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노아 Oct 30. 2024

나는, 너는

노아의 실험실 Ep.1

나는 운명처럼 그대를 마주쳤다

너는 바람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필연적으로 너에게 끌렸다

너는 필연적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나는 너에게 내 마음속에 숨겨왔던 말을 꺼냈다

너는 얼굴을 붉혔다

나는 발그레해진 너에게 한걸음 더 다가갔다

너는 멍살이다가, 결국 나를 받아주었다

나는 행복했다

너는 행복했을까

나는 네가 행복했다고 믿었다

너는 나로 인하여 행복해질 것이었다

나는 너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 아름다웠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너는 나를 보고 아스라이 사라질 듯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런 네가 좋았다

너는 항상 나에겐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너를 필연적으로 사랑했다

너는 항상 내 중심에 있었다

나는 언젠가 너와 비오는 거리에 있었다

너는 찰박이며 우산도 없이 내 옆을 맴돌며 걸어다녔다

나는 그런 너의 말괄량이같은 모습을 보기를 좋아했다

너는 샛노란 장화와 우비를 입고 있었다

나는 너의 눈빛에 이끌리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너는 발밑의 물웅덩이와 흐릿해진 도시의 불빛에 비쳐 빛났다

나는 너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너는 눈동자 안에 나의 모든 우주를 담고 있었다

나는 나의 우주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너는 그런 나를 응시하며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부서질 것 같은 너의 손을 조심히 잡았다

너의 손은 따뜻하고 마시멜로같이 부드러웠다

나는 너의 얇디얇은 피부에서 도는 혈류를 느꼈다

너는 그런 나를 보며 맥박이 빨라졌다

나는 너의 손을 잡으며 비로소 이 순간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너는 그저 내 손을 쥔 채,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려주지 않은 채 나를 이끌었다

나는 네가 이끄는 곳 조차 운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나를 바라보며 잰걸음으로 뛰어갔다

나는 네가 이끄는 대로 좁은 골목을 지나 좁은 골목의 바에 들어갔다

너는 나를 바 옆자리에 앉혀두었다

나는 너의 옆얼굴을 보며 설래었다

너는 소슬히 불어오는 불어오는 바람에 너의 머리칼을 날리었다

나는 그런 고혹적은 너의 모습에 잠식되었다

너는 술 한잔을 들이킬 때 마다 서서히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나는 그런 너의 모습에 서서히 같이 취해갔다

너는 적당히 알딸딸해진 나의 손을 잡았다

나는 조금 더 따듯해진 너의 손을 잡고 비틀비틀 끌려갔다

너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춤추듯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너에게 정신이 팔려 빨려들어가듯 계단을 올라갔다

너는 어둑어둑해진 골목에 가누지 못하는 몸을 기대었다

나는 그런 너의 옆에 쭈그려 앉았다

너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너의 시선을 만끽하며 미소를 지었다

너는 내 앞으로 다가와 쭈그려 앉았다

나는 너의 시선에 얼굴일 살짝 붉혔다

너는 내 입술 위에 너의 입술을 포개었다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의 입술에서는 브랜디 향이 났다

나는 너를 길가로 이끌었다

너는 실실거리며 내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나는 약간 쌀쌀한 바람이 부는 바람이 좋았다

너는 그 바람과 더불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 중 하나였다

나는 차가 없는 도로 위를 걸었다

너는 나를 따라, 횡단보도를 피아노처럼 밟으며 걸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타오르는 듯한 환한 빛을 보았다

너는 점멸하는 환한 빛에 눈을 감았다

나는 나에게로 달려오는 트럭 한 대를 볼 수 있었다

너는 나와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

나는 시끄러운 클락션 소리가 들렸다

너는 의식적으로 온 힘을 다해 나를 밀었다

나는 막대한 질량에 스러지는 너를 보았다

너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너의 손을 있는 힘껏 잡았다

너는 반쯤 감겨가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차가워지며 서서히 굳어가는 너의 손을 느꼈다

너는 스러져가는 손으로 나의 눈물을 훔쳤다

나는 절망하는 표정으로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119에 전화를 걸었다

너는

나는 초조한 표정으로 엠뷸런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너는

나는 기나긴 인고의 시간 끝에 마침내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너는

나는 구조대원들에게서 끔찍한 말을 들었다

너는

나는 처참하게 고개를 떨구었다

너는

나는 다음 날 아침에 가장 끔찍한 몰골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너는

나는 너를 찾아갔다

너는

나는 차갑게 식은 채로 누워있었다

너는

나는 아직 너와 함께한 꿈같은 시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너는

나는 지난 며칠을 되돌아봤다

너는

나는 분명히 너와 함께 한 시간이 행복했다

너는?

작가의 이전글 간단한 공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