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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Jul 29. 2023

인간관계 미니멀라이프

자발적 외톨이


몇 년 전 미니멀라이프를 잠깐 체험해 본 적이 있다. 낡은 옷가지들과 다 읽은 들, 그리고 몇 가지 잡동사니들을 대충 정리하고 나자 더 이상 줄일만한 물건이 없었다.

값이 조금 나간다 싶은 물건은 남주기 아깝고, 손에 익은 물건은 버리기 서운하고, 구석구석에 처박혀 있는 물건들은 언젠가 쓸 일이 생길 것 같아 잡았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게다가 잡동사니들이 빠져나간 빈 공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구입한 물건들로 채워졌다.


결국, 처음 시도한 미니멀라이프는 살짝 맛만 보고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미니멀리스트는 아무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미니멀라이프는 최근 다시 나의 관심사가 되었다. 다만, 이번에는 물건 미니멀과는 성격이 다른 '인간관계 미니멀'이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인간관계를 단순하게 만드는 과정이 물건을 줄이는 일 보다 의외로 쉽고 간단하다는 것이다.


노랫말처럼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니고,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내 주변 사람들은 막대자석의 같은 극이 되어 서로를 멀리 밀어내고 있다. 내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관계도 있지만,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빠른 속도로 내게서 멀어지고 있다.


모임이 줄어들고 대인관계가 심플해지는 동안 내 삶에 몇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먼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발생하던 비용(돈과 시간)이 크게 줄어들었다. 비용 미니멀이 실현된 셈이다. 다음으로, 여유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새롭게 발견한 것은 큰 수확이다.



다만, 심플한 인간관계가 나의 성향에 맞는 라이프스타일이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충동이거나, 오랫동안 대인관계에 지쳐 사람들을 멀리하고 싶은 마음이 일시적으로 발동했을 수도 있다.


인간관계 미니멀을 실천하려면 먼저 자신의 성향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종의 적성검사라고 보면 된다. 자신의 성향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주변부터 정리하다가는 비자발적 외톨이 신세가  수도 있다.  경우 필연적으로 괴로움이 따라온다.


인간관계 미니멀은 물건 미니멀과는 개념과 성격이 크게 다르다. 물건은 처분했다가도 필요하면 다시 구입할 수 있지만, 사람의 관계는 한번 멀어지면 복원하기가 쉽지 않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섞은 뿌리 몇 개를 제거하려다가 소중한 인연들까지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뽑혀나가 버릴 수도 있다.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대한 인맥을 굳이 끌어안고 살아갈 필요는 없다. 소모적인 모임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짓이다.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면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을 것이다. 당당한 자발적 외톨이의 모습이다.


하지만, 소모적인 모임과 의미 없어 보이는 대화조차도 삶의 활력소가 될 때가 있다. 누군가가 나의 뻔한 일상의 얘기를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외톨이가 되어서는 안 되는 유형이다.


이미 미니멀리스트의 궤도에 어느 정도 진입한 나는 자발적 외톨이가 될 각오가 되어 있는지 나 자신에게 다시 물어본다. 대답은 '그렇다'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와 듣기 싫은 말을 참고 들어야 하는 경우, 당신이라면 이 둘 중 어떤 경우가 더 힘든가? 나는 예나 지금이나 후자가 훨씬 더 견디기 힘들다. 힘든 정도가 아니라 고통스럽다. 그렇다고, 재미없는 내 얘기를 참고 들어줄 사람들을 끌어모을 정도의 물질적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천상 외톨이로 살 수밖에.


하지만, 나는 외톨이가 된다고 해서 다운되거나 우울해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혼자서도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방법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가끔, 외톨이들끼리 만나도 재미있게 떠든다.


내가 믿는 구석이 하나 더 있다.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인간관계 또한 결국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 생주이멸(生住異滅)이라는 우주 만물의 법칙을 적용받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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