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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Jun 24. 2023

오드리의 식당 이야기 (시행착오)

1편  :  마을에서 쫓겨난 오드리


인구 2만의 작은 마을에 식당 하나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식당의 주인은 40대 초반의 여성으로 이름은 '오드리'다. 우연히 오래된 영화 '로마의 휴일'을 본 후 오드리 헵번의 미모에 반해 오드리라는 가명을 쓰고 있다.


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갸름한 얼굴형과 서글서글한 눈빛이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낸. 165cm가 넘어 보이는 늘씬한 키에 균형이 잘 잡힌 몸매를 가지고 있다.


서울 태생이며 아직 미혼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오랫동안 전주에서 제법 큰 식당을 운영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오드리에 관한 신상의 전부다.  




오드리는 며칠 동안 고민을 하다가 식당 이름을 '오드리'로 결정했다. 세련된 느낌인 데다가 발음하기쉬웠. 식당 이름을 자신의 가명으로 정한 것은 훌륭한 전략이었다. 오드리 이름은 순식간에 마을의 구석까지 퍼져 나갔다. 이 마을에서 소문이 퍼지는 속도는 빛의 속도에 가까웠다.


오드리가 정착한 마을은 인구감소와 고령화의 영향으로 주민들의 대부분이 중장년층들이다. 해가 지면 남자들은 선술집에서 농사일로 지친 심신을 달랬다.


마을의 식당들은 리모델링을 안 한지 오래되어 대부분 낡고 허름하다. 실내는 좁고 어두워 칙칙한 분위기다. 메뉴판은 헤어져 너덜거리고 숟가락에는 얼룩이 남아 있다.


이에 반해, 오드리 식당은 새로 인테리어를 한 덕분에 깨끗하고 고급스럽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먼저 오드리의 환한 미소와 낭랑한 목소리가 사람들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다른 식당들에서 풍기는 찌든 냄새가 아니라 향긋한 꽃내음코끝을 스친다.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드리의 손끝에서 빚어지는 나무랄 데 없는 음식 솜씨. 메뉴는 몇 가지 안 되지만, 전라도 음식 특유의 감칠맛 나는 요리들과 밑반찬들은 사람들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식당은 늘 손님들로 가득 찼고, 매출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잘 나가던 오드리 식당에 위기가 찾아왔다. 배가 아픈 주변 식당들의 견제가 시작된 것이다. 오드리 식당은 양념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다, 값싼 중국산 재료들을 국내산에 몰래 섞어 넣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오드리는 식당 내 눈에 잘 띄는 곳에 원산지 표기를 부착해 두었다.


한 달 정도 지난 뒤에는 또 다른 소문이 퍼졌고, 이번에는 오드리도 크게 당황했다. 오드리가 남자 손님들에게 꼬리를 친다는 소문이 마을에 쫙 퍼진 것이. 진한 화장에 짙은 향수, 속이 비치는 야한 옷과 아슬아슬한 짧은 치마를 입고 남자들에게 수작을 건다는 얘기, 거기에다가 온갖 해괴망측한 소문들로 온 마을이 떠들썩거렸다. 


이번 소문의 진원지는 마을의 나이 많은 여자들로 이들은 오드리를 공공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오드리가 나타난 후로 집집마다 부부싸움이 부쩍 잦아졌다.


젊은 식당 여주인에게 정신이 팔린 남자들은 거의 매일 술을 마셨고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남자들은 아내가 해주는 음식을 불평하고, 외모를 들먹이며 늙은 아내의 자존심을 건들었다.


여자들도 자신들의 모습이 어떤지는 잘 알고 있었다. 시집온 후로 평생 땡볕에서 일하느라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었고 곳곳에 주름이 패어 있었다. 거칠게 갈라진 두 손은 남자들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미용실 출입은 연중행사가 되었고, 새 옷을 산 기억이 가물거렸다. 예쁘다는 소리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살지만, 식당 여주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에 분통이 터졌다.


위기에 몰린 오드리는 억울하고 기가 막혔지만 애써 담담한 척했다. 돈 버는 재미에 들떠있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동네 여자들의 심정이 어떨지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오드리는 작전상 후퇴하기로 했다. 얼굴 화장은 기초만 하고 향수 사용은 자제했다. 가능한 짙은 색상에 헐렁한 옷을 입었고, 손님들 자리에는 더 이상 앉지 않았다. 자신은 주방에만 집중하고 주방일을 하던 아주머니에게 홀을 맡겼다. 밤 10시가 되면 어김없이 식당 문을 닫았다.


소문이 잠잠해지자 한동안 뜸하던 손님들이 다시 오드리 식당으로 몰려왔다. 남자들은 소문을 의식해서인지 더 이상 오드리에게 추근대지 않았다. 얼마뒤 소문은 완전히 사그라들었고, 식당은 예전처럼 안정적으로 운영되었다.




이제는 자리를 잡나 싶었지만, 세상우아한 오드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홀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소문의 주인공이었다.


오드리가 물러난 홀은 50대 여자가 활약하기에 좋은 무대였다. 남자들이 따라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 마셨고, 야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술 취한 남자들을 자극했다.


오드리도 몇 번 낌새를 차렸지만, 심하지 않은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주의만 주었다. 하지만, 끼 많은 아주머니는 자신을 향한 술 취한 남자들의 관심을 조절할 정도의 자제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오드리가 방심하는 사이 마을에는 오드리 식당에서 일하는 여자와 어떤 남자 손님이 눈이 맞았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완전히 뜬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오드리가 소문의 당사자가 아닌데도 마을 사람들은 예전 소문까지 끌고 와 오드리에게 모든 책임을 물었다. 여자들은 식당으로 떼로 몰려가 고성을 지르며 유리창을 깨고 테이블과 의자를 뒤집었다. 


나중에 경찰이 달려와 겨우 수습이 되었지만, 오드리는 더 이상 식당을 운영할 수가 없었다. 마을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던 오드리 식당은 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



(오드리의 식당 이야기는 2편 성공한 전략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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