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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군 Nov 27. 2021

앞모습 말고 뒷모습이 생각나는 사람이 있나요?

뒷모습에 숨겨져 있는 진실

사랑하는 사람의 앞모습, 옆모습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긴 쉽다. 밥을 먹으며 대화를 하거나, 같이 손을 맞잡고 걷는 등. 말이다.


근데 뒷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기긴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내가 발견한 그녀의 뒷모습에 깊은 생각을 맡겼다.


우린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탓에 옷을 사러 백화점에 갔다.  거의 몇 달 만에 실시(?)한 오프라인 쇼핑이었다. 서로는 들떴고, 매장 안에 옷들은 수갑에 묶여 걸려있는 나를 풀어달라는 듯 손짓했다.


옷을 입은 서로의 모습을 봐주기 30분이 지났을까.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오랜만이었다. 옷을 들고 피팅룸으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이었다. 들뜬 쇼핑의 표정과는 다르게, 축 처진 어깨와 꽉 동여맨 코트가 눈에 띄었다.


매번 보던 앞모습보다 더 진한 여운으로 다가온 뒷모습이었다.


항상 옆에서 서로를 도왔고, 앞에서 웃고 울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의 뒤를 묵묵히 바라보았던 적은 없었다. 바람 불어도 나뭇가지 붙잡으며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던 그녀의 당당한 어깨가 어찌나 힘들어 보였는지. ‘내가 힘이 되지 못했나’라는 생각도 들면서 어떤 슬픔과 고민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행여 혼자만 품고 있는 무거운 짐이 있다면 내게 덜어주어도 될 텐데, 들키기 부끄러워 혼자만 꽉 부둥켜안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한편으론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를 모시고 악착같이 바르게 살아왔던 이 아이가 존경스럽기도 했다. 이러한 생각들이 너무 깊은 나만의 착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기회라 생각했다. 그녀를 온전히 바라볼 기회이자 이해의 기회 말이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말의 무게를 절실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이해가 착각을 불러오고 그 착각이 서로를 굴레에 빠드리기도 한다. 이해는 거짓 없는 진심과 희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만큼 이해는 어렵지만 중요한 것이다.


뒷모습을 보며 느낀 건, 내가 완전히 그녀를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살아가며 그 사람을 오롯이 이해하기 어렵단 걸 안다. 그렇지만 이해의 방향을 제대로 두고 있는가는 자문해볼 일이다. 이해한답시고 나의 것을 더 내세우진 않았는지. 그녀가 가진 진짜 슬픔, 아픔 등을 쉬운 말 한마디로 치부하진 않았는지. 같이 울어주는 것만이 이해라고 착각하진 않았는지.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그녀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매번 봐왔던 앞모습보다 숨김없이 솔직히 보였던 그녀의 뒷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적어도 나를 이해해달라고 모습을 비춰주긴 한 것이다. 나는 다가온 기회를 잡았고 이해라는 말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내려 했다.


뒷모습은 사실을 던져주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 숭고한 아름다움을 받아야 이해를 마주할 수 있다.

by pixabay

때론 가면을 쓴 앞모습 보다,

진실을 품고 있는 뒷모습이 더 반갑다.


그녀가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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