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DONGYOON_HAN / 2015년 1월 여행 중
한 사람을 알고 싶다면 함께 여행을 해보라는 말이 있다. 여행은 일상에서 가려질 수 있는 가식, 혹은 친절함의 포장들이 사라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여행은 물론 즐겁고 행복한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일상과 다른 새로운 곳이기 때문에 긴장의 연속이기 마련이고, 이로 인해서 짜증이 늘고 이타심보다는 이기심이 발로 한다. 따라서 여행은 누군가를 알기에 좋은 과정이다.
8개월 이상의 여행 속에서 동행을 꾸려서 여행을 하지 않다 보니, 주변에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익숙지 않고 또 귀찮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굳이 원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동행을 해서, 트러블을 만들고 신경 쓰면서 여행하기보다 혼자 여행을 진행했다.
그러던 중 페루 리마에서 만난 일행들과 한 달간 여행을 같이 했다. 남미 특유의 위험한 지역이라는 선입견과, 나를 굳이 거슬리게 방해할 것 같지 않을 성격 좋아 보이는 남자 3명과 함께 리마를 시작으로 페루와 볼리비아 여행을 함께 했다.
사실 내가 남미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쿠바 아바나대학교에서 스페인어 교육을 3주간 받았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배운 기초 스페인어는, 총 6개월의 중남미를 여행할 때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 스페인어는,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는 한국 여행자들과 함께할 때 적지 않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여행 시작할 때 사람이 참 간사했던 것이 내가 어디를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혹은 친척, 친구가 있는 곳에 가면 이러저러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만 했었다. 즉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새로운 여행지에서 만난 새로운 일행들과 리마에서 이카, 나스카를 거쳐 볼리비아와 우유니까지 함께 여정을 이어갔다. 우연찮게 맏형이 되어서 간단한 의사소통으로 환전과 식사 주문, 교통까지 동생들이 불편하지 않게 여행을 했고 또한 동생들도 그만큼 4명 서로를 위해서 도와주면서 여행을 했다. 그 속에서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세 번의 사건을 썰 풀어 보려 한다.
돕고 사는 세상 속의 사건 # 1.
동행자 임민호는 세계일주 중 가장 오랜 시간 동행한 친구다. 페루에서 만나서 아르헨티나까지 함께 한 민호는 여행 후에도 계속 만나는, 지금도 가장 친한 친구다. 페루 리마의 '포비네' 한인민박에서 처음 만나 3시간 수다를 떨고 곧바로 친해졌다. 세계일주의 기간이 비슷해서 동질감을 얻었던 건지, 아니면 둘 다 후줄근한 행색과 남다른 외모 덕분에 동질감을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처음 봐서 짧은 대화를 하고 바로 다음 일정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며칠 뒤 페루 중부 도시 '와라즈'에서 약속대로 다시 조우했다. 서부 바닷가에서 서핑을 배우고 와라즈로 온 민호는 고산 지대에 적응하지도 않은 채, 곧바로 와라즈의 뒷동산 트래킹을 함께 했다. 숙소에서 언뜻 본 뒷동산이 예뻐 보여서 '한 번 올라가 볼까?'라는 제안에 나를 따라 함께 3시간 정도 등반했다.
그러다 결국 숙소에 돌아와서 고산병이 터졌다. 그래서 만난 지 얼마 안 된 여행 친구를 위해서 마트에서 쌀과 참치를 사서 죽을 쑤어주었다. 와라즈에서 꼭 봐야 하는 69 호수와 설산 트래킹의 근처도 가지 못한 채, 민호는 와라즈의 뒷산만 올라갔다가 내려온 것을 끝으로 다음날 리마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사실 죽을 좋아하는 나는 오랜만에 죽을 만들어 먹는 것이 좋았고, 민호는 (죽을 먹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으나-맛을 보장하지 못하기에) 아픈 속을 달랠 수 있으니 굳이 누구를 돕기 위해 했다기보다는, 식사 당번 한 번 한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아픈 사람 도울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얻을 수 있었다.
돕고 사는 세상 속의 사건 # 2.
민호랑 뒷산을 트래킹하고 내려와서, 우리는 사실 산 한가운데에 텐트를 치고 쏟아지는 별을 보면서 하룻밤을 보내자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고산병으로 인해서 민호는 리마로 먼저 돌아가고, 나는 우리의 유지를 이어가기 위해서 텐트를 들고 해발 4,000m에서 야영을 할 다른 여행자를 모았다.
