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황혼이 그대의 새벽이 되기를

슈만이 브람스에게 열어준 '새로운 길'

by 조재연

스포츠 뉴스에서 심심찮게 '리빌딩(Rebuilding)'이라는 단어를 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주축 선수들의 기량이 세월의 무게 앞에 쇠퇴하면, 팀은 그들의 빈자리를 채울 젊은 피를 수혈하며 새로운 시대를 준비한다. 그것이 승부의 세계, 아니 삶의 섭리다.

영원한 것은 없다. 슈만 인생의 절정이자 황혼이 깃든 도시, 뒤셀도르프를 여행하며 나는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츠비카우의 문학소년은 하이네를 찾아 떠났고, 음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나 불의의 사고로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어야 했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법정 싸움까지 불사하며 꿈같은 결실을 보았지만, 삶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평생 그를 괴롭히던 병마는 서서히 그의 행복을 옥죄어 왔다. 고통이 깊어질수록 역설적이게도 그의 음악은 더욱 슬프고 아름다워졌다.

독일 낭만주의의 거장, 로베르트 슈만의 찬란한 시기는 일주일이 채 가지 않는 벚꽃처럼 짧았다.

벚꽃이 지고 황혼이 내려앉던 뒤셀도르프의 어느 가을날, 지휘자의 집에 금발의 아름다운 청년 음악가가 찾아왔다. 1853년 10월 1일, 뒤셀도르프 슈만 하우스에서 펼쳐진 그 역사적인 현장을, 요하네스 브람스의 시선과 로베르트 슈만의 시선으로 따라가 보았다.


브람스의 시선


1853년 9월 30일. 함부르크에서 온 스무 살의 청년 요하네스 브람스는 심장이 터질 듯한 기분으로 뒤셀도르프 빌커 가(Bilker Straße)에 있는 슈만의 집 앞에 섰다. 그의 손에는 요아힘이 직접 써준 소개장이 들려 있었다. 존경하는 로베르트 슈만 선생님을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뛰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를 맞이한 것은 슈만 부부가 아닌 큰딸 마리였다. 내성적인 성격의 브람스는 우물쭈물하며 자신을 소개하고 요아힘의 편지를 내밀었다. 마리는 부모님이 정오에는 늘 산책을 하시니, 다음 날 오전 11시에 다시 와달라고 친절히 안내했다.


벨이 울렸다.
나는 밖으로 뛰어나가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긴 금발의 한 아름다운 청년이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은 요하네스 브람스였다.

-슈만 부부의 큰딸, 마리의 회고록-


다음 날, 10월 1일 오전 11시. 브람스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슈만의 집을 찾았다. 이번에는 가운을 걸치고 슬리퍼를 신은 슈만이 직접 문을 열었다. 동그랗게 뜬 눈으로 놀라움과 반가움을 동시에 표현하는 대가를 마주한 순간, 브람스는 기쁨에 어쩔 줄을 몰랐다.

슈만은 브람스를 따뜻하게 맞이하며 집안으로 안내했다. 요아힘에게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들었기에, 슈만 역시 이 젊은이를 몹시 기다리고 있었다. 슈만은 브람스를 자신의 피아노로 안내하며 연주를 권했다.

얼마 전,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 앞에서도 심드렁하게 연주했던 그였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브람스는 온 힘과 영혼을 다해 자신의 '피아노 소나타 1번 C장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로랑스가 그린 스무 살의 요하네스 브람스 (1853)

곡의 시작과 동시에 터져 나오는 강력하고 웅장한 C장조 화음은 마치 베토벤의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를 연상시킨다. 수줍은 청년의 내면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음악적 야망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이 강력한 첫 주제는 소나타 전체의 성격을 규정한다. 피아노 한 대로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는 듯한 스케일에 이어, 부드럽고 서정적인 두 번째 주제가 등장한다. 강렬한 열정 속에 숨겨진 섬세한 감성. 폭풍과 고요함의 극적인 대비를 통해 젊은 브람스의 다채로운 내면이 쏟아져 나왔다.

존경하는 슈만 부부 앞에서 떨리는 손으로 건반을 눌렀을 스무 살의 브람스를 떠올리며 이 곡을 들어본다.


https://youtu.be/JKlhAqqkokI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연주하는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1번 1악장

격정적이고 장엄한 선율이 울려 퍼지자, 슈만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잠시 연주를 멈추게 한 뒤, 아내 클라라를 급히 불렀다.

"이런 음악은 나 혼자 들을 수 없소! 클라라, 어서 와보시오!"

부부는 나란히 앉아 다시 연주를 들었다. 클라라 역시 이 젊은 음악가가 지닌 비범한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연주가 끝나자 슈만 부부는 마치 아이처럼 기뻐하며 찬사를 쏟아냈다.


