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성찰, 그 놀라운 변증법적 원리
요한복음 18:15~27[200주년 신약성서]
18:25 시몬 베드로는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당신도 그의 제자들 중 하나가 아니오?" 하고 말했다. 베드로는 부인하며 "나는 아니오" 하였다.
18:26 대제관의 종들 가운데 하나이며 베드로가 귀를 잘랐던 자의 친척 되는 이가 "당신이 동산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않았소?" 하고 말했다.
18:27 그래서 베드로는 다시 부인했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
“내가 (그)입니다.” (요18:5-6)
예수님이 자신을 붙잡으러 온 자들에게 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때는 깜깜한 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글거리던 횃불에 빛나는 철제 갑옷을 두르고 있었고, 허리춤에는 묵직한 칼자루가 걸려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보다 더 두려운 건 밤에 걸린 그들의 낯빛이었을 것입니다. 다수의 무리 손에 들린 횃불은 활활 타오르는 것이, 마치 불구덩이가 연상됩니다.
금 신상과 불구덩이 사이에서 다니엘과 친구들은 신앙을 지켰습니다. 세로가 삼십 미터, 가로가 삼 미터 정도가 되는 금 신상은 모든 걸 압도했습니다. 지옥을 연상하게 만드는 불구덩이는 금 신상이 탄생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공포와 두려움이 더해질수록 금 신상은 더욱 누런 빛을 발했고 다니엘과 친구들의 신앙은 전부 잿더미가 될 것 같았습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의 구원은 “우리가 그들(하나님만을 섬기는)입니다.”라고 자신들의 신앙을 스스로가 단호하게 증언할 때 시작되었습니다. 불구덩이는 그들의 옷자락도 그을리게 하지 못했고, 그 속은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도가니로 변했습니다.
이처럼, “내가 (그)입니다.”라며 자기를 증언하신 예수님의 단호한 말씀에는 굵직한 신앙의 서사가 담겨 있습니다.
25절, “나는 아니오.”
예수님이 처한 당시 상황과 비슷하게도, 베드로는 불 앞에 서서 위와 같이 말했습니다. 불로 대비되는 두 장면은 거울에 비친 세계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세계는 허상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이 마주한 불길은 거짓과 위선을 감추기 위해 피워 올린 강포한 불이었습니다. 주님은 강포한 현실 안으로 담대하게 나아가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마주한 불은 으스스하고 지칠 때 쬐는 음습한 불이었습니다. 언제 꺼져도 아쉬움만 남긴 채 휙 하고 돌아서고야 마는, 그런 자리에 베드로가 있었고, 그도 연기처럼 제자로서의 현실에서 벗어나 사라져버렸습니다.
자신을 증언하지 못하는 베드로의 비겁함은 결코 믿는 자들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어느 때보다 긴 밤을 살던 베드로를 통해, 나의 안위를 쫓아 먼 길을 떠날 사람처럼, 주님을 차갑게 대했던 저였습니다.
칼로 갈라 흥건한 핏물과 함께 떨어졌던 귀를 보며 베드로는 어땠을까, 그의 심경을 살펴보려하자 저의 연약했던 이전의 모습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검은 도로 위를 쌩하고 달리는 차들, 견고한 자태를 뽐내며 우뚝 서 있는 빌딩과 아파트들, 그것들 사이에서 하루를 부단히 노력하며 매만지는 건 차가운 스마트폰이라는 사실이 문뜩 떠올랐을 때, 딸을 더 깊이 안아주고, 아내의 어깨를 지긋이 주물러 주곤 했습니다.
그런다고 음습한 감정은 쉽게 달아나지 않았습니다. 느긋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성급하게 암울한 나날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살아도 죽은 것 같은 순간을 어느 날 맞이하게 될 거라고. 운이 좋다면, 젊은 날이 아니라 노쇠한 나날 중에, 혹은 죽음에 가까워서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다며, 궁상이 깊어질수록 먹고 살날을 걱정하고, 가족의 건강을 걱정하고, 부모님을 언젠가 보내드리겠거니 슬픈 이별들을 미리 삭히다가, 잔뜩 쪼그라들어서 일찍이 노인이 되어버리고는 했습니다.
내가 그입니다.
주를 부인한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가신 사랑의 주님이셨습니다. 베드로도 훗날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그분을 따르는 길에 용감히 나서게 됩니다. 끝까지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으신 주님이 또한 나의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고백처럼, 지금, 여기 내게 주어진 삶 중심에서 날마다 단단하게 서 있기를 원합니다. 세상 앞에 용감하게 자기를 증언했던 믿음의 서사에 저의 삶도 포함될 수 있도록 더욱 기도하며 주님께 능력을 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