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 한 가운데서 흔들리는 것은 그대 억새풀 뿐인가
능선에서 불러오는 바람에 스산히 신음하는 것은 당신 뿐인가
찬바람이 그치기를 바라는 것은 지혜가 아닐 터인데
불어오는 바람에 가끔 힘없이 몸을 맡기는 것은 우매가 아닐 터인데
몰아치는 비에 소리 죽여 눈물 흘리는 것은 나약함이 아닐 터인데
당신 억새풀은 어찌하여 그리 삶을 슬퍼하는가
그러자 억새풀이 나에게 대답하였다
나의 신음은 나의 탄식을 위한 것이 아니요
나의 눈물은 나의 고통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나의 목적은 이 황량한 들판을 들르는 사람에게 벗이 되어 주는 것이니
당신이 나의 비통함을 보고 깨달음을 얻는다면 나의 소명을 다하는 것
한낱 미물로부터도 배우는 당신은 겸손을 배운 사람일 터
이제 비가(悲歌)는 그만 두고 다른 이의 억새풀이 되어 주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