이곳에 신이 내려보낸 것 같은 사람이 와있다!
그가 연주한 소나타와 스케르초는
모든 풍부한 환상, 깊은 정서
그리고 거장의 형식을 갖춘 작품이었다.
로베르트는 그의 작품은 수정할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그를 봐도,
연주할 때 흥미롭게 빛나는 그 젊은이의 얼굴을 봐도,
아무리 어려운 부분이라도
쉽게 극복해 나가는 손가락을 봐도,
무엇보다도 그렇게 놀라운 그의 작품을 보니
정말 감동적이다.

-클라라 슈만의 일기-


깊어가는 병과 뒤셀도르프 시의회의 음악감독 사퇴 압박으로 침울했던 집안은 순식간에 흥분과 활기로 가득 찼다. 한 달간 뒤셀도르프에 머무는 동안, 브람스는 마치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슈만은 브람스를 제자 디트리히, 문학가 베티나 폰 아르님 등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했고, 화가 로랑스는 스무 살 브람스의 옆모습을 그림으로 남겨주기도 했다.

로랑스가 그린 브람스와 슈만
뒤셀도르프 슈만 하우스 '사교의 방'

바로 이 장면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뒤셀도르프 슈만 하우스에 있다. '클라라의 방'을 지나면 '사교의 방(Gesellschaftszimmer)'이 나온다. 사진 속 전시실은 당시 슈만 부부가 아끼는 손님들을 맞이하던 응접실을 보여준다. 보면대 위에는 이곳을 찾았던 손님들의 이름이 적힌 책자들이 놓여 있다.

슈만 부부는 뒤셀도르프에서 공적인 사교 모임을 피했다. 대신 자신들의 집으로 친밀한 사람들을 초대해 응접실을 사교의 장으로 삼았고, 이곳에서 영감을 주는 대화와 함께 음악을 나누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이곳을 찾은 가장 중요한 방문객으로는 시인 베티나 폰 아르님, 바이올리니스트 바지렙스키, 그리고 요제프 요아힘이 있다. 그리고 스무 살의 요하네스 브람스는 이 중 슈만 부부에게 가장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 클라라가 일기에 "그가 방문한 후 집안의 모든 질서가 뒤집혔다"고 쓸 정도로, 슈만 부부는 그의 격렬하고 탁월한 피아노 연주를 사랑했다.


행복했던 뒤셀도르프 생활을 마치고 하노버로 떠난 브람스는 곧 슈만이 보낸 깜짝 선물을 받게 된다. 바로 슈만이 창간한 '음악신보(Neue Zeitschrift für Musik)'에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기고한 것이다.

이는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슈만은 무려 10년 가까이 평론가로서의 펜을 꺾고 침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젊은 천재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뜨거운 사랑과 사명감은 그를 다시 펜을 들게 만들었다.


새로운 힘을 지닌 음악가의 출현이 예고되고 있다. 아름다움의 여신 칼리텐과 영웅들이 보호하던 곳, 이곳 출신의 혈기 왕성한 젊은이, 이름하여 요하네스 브람스. 외모만 봐도 부름을 받은 음악가라는 예감이 든다.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놀라운 미지의 세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마법의 굴레에 갇히는 것 같았다. 거대한 강물이 배후에서 요동치듯이, 모든 성부를 하나의 폭포수로 합치는 것 같았고, 멀어지며 부서지는 포말 너머로 평화로운 무지개가 걸리는 것 같았다. 우리 동지들 모두 기적이 일어나길 고대해 온 세상에 그가 출현하게 된 것을 감사하고자 한다. 월계관과 승리의 종려와 함께, 강력한 전사 브람스를 환영한다.

슈만의 '음악신보' 기고문, '새로운 길(Neue Bahnen)'중에서
슈만이 브람스를 소개한 '음악신보', 츠비카우 슈만하우스

내성적이던 브람스는 이 글을 보며 스승 슈만에게 무한히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엄청난 무게감을 느꼈다. 당시 유럽 음악계에서 절대적인 공신력을 지녔던 '음악신보'의 힘은 막강했다. 브람스의 이름은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그는 하룻밤 사이에 주목받는 신예 스타로 거듭났다.

이 기세를 이어 슈만은 브람스에게 작품 출판을 권했다. 슈만의 소개로 음악의 도시 라이프치히에 있는 명문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 출판사로 향한 브람스는 그곳에서 당대 최고의 작곡가들을 만나는 영광을 누렸다.

파리에서 활동하던 대작곡가 베를리오즈는 브람스의 연주를 듣고 그를 독일의 대문호 '실러'에 비유하며 극찬했고,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한스 폰 뷜로 역시 깊은 감명을 받아 평생 동안 그의 지지자가 되었다.

