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얽매인다는 것은 자신의 목에 칼을 대는 것과 같다. 대부분이 감정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보인다는 것은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지는 것이다. 물고기는 달아나고 호수 밖에 존재하는 자들은 시선을 집중한다. 이제 돌을 던진 자는 모든 이에게 위협적인 존재이다. 타인의 외면을 마주한 그는 시선을 끌기 위해 다시 한번 돌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행위는 반복되며 사회적 고립에 대한 두려움에, 혹은 연신 주위를 들썩이게 만드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에 그는 연못을 다시 잔잔하게 한다.
우리는 때로 화를 내곤 한다. 불의와 부정을 향한 것이 아닌, 상황을 통제하지 못할 때 우리는 화를 낸다. 이는 완전히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혹자는 격하게 분노를 표출할 때가 있는데, 그는 점차 관계 속에서 도태된다.
…
우리 부서에서 급격한 투자 열풍이 불었다. 작년 이맘때, 증권사에서 근무하는 작은오빠의 권유로 나는 주식투자에 발을 담갔다. 운이 좋았는지 나의 자산은 늘어만 갔다. 이 사실을 친한 직장동료 민아에게 말한 뒤로 우리는 투자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박 과장이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희진 씨도 투자해?"
"네, 과장님도 하세요?"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재미 좀 본 것 같은데?"
"큰돈은 아니에요"
하늘의 절반이 새까만 구름으로 뒤덮였다. 구름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비를 쏟아낼 것만 같았다. 습한 날씨에 회식하러 가자니 굉장히 언짢았다. 메뉴는 내장탕. 소고기 먹자는 이 대리의 말에 박 과장이 말을 이었다.
"소고기 한 번 먹었는데 내장탕 어때?"
불쾌한 이방인. 모두의 표정이 일그러진 것을, 얼굴을 살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눈치를 채지 못한 박 과장 탓에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내장탕을 먹어야 했다.
골목 막다른 길에 위치해 다소 낡아 보이는 간판. '고복식당'이라고 쓰여있다. 입구 위에 긴 시간 방치된 것 같은 거미줄, 삐걱거리는 미닫이문, 곰팡이 핀 벽지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식당 안에는 6개의 테이블과 술에 취해 있는 두 할아버지, 그리고 70대쯤 되어 보이는 주인 할머니뿐이었다.
"아줌마, 여기 내장탕 5개랑 이슬이 3병"
자리에 앉기도 전에 박 과장이 주문을 했다. 그는 분위기를 전혀 살피지 않았고 표정으로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식당은 적막했다. 박 과장은 별 말이 없었다. 오로지 내장탕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카운터 너머로 보이는 주방만을 힐끔힐끔 쳐다볼 뿐이었다. 박 과장이 먼저 나온 술을 따랐다. 나는 그가 따라주는 술을 두 손으로 받쳐 받았다. 물이 없어 주인 할머니를 부르려던 찰나, 식당 한쪽 벽에 붙어 있는 종이 위에 '물은 셀프. 앞치마 없어요'라고 적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 물을 가지러 가던 도중, 박 과장이 입을 열었다.
"민아 씨, 민아 씨도 많이 벌었어? 투자말이야, 나도 해볼까 하는데"
"네, 이번에 가지고 있던 게 상한가 쳐서 이백만 원 조금 넘게 벌었어요"
"뭘 사는 게 좋을까. 같이 좀 하자, 희진 씨랑 같이"
주문했던 내장탕 5그릇이 나왔다. 공기 방울을 끊임없이 내뱉는 뚝배기 위로 소의 내장들이 살아 숨쉬 듯 움직인다. 코를 찌르는 시큼한 냄새. 숟가락이 무겁게 느껴졌다. 계속해서 꿈틀대는 내장들 사이로 숟가락을 넣어 들어 올렸다.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가는데, 숟가락 위에 있던 내장이 뚝배기로 떨어지면서 튀긴 국물이 나의 노란 블라우스에 흩뿌려졌다.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소주를 들이켜도 사라지지 않는 코를 찌르는 향. 박 과장이 말을 걸었다.
"희진 씨는 얼마나 벌었어? 나도 좀 같이하자"
"작은오빠 덕이예요. 저는 주식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박 과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뭘 아무것도 몰라, 내가 이야기하는 걸 들었는데"
이 대리가 주의를 돌리기 위해 말을 꺼냈다.
"과장님, 저랑 해요. 저도 주식 좀 해볼까 하는데"
박 과장이 벌컥 화를 냈다.
"같이 좀 벌면 안 되나? 알려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요즘 애들이 말이야, 어른이 좋게 말하면 알아들어야지 버르장머리 없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내장탕을 한 술 떠 입에 쑤셔 넣었다. 코를 찌르지는 향도, 거부감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말을 섞을 필요가 없었기에. 분노하는 박 과장이 당황스러웠기에. 나는 계속해서 내장탕을 삼켰다. 반응이 없는 나에게 화가 났나 보다. 박 과장이 두 할아버지가 있는 테이블로 가서 가위를 집어 들었다.
"나 무시해? 내가 우습냐고"
박 과장이 가위를 들고 내 뒤통수에 소리쳐도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내장탕만. 나는 내장탕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 쪽으로 다가오는 박 과장을 이 대리와 민아가 붙잡았지만, 더 크게 저항하는 박 과장을 말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머리채가 잡힌 채로 일어서 그의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박 과장 뒤로, 두 할아버지와 주인 할머니가 식당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모습은 천적을 피해 달아나는 물고기들을 연상케 했다. 박 과장은 한 손으로는 가위를, 한 손으로는 머리채를 잡고 나의 면전에 떠들어댔지만, 뭐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아무 감정도 없는,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공포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기력한 나의 얼굴이 존재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났는지. 그가 불쌍했다. 감정에 못 이겨, 이 순간 이후로 그가 들고 있던 가위는 자신의 인생을 끊어버릴 가위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박 과장은 잡고 있던 가위와 머리채를 놓고 중얼거리며 짐을 챙겼다. 그 순간 두 명의 경찰관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경찰관이 제지하려고 하자 구석에 몰린 박 과장이 신발 한 짝을 벗어 경찰관을 향해 던졌다. 신발은 경찰관의 허벅지에 명중했고, 두 경찰관은 박 과장을 덮쳤다.
"잡지 마. 잘못한 건 쟤야, 씨발, 말해봐 이년아"
양쪽 팔이 잡힌 채 끌려가던 박 과장은 혼신의 힘을 다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커피자판기를 넘어트렸고 경찰관 한 명이 이를 피하려다 넘어졌다. 박 과장은 나머지 한쪽 팔을 뿌리치고 식당 밖으로 뛰쳐나갔다. 곧바로 두 경찰관은 그를 따라 뛰어갔다. 그렇게 그들은 골목 너머로 사라졌다.
식당 밖에는 동네 사람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이 상황을 멀찍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달아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연했다. 위협을 느꼈으니 달아나는 게 당연했다. 비가 쏟아진다. 새까만 구름이 하늘을 온통 뒤덮어 주민들이 하나둘씩 떠나갔다. 하늘이 맑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온통 새까맸다.
한바탕 혼란이 있고 난 뒤에는 침묵만이 존재했다. 식당 안에는 쓰러진 커피자판기, 식은 내장탕, 그리고 박 과장의 신발 한 짝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