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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군 Nov 29. 2021

다리가 없어서 무릎으로 뛴다

간호조무사 우리 엄마 이야기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발견


어렸을 때부터 '헌신적'이라는 타이틀은 엄마와 딱 맞았다. 마치 MC라는 옷을 유재석이 입듯이.


엄마는 장애인을 돕는 곳에서 수십 년간 섬겼다. 사람들을 돕는 일이라면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오셨다. 한 아이를 책임지셨고, 그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셨다. 무엇이든 베푸려 했고, 자신의 소유에 있어 넘치는 것을 아주 싫어하셨다. 몇 년 전엔 오십이 넘은 나이에 간호조무사가 되고자 도서관에서 공부하셨다. 도서관에서 졸음을 참지 못하고 떨어지는 엄마의 고개를 볼 때마다 울컥함과 존경스러운 마음이 공존했다. 엄마는 단 한 번의 시험을 통해 간호조무사가 되셨고, 지금은 아픈 환우들에게 여린 사랑을 나눠주고 계신다. 엄마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남을 돕길 원하는 사람이다. 정말 원한다. 스스로 자처한다.


일례로 같이 일하는 간병인들과의 관계에도 정성을 다한다. 간병인들 대다수는 조선족이다. 그들은 우리나라 시스템이나 제도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기에 엄마가 길잡이 역할을 한다. 세금 환급에 관해 알지 못하는 그들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자신이 세무서에 들러 알아보고 신청한다. 또한, 까막눈으로 작은 글씨들을 봐가며 형광펜을 칠한다. 새로 올 신입(?)분들을 위해 가이드 노트라는 걸 만드시는 듯싶다. 엄마는 그걸 '도움 노트'라 부른다. 다 만들었는지 내게 다가와 아이 같은 미소와 함께 자랑을 한다.

"사람들이 한눈에 잘 알아볼 수 있겠지? 어때 아들?" 대답이 필요없다. 그 노트는 이미 엄마의 순결한 진심이 담겨있는 것으로 족하다.


사실 그날은 엄마의 휴무날이었다. 엄마는 휴무날에도 사람들에 대한 고민이 끝이 없다. 아, 고민이라 하지 말자. 완전한 책임감이라 하자. 수년 째 꾸준하다. 엄마는 그런 일을 좋아한다. 남을 돕고 그것에 행복해하는 그들의 모습을 볼 때 엄마가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는 듯싶다.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삼는 엄마가 한편으론 대단하다. 이 말 외엔 별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엔 육체적인 엄마의 크기가 커 보였다.

그런데 내가 성장을 해가며 느끼는 건, 엄마의 크기는 절대 육체적 크기로 한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엄마는 최소한의 환경만 주어진다면 불철주야 그들을 위해 뛸 생각이라 말한다.

하도 뛰다보니 엄마의 다리는 닳고 닳았다.

하지만, 엄마는 무릎으로 뛴다.

나는 이것을 헌신이라 부른다.


요즘 세상엔 착한 사람을 바보라 칭한다. 자기 밥그릇도 챙겨가며 때론 남 신경 쓰지 말고 이기적으로 살라고 말한다. 나아가 세상은 착하기만 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외친다. 이에 나는 반박한다.


아니다. 착하고 헌신적인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살아남고 있다. 아니, 세상을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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