존경하던 슈만 선생님을 찾아뵈었던 함부르크 청년 브람스는, 이제 유럽이라는 큰 무대에서 환호를 받기 시작했다. 슈만이 열어준 '새로운 길' 위로, 브람스는 그렇게 첫발을 내디뎠다.


슈만의 시선


슈만은 사랑하는 제자 요아힘의 편지를 통해 '브람스'라는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를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1853년 9월 30일, 슈만부부가 외출을 다녀오니 큰 딸 마리가 함부르크에서 요하네스 브람스라는 사람이 다녀갔다고 그의 노트에 적어 놓았다. 슈만은 딸에게 다음 날 11시에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다음날 11시 정각에 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슈만은 설레는 마음으로 직접 문을 열었다.

요아힘이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


어젯밤 브람스가
제 창가에 나타났습니다.
마치 다가올 겨울의 행복을
예언하는 환영처럼 말입니다.
저희는 벌써 당신과 로베르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요아힘이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



마침내 마주한 청년은 그림같이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자신의 소나타를 연주를 시작하자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소리는 보통의 재능이 아니었다. 열정적인 음형과 격정적인 연주에서 슈만은 베토벤을 떠올렸고, 브람스가 베토벤 이후 멈춰있던 독일 음악을 이끌어 나갈 새로운 방향임을 직감했다.

자유로운 즉흥성과 엄격한 논리를 동시에 갖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작곡가 슈만은 이 스무 살 청년이 그 어려운 경지에 이미 도달해 있음을 보았다. 슈만은 곧바로 요아힘에게 편지를 썼다.


반드시 와야 할 사람이 왔네.

-슈만-



저도 브람스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의 멋진 외모에는 시기심이 발동할 정도입니다.

-요아힘-


그날, 슈만은 자신의 일기장에 단 한 문장을 적었다.


Brahms. Ein Genie zu Besuch.
(브람스. 천재가 방문했다.)


브람스의 존재는 어둡고 침체되어 있던 슈만의 집에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시의회와의 갈등, 위태로운 지휘자로서의 입지, 그리고 창작력을 갉아먹는 환청과 병세로 고통 속에 살던 그는 브람스를 만나고 그의 음악을 들으며 거짓말처럼 생기와 창작열을 되찾았다.

슈만은 이 위대한 재능을 세상에 알려야만 했다. 그것은 그의 마지막 사명과도 같았다. 10월 13일, 슈만은 펜을 들었다.


그 젊은 독수리에 대한 내 생각들을 모으고 정리하기 시작했네.

-슈만이 요아힘에게 보낸 편지-


그렇게 탄생한 글이 바로 음악신보의 '새로운 길'이었다. 슈만은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언어를 동원해 브람스를 찬양했다. 마치 자신이 못다 한 과업, 베토벤을 잇는 위대한 여정을 맡아줄 적임자를 찾은 안도감과 숭배가 글 속에 절절히 묻어났다.

브람스의 방문은 슈만에게 마지막 창작의 불꽃을 선물했다. 브람스가 머물던 시기, 카를스루에 음악 축제에 참석했던 요아힘이 지친 몸을 이끌고 뒤셀도르프의 슈만 집을 찾아왔다.

요아힘은 그곳에서 만난 리스트를 비롯한 급진적인 성향의'신독일학파'들이 자신이 존경하는 슈만과 멘델스존을 폄하하는 발언에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지친 제자를 위로하고 싶었던 슈만은 브람스와 제자 디트리히에게 특별한 제안을 했다. 요아힘의 모토인 'F-A-E(Frei aber Einsam, 자유롭지만 고독하게)'의 앞 글자를 따서 바이올린 소나타를 합작해 선물하자는 것이었다.

스승의 제안에 두 제자는 망설임 없이 응했다. 세 사람은 각자 악장을 나누어 작곡했고, 귀한 선물을 받은 요아힘은 뛸 듯이 기뻐했다.

이렇게 세 사람의 우정이 담긴 'F-A-E 소나타'는 오랫동안 정식으로 출판되지 않고 요아힘이 개인적으로 소중히 간직했다. 하지만 브람스가 작곡한 3악장 '스케르초(Scherzo)'만큼은 그 압도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오늘날에는 독립된 바이올린 소품으로 자주 연주되곤 한다.

F-A-E 소나타 악보 표지

스무 살 브람스의 젊음과 천재성이 폭발하는 듯한 이 격정적인 곡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연주로 소개한다. '자유롭지만 고독하게'라는 주제를 가장 뜨겁게 표현한 악장이다.

https://youtu.be/HqpjiFy9fVI

정경화가 연주하는 브람스 F-A-E 소나타 중 '스케르초'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불꽃은 오래가지 못했다. 10월 19일, 뒤셀도르프 시의회는 슈만에게 사실상의 해고를 통보했다. 슈만 자신은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건강은 오케스트라를 장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첫 공직 생활의 좌절은 가뜩이나 악화되던 그의 병세를 더욱 가속화했고, 실의에 빠진 슈만의 환각 증상은 주변 사람들을 걱정시킬 만큼 심해졌다. 슈만의 마지막 불꽃은 점차 꺼지고 있었다.

