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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Jan 20. 2023

자신을 포장하려 하지 마세요.

나이 든 여자의 알바 이야기 / 주방 알바와 요양보호사

주방 알바를 시작한 초기에 나는 아침마다 떠오르는 걱정 때문에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집을 나서곤 했다. 과거 국장님 칭호까지 들었던 내가 설거지만 온종일 해야 하는 현실을 끝까지 참아낼 수 있을까, 오늘은 잔소리를 좀 덜 듣고 일할 수 있을까, 일도 못하는 주제에 그동안 윗사람 노릇 하던 태도 때문에 식당 직원들한테 왕따를 당하지나 않을까, 각종 걱정들이 출몰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신입이라는 사실을 매일 아침 스스로 명심하곤 했었다. 처음 가는 식당에서는 내가 초보자라는 걸 미리 말했다. 식당 주인은 대개 똑같은 대답을 했다.

"상관없어요. 시키는 일만 하면 돼."

상관없지 않았다. 나는 손이 느려서 주방장의 복장이 터지는 것은 당연했고 곧바로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큰 잘못을 저지른 양 급급 사과를 했다. 식사 시간에 직원들이 수다를 떨어도 나는 웃는 낯으로 그냥 듣기만 했고 절대로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대처였다.


한 백반집에 갔었는데, 동네에 백반집은 이 집만 있는지 끼니때마다 배달만 수십 군데였고 홀도 줄을 서서 먹는 곳이었다. 설거지 양이 어마어마해서 그릇이고 뚝배기고 냄비고 정신없이 씻는데도 손님 들어오는 속도를 내가 따라가질 못했다. 홀 담당들이 짜증을 내며 나에게 소리쳤다.

"빨리 좀 치워요. 상을 못 차리고 있잖아."

"네네, 죄송합니다."

돌아다보니 새로운 상을 차려서 올려놓아야 할 창구까지 설거지 쟁반들이 층층이 점령하고 있었다. 주인이 "어이구, 내 참!" 하더니 옆으로 와서 설거지를 시작했다. 속도가 엄청났다. 내가 쟁반 하나를 처리할 동안 주인은 세 개를 처리했다. 주인이 소리쳤다.

"아줌마! 설거지 다한 그릇은 빨리 정리해야지. 그렇게 쌓아두면 어떻게 해!"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줌마 숟갈 좀 씻어. 모자라겠다."

"네, 알겠습니다.~"

"아줌마, 숟갈을 하나하나 씻어야지. 그렇게 한꺼번에 씻으면 어떻게 해!"

"네, 알겠습니다.~"

주인이 설거지를 한 지 5분이나 지났을까. 내 주변에 산처럼 쌓였던 쟁반들이 다 사라지고 주인은 어느새 가스 조리대 앞에 가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요리 보조인 여직원 한 명이 밀려드는 주문을 미처 따라가지 못해 허둥대고 있었다. 주인 입에서 큰 소리가 터졌다.

"보조야, 찌개 넘기지 말라 그랬지? 몇 번을 얘기해야 하냐."

"보조야, 그거 새로 하면 어떻게 해? 그냥 추가라니까!"

주인은 끊임없이 소리치는데 보조는 묵묵부답이었다. 힐끗 보니 보조는 화가 난 얼굴로 불길을 조정하고 뚝배기 겉을 닦고 있을 뿐이었다. 주인이 그녀에게 소리쳤다.

"보조야, 너도 아줌마처럼 대답이나 좀 해라. 뚱해 갖고는..."


밤에 일이 끝났을 때 주인은 내 바지 주머니에 일당을 찔러 넣어 주면서 말했다.

"오늘 힘들었지? 아줌마는 성격이 좋아서 맘에 드네. 다음에 부르면 또 올 수 있지?"

"네네네, 그럼요."

