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기록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기록이 아니라 서사가 된 생기부, 그 끝은 어디인가

by 미냉

AI가 드러낸 건 입시의 미래가 아니라, 지금의 민낯이다

얼마 전부터 교사들 사이에서는 생활기록부 작성에 AI를 활용하는 일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실제 활동과 그에 맞는 문장 사이에서 고민하던 시간은 줄어들었고,

짧은 시간 안에 웬만한 사람보다 나은 문장으로 표현해준다.

결과적으로 업무 부담은 줄었고 작성은 쉬워졌다.

하지만 이게 정말 좋은 변화이기만 한 걸까?

입시의 중요한 평가 기준인 생활기록부가

기존보다 훨씬 적은 시간과 노력만으로 부담 없이 재단되고 재가공되는 장면.

누군가에게는 그게 효율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그게 바로 불신의 시작점이 된다.


생기부는 원래부터 ‘팩트’가 아니었다

사실 생활기록부는 애초부터 객관적 기록이 아니었다.

학생의 활동은 교사의 시선 안에서 해석되고

그 해석의 결과는 문장력과 서술 습관, 때로는 ‘애정’과 '책임감'에 따라 달라졌다.

어떤 교사는 아이의 장점을 부풀려 쓰기도 하고, 어떤 교사는 최소한의 정보만을 기계적으로 입력한다.

같은 학생을 두고도 교사가 바뀌면 생기부의 어조가 달라지는 일도 흔하다.

그렇기에 “정성평가”는 항상 공정성의 논란 속에 있다.

그건 “주관적 개입이 많고 학교별 편차가 큰 평가”라는 뜻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 불균형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내신 등급이나 면접 같은 다른 수단으로 걸러낼 수 있다며 문제점을 어느 정도 용인해왔다.

그런데 이제 AI가 등장하며 이 모든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과거엔 교사의 시간과 문장력이 일정한 ‘한계’가 되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제는 원하는 만큼 미화된 문장을 세련된 어휘로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정직한 사람만 손해 보게 되는 구조가 생긴다.


누군가가 과장을 시작하면, 나도 가만있을 수 없다

입시 실적에 대한 압박은 모든 교사에게 예외 없이 존재한다.

정량 평가가 더 중요하긴 하지만 상위권 대학일수록 정성 평가가 주요한 전형 요소로 작동하기 때문에.

교사의 기록 한 줄, 한 줄이 모여 당락을 좌우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교사가 AI를 활용해 과장된 생기부를 만들어낸다면?

다른 교사들도 결국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나는 어디까지 이 시스템에 협조해야 하는가?”

이건 개인의 양심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구조의 문제다.

정직함이 불리한 구조에선 누구도 오래 정직하기 어렵다.

그 결과 생기부는 ‘기록’에서 ‘작문’으로, 그리고 ‘소설’에 가까운 글로 바뀌어간다.

하지만 이건 새로운 일이 아니다.

AI가 기존의 불균형을 더욱 명확하게 보여줬을 뿐이다.


대학은 신뢰를 거둘 수밖에 없다

대학 입장에서도 이런 변화를 모를 리 없다.

교사의 손으로 쓰인 문장인지, AI가 생성한 것인지는 접어두고서라도

진짜 경험을 담은 것인지, 과장된 연출인지 구별할 수 없다.

그래서 대학은 자연스럽게 회의감을 갖게 된다.

“이 기록을 그대로 믿어도 될까?”

입시 제도는 신뢰 위에서만 작동한다.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 정성 평가라는 구조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정시 확대를 다시 이야기한다.

누구에게나 같은 조건, 객관식, 채점 오류 제로.

다시 말해 ‘공정한 줄 세우기’로 돌아가자는 말이다.

하지만 과연 정시는 공정한가?


정시는 줄을 세우지만, 출발선은 이미 달랐다

정시는 객관적일 수 있지만, 공정하지는 않다.

고소득층일수록 N수나 재수를 선택할 여유가 있고,

기숙학원, 유명 강사, 고난도 모의고사 같은 사교육 자원이 충분하다.

교실 수업만으로 대비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정시는 부모의 자산, 정보력, 시간의 여유가 만든 레이스가 된다.

줄은 정확히 섰지만,

누군가는 신발도 없이, 누군가는 치팅 아이템을 장착한 채 뛰는 셈이다.

정시가 공정하다는 믿음은 출발선의 차이를 고의로 무시할 때만 유지될 수 있다.


우리는 이번 기회에 ‘줄세우기의 불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입시 제도는 오랫동안 '1등과 2등을 정확히 가려낼 수 있다'는 자신감 위에 세워져 왔다.

그리고 그 미세한 차이에 따라 대학 입학, 장학금, 진로, 사회적 지위가 결정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건 그 기준 자체가 얼마나 취약한지

얼마나 쉽게 조작되거나 왜곡될 수 있는지를 AI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줄을 세운다는 건 순위를 기준으로 보상을 차등화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순위가 불완전한 기준 위에서 매겨졌고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면 그 보상은 정당할 수 없다.

애초에 세밀한 차이를 가릴 수 있다는 믿음은 허구였으며 이제 우리는 그 허구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제도의 정당성 또한 다시 물을 수 있다.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엄격한 줄 세우기’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걸 인정하는 것에서 공정성의 회복은 시작된다.

줄을 세우는 대신 서로 다른 출발선과 경로를 고백하는 사회.

완벽한 비교 대신 느슨하고 다층적인 기회 설계로 방향을 전환해야 할 때다.

공정함은 줄 세우는 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기회의 질서를 다시 설계하려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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