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진강 너머의 약속, 통일 금융인의 용기와 희망

by 윤석구

[림진강 너머의 약속: 내 인생 최고의 용기] <좌충우돌 인생2막 49호. 2025.6.12>

45년 전 그분과의 만남 이후 오늘날까지 내 삶의 등대가 되어주고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삼성물산 자금부와 일본지사, 그룹 비서실에서의 화려한 경력을 뒤로하고 은퇴 후 한국디지털문인협회를 이끌며 글쓰기 학교를 운영하시는 가재산 회장님. 타고난 부지런함과 깊은 포용심의 성품으로 회원들에게 고스란히 수혜를 베풀어주시는 그분은 진정 내 인생의 진정한 멘토임이 분명하다.

월 2,3회 화요일 오후, 서초동 자동차회관 교육장은 늘 기쁨과 환희가 넘치는 특별한 공간이다. 글 쓰는 요령 수업과 명인 초청 세미나, 그리고 봄가을 지속적인 공동문집 발간까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말처럼, 선조들이 변지록, 지리산등정기, 두과휘편(痘科彙編)을 남기신것치럼, 자신들의 지난 흔적을 책으로 남기려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이 시대에 글쓰기를 통해 궁극적으로 '책이라는 가죽 한 권'을 남기는 것은 큰 보람 중의 보람이다.


나 또한 2년 3개월 전 33년간의 금융인 삶을 기록한 『내 마음의 은행나무』를 시작으로, 작년 겨울 서울대 최고전략과정 공부방에서 만난 『글을 모아 집을 짓다』공동문집 및 이번 『내 인생 최고의 용기』까지 세 번째 문집이 되었다.


2022년 봄부터 시작된 '내 인생' 시리즈의 문집은 가재산 회장님의 주도로 '내 인생의 선택, 위로, 여행, 동행, 선물, 약속에 이어 용기를 주제로 한 일곱 번째 대역작이 탄생했다. 구글 드라이버를 통해 원고를 모집하고 수정을 거듭하며 완성한 이 문집은 글쓰기 공부를 통해 실력이 점점 늘어감을 실감하게 해주는 소중한 결실이었다.

이번 공동문집에서 만난 용기에 대한 정의들은 참으로 다채로웠다. 고지석 님은 세무공무원 생활 중 55세에 야간대학에 입학하여 상속세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폭풍우 속에서도 배를 띄우듯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용기를 정의했다. 평범한 주부에서 작가·강사·활동가로 변신한 김영희 님의 '작은 반란의 힘', 고교 중퇴 후 산사에서 공부하여 지방해운항만청장까지 오른 김효곤 님의 도전기, 안나푸르나에서 삶의 용기를 배운 목남희 님의 등반 이야기, 3년에 걸쳐 DMZ 509km 평화의 길을 걸은 우종희 님의 발걸음, 그리고 일본 주재원 시절 "통역은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나선 허병탁 님의 순간적 용기까지.

특히 이욱희 님의 말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용기는 특별한 사람만이 가진 것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도 가슴속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면 용기를 가질 수 있고, 그 용기가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있다." 각자의 인생에서 마주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전을 한 이야기들이 주옥같은 글로 엮어져 손뼉을 치며 읽어 내려갔다.


함께 게재한 나만의 용기 "림진강 너머의 약속, 통일 금융인의 용기와 희망" 제목으로 군사분계선을 넘나든 3년 간 이야기도 한편 동승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용기 없이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했다. 돌이켜보니 내 삶의 여정도 크고 작은 용기의 순간들로 이어져 왔다. 중학교 2학년 뙤약볕 운동장에서 열린 6·25 반공 연설대회에서 선생님의 코칭도 없이 홀로 무대에 올라 "때려잡자 공산당, 무찌르자 적화야욕"을 외쳤던 그 순간. 비록 예선 탈락의 쓴맛을 보았지만 어린 나에게 자신감이라는 씨앗을 심어주었다. 고교 시절 안정적인 은행 취업 대신 이병철 회장님 앞에서 면접을 보고 삼성물산에 입사했던 결정도 작은 용기의 발현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인생 최고의 용기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땅, 개성공단에서 보낸 3년이었다. 그 결정의 배경에는 정주영 회장님의 회고록이 있었다. 부친의 소 한 마리 판돈을 훔쳐 서울로 내려와 남들보다 수천 배 노력했던 불굴의 도전 이야기, 500원 지폐의 철갑선을 보여주며 "500년 전 우리 선조들은 이미 배를 건조한 경험이 있다"는 과감한 주장으로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으로부터 외자를 유치한 뚝심, 금강산 관광을 열고 북녘에 소 1,000마리를 보낸 정 회장님의 용기와 헌신이 내게 너무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2004년 여름, 군사분계선을 살짝 넘은 야산과 논밭. 북한 군인들 입장에서 보면 최전선 군사요충지를 후퇴시키며 국제적인 공단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그곳에서, 나는 12월 1일부터 컨테이너에서 숙식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전기가 없어 발전기 두 대로 전기를 교대 공급하며,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위협 속에서도 3년을 버텨냈다. 개성공단 123개 입주기업의 금융 활동을 지원하며 북한 여성 두 명에게 금융업무를 전수했던 그 시간들. 돌이켜보면 무모하고 무식한 용기였지만, 통일의 선봉에 선다는 사명감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