요아힘을 위해 'F-A-E 소나타'를 작곡한 뒤 '새벽의 노래(Gesänge der Frühe)'를 완성했다. 그리고 해가 바뀐 1854년 2월, '유령 변주곡(Geistervariationen)'을 끝으로 그의 작곡은 완전히 멈추었다. 그는 1853년 11월처럼 자신의 옛 작품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자신의 음악적 생명이 다해가고 있음을 예감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름다운 이별, 그리고 새로운 길


처음으로 공직에 임명되어 안정된 삶을 기대했던 뒤셀도르프의 슈만. 슈만의 시간은 야속하게도 그 안정된 삶을 길게 허락하지 않았다. 처음 선임이 되었을 때 탐탁지 않음을 표현했지만, 환대를 받으며 인정받는 기분이 꽤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괴롭혔던 환각 증상이 발목을 잡았다. 고통 속에서도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했지만, 장악력을 잃은 지휘자는 더 이상 포디움에 설 수 없었다.

자신에게 큰 기대를 걸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던 시의회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그에게서 등을 돌렸을 때, 그가 느꼈을 배신감에 대해 생각해 본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최선을 다한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지 못하는 서운함이 얼마나 컸을까.

한편으로는 뒤셀도르프 시의회와 단원들이 그러했던 이유도 이해가 간다. 지휘 중 지휘봉을 자주 떨어뜨리고 멍하니 서 있기를 반복하는 지휘자를, 한참 성장해 나가기 위해 야심 차게 영입했던 도시가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외부와 단절된 채, 자신의 지인들과 교류하며 황혼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불현듯 요하네스 브람스가 나타났다. 자신과 같은 음악을 추구하면서도,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큰 것을 가진 젊은 음악가. 저물어가는 자신의 시간과 달리 떠오르는 태양 같은 젊은 브람스를 보고, 거장은 행복했다.

슈만은 새로운 음악가를 발굴하고 오래된 명작을 발견하는 일 등 음악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했던 사람이다. 쇼팽을 음악신보에 소개했고, 슈베르트의 교향곡을 세상에 꺼냈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어린 브람스의 재능을 질투하지 않고, 진심으로 아끼고 좋아했다. 그는 브람스에게 알리지 않은 채, 오랫동안 펜을 놓았던 음악신보에 혼신의 힘을 다한 글로 브람스를 유럽 음악계에 소개했다.

그가 적은 '음악신보'의 기고문 '새로운 길'을 보면, 날카롭게 평론하던 평소의 어투는 온데간데없고 마치 신을 향한 경배처럼 쓰여있다.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언어를 동원해 브람스를 찬양하고 소개한다. 자신이 못다 한, 베토벤을 잇는 일을 맡아줄 적임자를 찾은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시선과 동시에 숭배가 느껴지는 그의 글을 번역본으로 읽을 때면, 원문이 주는 감동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는 사실에 속상해지곤 한다.

문득 어제, 대한민국의 축구 스타이자 토트넘의 간판선수인 손흥민 선수가 떠올랐다. 그는 서울에서 열리는 뉴캐슬과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정들었던 토트넘을 떠났다. 토트넘 역사에 길이 남고,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손흥민 선수가 토트넘 소속으로 마지막 피치를 누비며 주장 완장을 건넨 후 오열을 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짐과 동시에 로베르트 슈만의 마지막 불꽃이 떠올랐다.

자신의 시대를 마무리하는 숭고한 눈물과,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는 숭고한 헌신은 같은 무게의 감동을 준다.

https://youtu.be/CW7CZcbZaUc

슈만 피아노곡 '새벽의 노래'를 들으며, 뒤셀도르프 슈만 하우스를 나와 비가 내리는 라인강으로 향했다. 위대한 음악가 로베르트 슈만의 마지막 혼이 담긴 고백이자 작별 인사인 이 곡을 들으며 걷는 길이 참 슬프다.

당시 슈만의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환청이 들렸고, 때로는 천사가, 때로는 악마가 말을 거는 듯한 환각에 시달렸다. 이런 혼돈 속에서도 그는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이 곡은 그가 존경했던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Friedrich Hölderlin)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되었다. 횔덜린 역시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다 생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였기에, 슈만은 그의 시에 깊이 공감하며 자신의 마지막 예술혼을 이 곡에 투영했다.

슈만에게 '새벽'은 희망찬 하루의 시작이 아닌, 인생의 황혼에서 맞이하는 끝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언제나 기쁨과 고통은 함께 온다.
기쁨 속에서는 진중하고,
고통은 기꺼이 받아들여라.

-로베르트 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