하루 종일 나는 내가 너무 서툴러서 주눅이 들어 있었는데 그게 아닌가 보았다. 이후로도 나는 일은 못해도 성격이 좋아서 다시 부른다는 소리를 가끔 들었다. 그게 아마 대답을 잘 해서인 것 같았다. 어느 날부터 나는 왕따 걱정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식당 일을 그만두고 등하원 도우미를 할 때는 또 다른 걱정들로 매일 아침 마음이 무거웠다. 혹시 아이들이 갑자기 떼를 써서 나도 모르게 화를 내진 않을까. 오늘도 아이들이 사고 없이 잘 넘어가야 할 텐데. 정신이 없어서 뭔가 실수를 하여 그 집 어른들로부터 한 소리 들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들 때문에 마음이 안정이 안 되어 나는 매일 아침 꼭 기도를 하고 나서야 출근할 수 있었다. 엄마가 믿는 부처님한테 기도하고 아이들 집에서 믿는 천주교 예수님한테 기도했다. '오늘도 별 탈 없이 무난한 하루가 되게 도와주십시오.' '어떤 화나는 일이 있어도 제 마음이 평온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다만 주방 일을 할 때보다 나은 점은 굳이 내가 침묵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좀 아는 척을 하는 게 도움이 됐다.


아이들을 돌보는 동안 가끔 아이들 외할아버지가 집에 들르곤 했었다. 그는 나를 조금 미심쩍게 생각했었다. 내가 매일 체온 체크를 안 한다는 점, 아이들한테 TV를 너무 많이 보게 한다는 점 등이 불만이었다.


하루는 아이들과 욕실에서 각종 장난감을 갖고 물장난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들 외할아버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소리쳐 인사만 하고 계속 놀았다. 큰 아이가 컵에 물을 가득 따르고는 말했다.

"할머니, 이것 봐. 물이 컵 위로 솟아올랐는데 안 쏟아져. 신기하지?"

"맞아. 신기하지? 그걸 표면장력이라고 해. 표면장력, 말해 봐."

"표면,... 응? 뭐라고?"

"호호호, 발음이 좀 어렵지?"


욕실에서 나와 거실에서 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식탁 밑에서 이불을 갖고 노는 걸 좋아했다. 식탁 밑이 성이라 하면서 각종 장난감을 쌓아 놓았다. 나는 식탁 주변에 파란색 이불을 둘러싸 놓고 말했다.

"여기는 해자라 하자."

"해자가 뭐야?"

"성을 삥 둘러서 땅을 파고 거기에 물을 채워 놓은 거야. 적들이 쳐들어오지 못하라고."

"알았어. 좋아."

우리가 노는 모습을 빙긋이 웃으며 쳐다보던 외할아버지가 나를 보며 말했다.

"애들이 어려운 말을 많이 해서 어디서 들었나 했더니 이모할머니한테 배운 거군요."


아이들 외할아버지는 언젠가부터 불만스러운 말을 일절 하지 않았는데, 아마 이날 이후부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나로서는 애들한테 혹시 사고가 날까 봐 매일 기도해야 하는 불안감은 어쩔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 집 어른들과의 신뢰 문제는 해결된 느낌이었다.


그동안 여러 알바를 해왔지만 한 번도 수월하게 시작해 본 적이 없다. 항상 새로운 문제들이 앞을 가로막곤 했다. 문제들이 해소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고 그 시간 동안은 일이 버거워 마음이 무척 힘들었었다. 그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최요양보호사로 5등급 치매 어르신을 담당하면서부터는 좀 더 복잡한 문제에 부딪쳐서 어떻게 대처해 가야 할지 난감했다. 인지교육을 하면서 동시에 집안일도 도와야 해서 나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혼돈스러웠다.


며칠 전 어르신이 한밤중에 전화를 해 왔다.

"대학을 나왔지? 4년제 나왔나?"

"네."

"그래서 그런가, 자네는 이런 일이 안 맞아. 이런 일 말고 사무직 같은 데서 일하지 그래."

"나이가 많아서 아무도 안 써줘요."

"아직은 찾아보면 있을 걸. 자네는 그런 일을 더 잘할 것 같은데."

"그런 일은 자원봉사라서 한 달 50만 원도 못 벌어요."

"그래?... 근데 사실은 말이야, 내가 그동안 자네한테 말을 못 해서 가슴에 울화가 차서 전화했어. 내가 몸이 힘드니까 자네한테 의지를 해야 하는데 내가 필요한 일은 하나도 안 하고 난 자네한테 말도 못 하고."

