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직장생활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실제 회사의 모든 것을 주도하는 핵심인력(이하 A로 지칭)은 대략 5% 정도이고, 15%는 우수한 동반자, 나머지 80%는 윗선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가거나 언제 회사를 그만둘지 늘 고민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직장 내에서 A가 되고 싶은 갈증은 항상 있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에 대한 방법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이런 문제는 누군가의 조언이나 관련된 베스트셀러 책을 통해서도 쉽게 배울 수 없다는 것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했던 방법은 '소위 잘 나가는 A를 유심히 관찰하고 따라 해 보는 것'이었는데, 이 방법은
이후 35년간의 직장생활 속에서도 일관되게 많은 도움이 되곤 했었다.
A의 가장 큰 특징은 소통을 잘하는 것이었는데, 특히 본인의 팀장이 현재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궁금해하며 스스럼없이 질문을 잘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면, A는 점심식사 때 졸랑졸랑 팀장을 따라가서 그의 옆자리를 차지한 후 자연스럽게 준비한 이야기를 꺼내곤 했는데, 무언가를 같이 먹으며 나눈 대화에서는 공식 회의 때 분위기와는 달리 팀장의 속마음을 잘 읽을 수가 있었다고 했다. 또한 A는 반복되는 대화 속에서 팀장이 어떤 정보나 보고를 듣고 싶은지에 대해 점차 이해하게 되었고 팀 업무를 바라보는 본인의 시야도 훨씬 커지게 되었다고 했다.
이렇게 빈번한 윗선(?)과의 대화가 불편하지 않았느냐는 나의 우문에 A는 눈을 반짝이며 "유민 씨, 팀장님은 산의 8부 능선에서 이제 등산 초입부로 들어선 저를 바라보고 있는 분이에요. 무엇보다도 그분의 생각을 잘 이해해야 제가 할 일이 명확해지는 거죠. 저는 지금 절실한 마음으로 배우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대화의 절반 정도는 그분이 필요로 할 정보에 대해서 미리 공부하고 답변을 드리는 거예요. 또한 팀장님이 질문했었거나 진행 중인 업무들도 자연스럽게 보고하면서 제가 올바르게 일하고 있는지? 먼저 확인해 보는 거죠. 저는 중요한 것부터 먼저 구체적인 사례와 숫자를 가지고 짧고 간결하게 보고해요. 그렇게 자주 대화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팀장님이 먼저 제게 의견을 묻더라고요. 왜냐하면 팀장님 역시 본인이 했었던 질문들을 기억하고 항상 정답을 찾고 있거든요."라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한 소통 덕분이었는지 A는 팀장으로부터 대체로 좋은 평가 및 신임을 받곤 했는데, 어떤 보고를 할 때에도 설득하는 방식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정보를 팀장에게 처음 공유하고 그 결과로 팀장이 중요한 결정을 직접 하는 것처럼 느끼도록 만드는 A의 유연한 화법도 유효했던 것으로 보였다.
A의 또 다른 특징은, 주변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에 맞는 새로운 성공방식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기억나는 사례 중 하나는, 2005년 부산 APEC 행사 시 A가 보였던 행보이다. 당시 회사에서는 APEC에 참석하는 각 국가 VIP 대상으로 개발 중인 신기술의 현장 시연을 추진하여 회사 인지도를 높이도록 기획했었다. 그러나 당시 이 신기술은 완성도가 낮은 수준인 데다 사내 여러 팀 협력을 장기간 얻어 추가적인 보완을 해야만 시연이 가능했고 만약 실패가 되면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부담도 큰 상황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팀장들은 혹시 본인이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지목될까 봐 전전긍긍하던 분위기였다.
반면 A는 본인의 팀장을 대신하여 현장 시연을 맡겠다고 제안했고 구체적인 TF팀 구축과 회사가 지원해 주어야 할 사항들을 요구한 후, 바로 부산 현장에서 상주 근무를 시작했었다.
그 후, 6개월의 시간 동안 A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현장에서 일하며 일면식도 없었던 200여 명의 서로 다른 팀원들을 원팀으로 만들어 갔고, 사내 최고 경영진들과도 매일 소통을 하면서 프로젝트를 총괄 지휘하는 역할을 했었다. 결론적으로 각 국가 VIP들을 대상으로 한 신기술 시연회는 크게 성공하였고, A는 바로 임원으로 발탁 승진되었다.
나는 프로젝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새로운 업무 및 역할에 대한 부담이 없었는지? 너무 궁금해서 물어보았는데, A는 눈을 찡긋거리며 "유민 씨, 저도 두려웠지만 '큰 위기가 새로운 기회'를 가져올 거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성공할 거라는 확신을 처음부터 가졌어요. 왜냐하면 VIP를 대상으로 시연을 하다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거든요. 회사 관점에서는 총력을 다 해 지원할 것이고, 그 구심점에 누군가 필요했었는데 단지 그 자리에 제가 있었을 뿐이에요. 그리고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사장님 전화를 매일 받아 보겠어요?" 하고 시크하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으로 A에게 보았던 핵심 자질 중 돋보였던 몇 가지는, 매사에 겸손함과 일에 대한 목마른 갈망, 그리고 조직에 대한 헌신과 책임감과 같은 멘털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특이점이 있었는데, 문득 "회사란 내게 무엇인가?" 하는 나의 우문에 "단지 먹고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수행의 도장"이라는 엄청난(?) 답을 A가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꼰대들이나 언급했던 국가나 민족을 위한 봉사 및 인류애 등도 같이 거론했었는데, 내가 생각하던 자본주위적 가치관들과 너무 달라 웃으며 무시했었지만 당시에 A가 엄청 멋있어 보였던 나의 속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A가 될 수 없다는 주장에 100% 동감한다. 그리고 A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역량보다 운의 작용이 훨씬 크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래도 만약 A가 되고 싶다면, 먼저 그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관찰해 보길 추천드린다. 멋진 배우가 출연한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의 삶도 조금은 멋있게 달라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