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령 이야기
우리나라에 이런 권위 있는 잠수함연구소가 있는 걸 처음 알았다. 한국최초이자 지금까지 마지막 잠수함 영화 유령의 초기 기획자로서 정말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나는 영화 유령의 아이디어를 처음엔 신씨네 신철 대표에게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당시 신씨네는 영화의 규모를 감당하기 힘들고 구미호 이후 신철 대표는 많이 지친 상태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내키질 않은 걸 그렇게 거절의 핑계로 댔다. 왜냐하면 곧 은행나무침대를 기획했기 때문이다.
나는 신씨네와 결별 후 우노필름의 차승재에게 제안했고 차승재는 솔깃했는지 덥석 물었다.
당시 유령을 기획하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영화판에서 나 외엔 없었다. VFX를 모르면 기획할 수 없는 잠수함 소재이고 CG가 없이는 제작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때 VFX Supervisor는 내가 유일했다.
나는 메카닉스 디자이너 송인산을 영입하고 미니츄어팀과 특촬세트장을 남양주 영화진흥공사 세트장이 아닌 서울근교의 사설 특촬스튜디오를 섭외하고 특수효과팀은 데몰리션맨과 합을 맞추기로 했다.
우노필름은 내 시놉시스와 계획을 만족해했고 봉준호 장준환을 공동시나리오 작가로 섭외했다.
나는 영화 유령으로 CG감독 이정환이 아닌 프로듀서 이정환이 되고 싶었고 차승제는 CG영화를 만들고 싶은 서로의 욕심을 채울 수가 있었던 거다.
그런데 신씨네 출신 프로듀서인 김선아가 유령을 욕심냈다. 본인이 프로듀서를 하겠다고 약혼자인 차승재를 졸랐고 차승재는 다음 프로젝트를 내게 맡길 테니 VFX 부분만 책임져달라고 했다.
게다가 신씨네 키드였던 민병천이 감독으로 내정되면서 나를 어려워하던 민병천과의 갈등으로 내가 꾸린 팀들은 그대로 남고 나만 빠지게 되었다.
홧김에 차승재와 한 바탕 다퉜고 그 후 우노필름과 관계를 완전히 끊었다.
아쉬운 건 엔딩크래딧을 챙기지 못한 거다.
이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목격한 건 메카닉스 디자이너 송인산인데 그는 내게 민안함이 컸는지 영화 개봉 이후 딱 한 번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술을 산 후 영화판에서 흔적 없이 사라졌다.
다 지난 얘기지만 내 맘 속에 큰 앙금이다.
(영화 유령에 나온 잠수함의 실제 모델은 장보고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