"어머, 죄송해요.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아니, 아까 화장실에서 걸레 빨고 그 옆에 매트는 안 씻고 그냥 갔더라고. 그게 눈에 안 보이나? 머리가 왜 그렇게 안 돌아."

"그건 저... 이미 끝날 시간이 20분이나 지나서..."

"그동안 화장실 청소도 한번 안 하고. 난 집안 청소가 젤 중요한데 왜 그런 거 안 해. 내가 그동안 자네가 그런 거 해 줄 줄 알고 기다렸는데 어쩌다 한번 하고 말더라고."

"화장실 청소는 저번에 제가 하려니까 어르신이 관두라고 막..."

"내가 집을 어질러 놓으면 그런 거 알아서 치우고 그래야지. 텔레비전 위에 먼지 닦는 거 그런 거 몇 분도 안 걸리는데 후딱 해치우고 나서 내가 시키는 일을 하고 해야지. 어떻게 일일이 시켜. 자넨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니니, 내가 막 뭐라 할 수도 없고 가슴이 답답해서 죽겠어."

"그냥 해 달라고 말씀하시면 금방 해드릴..."

"고지식하게 시키는 거만 하면 안 되는 거야. 남의 집 일을 하려면 딱 딱 알아서 요령 있게 해야지."

"음, 제가 눈치가 좀 없어요. 죄송해요."


나는 통화 내내 정말 당황했다. 나는 그동안 어르신이 시키는 일만 한 건 맞지만, 10분 이상 쉰 적이 없었다. 때로는 끝나는 시간을 넘겨 일하곤 했다. 하지만 어르신은 내가 청소부터 후딱 하고 반찬도 도와주고 은행 심부름도 하고 등등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어르신은 과거에 남의 집 일을 많이 해본 분이어서 내가 일하는 모습이 너무 서툴러 보였던 것이다.


납득은 됐다. 하지만 내가 어르신의 요구에 맞춰보려 해도 어차피 제한 시간이 있으니 어르신은 만족할 수 없을 것 같다. 요양보호사란, 집안 일을 어르신 대신 알아서 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어르신과 함께 집안 일을 하면서 어르신이 일상 생활을 수행하는 법을 잊지 않도록 돕는 사람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시킬지 그것도 걱정이 됐다. 내가 아직 초보자여서 어르신의 말씀 중 어디까지가 치매고 어디부터 정상적인 인지 능력인지 판단할 수 없으니 성급하게 이해를 구할 순 없을 것이다.


많은 요양보호사들이 가사도우미처럼 일해 준다고 하니 나도 그렇게 할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어르신이 나에게 집안일을 마음 편히 막 시키지도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게 뭔가 꺼려져서, 그게 답답하신 것 같았다. 혹시 내가 소위 배운 티가 나서 그러시는 건가. 인지 교육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배운 티를 안 낼 수 있나. 어쩌면 이유 불문 그냥 내가 싫은 건지도 모른다. 경험상, 사람 불편한 건 보통 이유가 없고 해결이 잘 안 된다. 나는 센터에 말해서 다른 5등급 가능 요양보호사를 찾아봐 달라고 해야 하나 밤늦도록 고심했다.


지난가을, 브런치북을 만들면서 제목을 '퇴직한 여자의 알바 이야기'라 하면 어떨까 하고 친지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그는 시인이고 출판계에도 다년간 근무했었다. 그는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퇴직은 무슨! 나이를 그냥 밝히세요."

"브런치 글들을 보면 다들 젊은 사람들이 쓰던데, 나이를 밝히기는 좀 창피하고... "

"자신을 포장하려 하지 마세요."

나는 찔끔했지만 그래도 나이를 밝히기는 싫어서 타협안을 만들었었다. '나이 든 여자의 알바 이야기'.


당시에는 친지의 말이 마치 정곡을 찌른 듯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포장은 무슨!


나는 나를 포장하려 한 적이 없다. 힘에 부친 일을 앞에 두고 어떻게든 적응해 보려고 애를 써 왔을 뿐이다. 좀 더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문제없이 살 수는 없을까. 내가 가진 평범한 능력만 쓰며 살아도 그냥 잘 살아지는 삶을 간절히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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