2주에 한 번씩 서울 집을 다녀가며 초중등학교 다니는 아이들과 도서관 한 번 함께 가지 못하고, 신문 한 장, 인터넷 정보 하나 접할 수 없는 완전히 폐쇄된 공간. 그러나 그곳에서 나는 사회주의 전체주의 체제 아래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먹을 것이 부족하고 영양분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키가 160cm 언저리에 머문 주민들, 입주기업 주재원들이 건넨 초코파이와 중식 시간 소고기미역국 한 그릇으로 3개월 만에 얼굴이 뽀얘지고 살이 오르던 북한 여성들. 종교의 자유가 없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태어나지 않은 자유의 소중함을 절감하며, 매일 깃발을 들고 반국가 구호를 외치는 이들에게 "딱 일주일만 이곳에서 살아 보라"라고 말하고 싶었다.



대한민국의 기술 자본과 북녘의 노동력이 결합하여 양질의 제품을 생산하던 개성공단은 남북평화협력의 가장 이상적인 완충 공간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지속적인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공단 개방 12년 만인 2016년 초, 안타깝게도 폐쇄의 아픔을 맞게 되었다. 금고의 시재금을 꺼내고 노트북 한 개만 들고 철수하던 그날, 후배들과 나의 마음은 언젠가 올 '다음'을 기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용기와 도전에 공간이 그립고 마음이 울적해질 때면 자동차 시동을 걸고 통일대교와 임진각으로 향한다. 저 멀리 임신한 여인이 머리를 풀고 드러누운 형상의 송악산이 눈앞에 펼쳐지면, 핸드폰으로 《림진강》 노래를 틀어 놓는다.

림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
물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 가니
림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냐.

언제 들어도 가슴을 후벼 파는 이 애절한 가사처럼, 물새들은 군사분계선 DMZ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아다니건만 임진강물은 오늘도 유유히 흘러 서해바다로 흘러간다. 정주영 회장님이 북녘에 보낸 그 소들의 새끼들은 지금 잘 자라고 있을까. 북녘 개성공단지원센터가 폭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은행 개성공단 개점 당시 대기업 회장님들이 선물로 주신 유화 한 점이 빈 지점을 여전히 잘 지키고 있을까. 언젠가 은행의 후배들이 다시 그곳으로 복귀하여 반갑게 맞이할 그날을 꿈꾸고 또 꿈꾼다.

지금 돌이켜보니, 내가 군사분계선을 뚫고 은행 지점을 만들어 3년간 근무했던 것은 단순한 역마살이나 모험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정한 통일의 선구자로서 발휘한 용기였다. 서로 다른 두 체제가 만나는 역사적 접점에서, 나는 작은 금융인의 다리 하나를 놓았다. 비록 그 다리는 지금 끊어져 있지만, 언젠가 다시 이어질 그날을 위해 내가 남긴 흔적들이 그곳에 여전히 남아 있다.

"용기란 결국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도 올바른 가치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두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선택하는 것이다." 민족의 분단이라는 깊은 아픔 속에서도 통일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선택한 나의 작은 용기가, 언젠가 더 많은 용기들과 만나 하나의 큰 강물처럼 흘러 한반도의 평화통일이라는 바다에 닿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25.6.10. 서초동 글쓰기 공부방에서...

윤석구 한국열리사이버대 특임교수 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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