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이주 끝에 귀환할 목적지는 어디인가

김영하 소설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고

by 박주영

책은 때로 고향이 된다. 해외에서 매일 전자책을 펼칠 때면, 나는 서울로 돌아간 듯 마음이 따뜻해진다.


김영하 소설가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를 읽으며, 책을 펼치기 전 가졌던 선입견부터 흔들렸다. 세계 일주를 기록한 화려한 여행담일 거라 짐작했지만, 그 안에는 끊임없는 이주와 방황, 그리고 스스로의 결핍을 마주하며 살아온 한 인간의 이야기가 있었다.


작가의 삶은 의외로 내 삶과 닮아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살았고, 성인이 된 뒤에도 뉴욕·부산·서울 등지를 전전했다.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화려한 이면 뒤에 은둔과 우울, 자기 회의가 있었음을 알게 되자, 인생의 부침을 겪는 것은 누구나 같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나 역시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일하며, "정착"보다는 "이주"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왔다. 때로는 한 곳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흔들림 속에서도 길을 걸어온 나를 긍정하고,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가기로. 결국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오늘의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하지만 김영하 작가의 글을 읽으며 깨달았다. 내 삶의 ‘역마’를 멋지게 견뎌낸 스스로를 더 긍정하게 되었고, 30대의 내가 50대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마음먹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알 수도 없지만,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는 내가 바로 내 삶을 만들어가는 주체라는 사실을.


지금의 나는 한국을 그리워하면서도, 매일 책을 벗 삼아 살아간다. 서울시민카드로 온라인 도서관에서 전자책을 빌려 읽으며, 책장을 넘길 때마다 고향의 친구와 대화하는 듯한 위안을 얻는다. 결핍이 있기에 그리움이 더 깊어지고, 그 그리움 속에서 언어와 기록은 나의 또 다른 고향이 되어준다.


“모든 여행은 끝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김영하 작가의 이 문장을 곱씹으며, 나의 삶 또한 하나의 여행임을 인정하게 된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 떠돌이 같은 나의 발자취, 그리고 매일 읽는 책이 내게는 귀환의 장소가 되어주고 있다. 결핍이 있기에 더 깊이 성장할 수 있고, 그 결핍을 메우는 언어와 기록이 있기에 삶은 조금 더 단단해진다.


절대적인 고향과 타향도 명확하게 있는 게 아니고, 긴 이주 또는 여행 끝에 본인의 귀환할 곳이 어디일까?


아마도 훗날 돌아보았을 때, 지금의 이 해외 생활 역시 ‘여행의 이유’로 남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현재를 온전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