와라즈에는 '아킬포(Akilpo)'라는 숙소가 있다. 4명의 형제와 그들의 부모님이 함께 운영하는 숙소인데, 한국 여행자들에게는 이미 최고의 호스텔이라고 정평이 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여행객으로 꽉 찬 아킬포에서는 함께 동행할 여행자를 모으기가 수월했다. 또한 아킬포 주인인 형제들에게 나의 목적을 여행자들에게 설명하고, 추천해줄 만한 캠핑 장소를 묻자 장소를 알아봐 줄 뿐만 아니라 텐트와 각종 장비를 모두 무료로 빌려주었다. 이리 고마울 수 있을까.
총 3명이 새로운 일행이 되어 텐트를 친 장소에는 작은 호수가 있었다. 환상적인 장소임에 분명했다. 우리는 작은 버너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라면도 먹고 별을 보며 맥주도 마셨다. 하지만 고산지대라서 날씨가 매우 추웠고, 추운 나머지 일행은 먼저 잠에 들고 나는 자연에 더 취하고자 남은 맥주를 몽땅 마셔버렸다.
잊지 못할 일몰과 일출을 간직한 채, 산을 내려와서 아킬포 숙소에 도착해서 전날 밤 못다 잔 잠을 청했다. 낮잠을 자던 중, 속이 아파왔다. 점점 아파왔고 이윽고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배가 당기고 아팠다.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아파서 호스텔 방에서 프런트로 기어서 나오는 나를 보고, 다른 여행자들이 곧바로 아킬포 주인인 4형제의 큰형에게 알렸다. 그는 내 상태가 심각한 것을 보고 곧바로 택시를 불러서 응급실에 나를 데리고 갔고, (추측 건데) 급성 위경련 판정을 받아서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은 채 잠을 청했다.
이후에 다시 호스텔로 돌아갈 때까지 아킬포 형제들의 도움을 받았다. 택시비도 본인이 지불하고, 병원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에서 약도 직접 지어 주었다. 내가 술 마시고 오버하는 바람에 탈이 난 것인데, 내 잘못을 운운하지 않고 오히려 큰 도움을 받았다. 응급실 사건 이후에도 약 5일간 아킬포에 머물면서 4명의 형제들에게 스페인어도 배우고 같이 수다를 떨고, 아킬포 호스텔의 앞으로의 마케팅과 운영 방안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워낙 친절하게 웃으면서 호스텔을 운영하는 형제들이고 그로 인해 유명하지만, 나는 친절함 이상의 은혜를 입고 진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임민호가 되돌아간 리마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킬포 형제와 가족들 다 함께 찍은 사진을 잃어버려서 매우 아쉽지만, 그들은 전 세계 최고의 호스텔을 운영하는 멋진 형제 가족들이다.
돕고 사는 세상 속의 사건 # 3.
나스카의 지상화를 보는 것이 나에게는 어릴 적부터 꿈이었다. 우주인이 그렸다는 설도 있고, 나스카 문명의 신비로운 능력이라는 설도 있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거대한 나스카 라인은 남미 여행에서 꼭 보고 싶은 여행지였다. 하지만 나스카 이외에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그 근처에 도시인 '이카'를 비롯해 와카치나 오아시스(Huacachina Oasis) 여행, 버기 투어 등을 생각지도 않게 경험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모두 미리 정보를 알고 남미를 방문한 '동삼'이 덕분이었다.
동삼이 덕분에 생각지 못한 사막 투어를 할 수 있었다. 또한 이미 버릴 것이라고는 다 버리고 혈혈단신 여행 중인 세계일주 8개월 차 여행자 두 명과 짐이라고는 5kg 백팩 하나가 전부인 막내와 다르게, 헤어 드라이기부터 다양한 아이템을 구비한 동삼이 덕분에 다방면에서 편한 여행이 가능할 수 있었다. 막내 형우는 4명의 팀에 큰 활력소가 되었다. 항상 재미있는 분위기를 유지하도록 빠른 눈치를 곁들여서 우리 팀에 웃음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혼자 여행했으면 앞에 말한 것처럼 목적지 이외에는 정보도 없고 관심도 없어서 여행을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일행의 다양한 정보 덕택에 마추픽추 여행을 3일간의 트래킹으로 할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안데스 산맥을 트래킹 하고, 짚라인도 타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시간을 3일간의 '잉카 트레일'을 통해서 체험할 수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이 바로 일행들 덕분이었다.
역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여행 중 강하게 느낄 수 있던 이 마음, 잊지 않고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자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