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
중국 저장성 이우라는 도시를 보면, 처음엔 그냥 시장이 큰 동네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분위기가 달라진다.
길 양옆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공장들, 작은 사무실에 쌓여 있는 샘플 박스들, 그리고 밤낮 없이 돌아가는 물류 트럭들. 이우는 원래 “전 세계 생활용품의 창고”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생활 잡화들이 이곳에서 만들어져 각 나라로 퍼져나가는 곳이다.
그 이우에서 하나의 브랜드가 조용히 몸집을 키웠다. 요요소라는 이름을 달고, 겉모습은 한국 감성처럼 꾸며놓았지만 속은 철저히 중국식 운영 방식으로 돌아가는 브랜드. 다이소처럼 보이지만 다이소와는 전혀 다르고, 한국 브랜드처럼 보이지만 한국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저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한국 스타일’을 선호하는 흐름을 읽고, 그 감성을 입혀 세계 시장으로 나간 것이다.
요요소가 한국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사람들은 조금 낯설어했다. 다이소가 워낙 오래 자리를 잡고 있었고, 생활용품은 굳이 새로운 브랜드가 들어와도 별로 필요를 못 느끼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온라인에서는 이미 테무와 알리가 초저가 물결을 일으켜 소비자들의 감각을 바꾸고 있었다. ‘싸지만 쓸 만하다’는 기준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고, 중국 브랜드라고 무조건 피하던 시대는 이미 뒤로 물러났다.
그 흐름 속에서 요요소는 천천히 틈을 파고들었다. 제품의 품질이 조금 들쑥날쑥할 때도 있었지만, 가격만큼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했다. 이우에 있는 수백 개의 공장들과 바로 연결된 공급망은 다이소가 가진 오랜 네트워크를 위협할 만큼 단단했다. 제품 하나를 만드는 비용이 워낙 낮으니, 요요소는 얼마든지 가격을 더 내릴 여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다이소는 항상 ‘한국 기업인가?’라는 오해와 함께 있었지만, 실제로는 일본계 자본이 섞여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다이소를 ‘국민 브랜드’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애매한 지점이 있었다. 결국 한국 소비자가 한국 브랜드를 고르는 구조가 아니라, 일본 기업과 중국 기업의 경쟁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선택을 할 뿐이었다.
그래서 상황은 조금 이상하게 펼쳐졌다. 다이소의 강점은 매장 수와 브랜드 신뢰도였지만, 요요소의 강점은 가격이었고, 소비자는 이미 테무와 알리에서 초저가 구조에 익숙해져 있었다. 강자와 신흥 브랜드의 싸움이 아니라, 온라인 초저가 물결이 오프라인까지 밀려온 느낌에 가까웠다.
그런 흐름을 배경으로 요요소는 한국 시장에서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는’ 중간의 경계에 서 있다. 다이소를 당장 무너뜨릴 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무시할 브랜드도 아니다. 무엇보다 한국 소비자들은 싸고 실용적인 것을 고를 때 국적을 크게 따지지 않는다. 실제로 테무에서 사는 물건들은 대부분 중국 공장에서 나온 것이고, 그 품질도 예전처럼 무조건 나쁘지 않다. 가성비가 맞는다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시장이다.
요요소의 등장은 그런 한국 소비자의 태도를 시험하듯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다이소는 예전처럼 혼자 시장을 지배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누군가 뒤에서 따라붙는 발소리를 느끼기 시작했다.
테무, 알리, 요요소.
세 가지 줄기가 결국 하나의 뿌리로 이어지는 중국 초저가 생태계는, 이제 온라인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오프라인 매장까지 확장되면 완전히 새로운 경쟁 구조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한국 시장은 흥미로운 상황을 맞이했다.
싸고 빠른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 중국 공장과 바로 연결된 브랜드, 이미 큰 자리를 차지한 기존 강자, 그리고 온라인의 거대한 초저가 물결.
이 흐름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만들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벌어지는 일들 자체가 하나의 ‘변화의 신호’라는 점이다.
추가글
브런치 추가글: 다이소라는 이름을 둘러싼 작은 오해들에 대하여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가게 중 하나가 다이소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아니 그냥 구경만 하고 싶을 때도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향하는 곳. 그래서인지 다이소의 ‘국적 논란’은 유난히 오래 따라다녔습니다. 익숙한 만큼 오해도 쉽게 자라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이 지분 구조가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일본 다이소산업의 투자를 받으며 함께 성장했던 시절은 사실이지만, 2023년 12월을 기점으로 두 회사의 연결고리는 말끔하게 정리됐습니다. 한국 아성HMP가 일본 측 지분 34.21%를 모두 인수하면서, 다이소는 이제 100% 한국 기업이 되었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다이소는, 한국 강남에 본사를 둔 토종 브랜드입니다.
누군가 다시 “다이소 일본 거 아니야?”라고 묻는다면, 이제는 부드럽게 웃으며 사실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오래된 이미지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나면, 남는 건 단순한 생활용품점을 넘어 한국인의 삶에 스며든 하나의 문화라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