어나간다. 유프라테스강이 있으니 물이 좀 풍족했겠는가.
타지마할
인도 무굴제국 시절의 세밀화에도 전형적 이슬람 정원 모습을 새긴 작품들이 허다하다. 제국을 창건한 바부르는 고향 카불의 선선한 기후를 항상 그리워하여 정원 조성 때, 나무와 식물을 풍족히 심어 향수를 달랜다. 신바빌론제국으로 시집 간 공주 아가씨가 그랬고, 캘리포니아로 이민 온 필자 역시 지금껏 그리하며 살고 있다. 향수는 인간이 극복하기 힘든 질병이다. 뭐 또 그리 나쁜 것도 아니고. 사실 떠난 고향을 잊고 살겠단 독한 맘보다는 그리워하며 사는 게 더 인간적 아닐까 싶다.
* 바부르 ; 부계 쪽은 티무르의 5대손, 모계 쪽은 칭기즈칸의 15대손. 중앙아시아에서 인도 북부로 침입하여 무굴제국을 건국. 제국의 5대 황제가 바로 타지마할을 건축한 샤 자한이다.
바부르는 몸소 정원의 설계를 감독, 주변을 붉은 벽돌의 높은 담으로 둘러친다. 외부로부터 차단하여 보호하는 특별 장소임을 암시한다. 과실수가 열매 맺고 꽃이 만발하며 녹음이 우거지고 맑은 물이 풍부하게 흐르는 네 갈래 물줄기를 설계한다. 이슬람교도들이 꿈꾸는 전형적 낙원이다.
서양의 정원 양식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반면, 이슬람 정원은 오랫동안 하나의 양식을 고수해 온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세운 영묘 타지마할 앞에도 전형적 이슬람 양식의 정원이 조성된다. 죽은 자의 묘 하나 짓기를 뭔 저토록 사치를 떨었을까만서도 왕비였다니 쯧 하고 만다. 이 시대에 사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중세나 고대 모두, 평민으로 살기엔 삶이 넘 고달프지 않았는가. 하튼 이런 정원 양식은 서구에 영향 미쳐 중세 수도원 정원에서도 네 부분으로 나뉜 정원의 형태가 왕왕 나타난다.
에덴에서 흘러나온 강줄기
비손Pishon, 기혼Gihon, 티그리스Tigris, 유프라테스Euphrates. 창세기 2장에 묘사된 네 강은 에덴에서 발원하여 각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비손강은 하윌라 온 땅을, 기혼강은 구스 땅을 돌아 흘렀다고 하나 현재 그 강이 어딘지 확인할 수 없다.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은 앗시리아 곧 지금 이라크에 현재까지도 존재하니 성경구절이 참 이럴 때마다 '쫌 있어' 보인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 같이 십자가형에 처한 두 명의 강도가 있다. 그중 한 놈이 "자기도 주님처럼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했다는데, 그때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은,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 (Luke 23:43). 잘 보면 알겠지만 흔히 알고 있는 천국Heaven이 아니라 분명 파라다이스Paradise다. 그리스도께서 약속한 파라다이스가 이천 년 지난 오늘까지도 다다르기 힘든 천국의 영역임에는 변함없으니, 속세 인간의 삶이란 죽을 때까지 고행이로다.
파라다이스 호텔.
한국 여행 가면, 신혼여행 때 가본 제주 파라다이스 호텔 좀 댕겨오려 했건만 2008년 폐업했다나. 추억이란 것도 비즈니스에 따라 존폐기로를 맞는 법이다. 우리들의 파라다이스는 천국에나 가야 볼 수 있을 테다. 쯧 !
싸이의 노래 '낙원'이나 들어보련다.
https://www.youtube.com/watch?v=AxBrgHqN2rY&list=PPSV&t=8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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