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워 보이는 '인정'

by 김승민

유다는 첫째 아들을 다말에게 주었고, 그 아들이 죽자 당시 관례였던 계대 의무에 따라 둘째 아들 오난을 다말에게 주었다. 그러나 둘째 아들마저 죽자,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를 다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책임을 이행하지 않았다. 다말은 남편을 잃고도 후손을 이어갈 길이 막힌 채 사실상 버려진 여인이 되었고,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마저 잃을까 두려워하여 다말을 친정으로 돌려보낸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말이 임신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다는 지체 없이 “불사르라”라고 명한다. 자신의 의무는 외면한 채, 다말에게만 가장 무거운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다말이 유다의 인장과 끈과 지팡이를 내보이며 그 아이의 아버지가 유다 자신임을 밝히는 순간, 유다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는 주저하지도, 변명하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고 고백하며 다말을 높였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유다는 당시 수많은 가축과 종들을 거느린 기득권자로써, 도덕적 실책이 드러나는 순간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잘못을 정면으로 받아들였다. 인간의 본성과 권력의 속성을 생각해 보면, 유다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이는 선택을 한 것이다.


얼마 전 본 드라마 〈자백의 대가〉 속 검사는 이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 속 검사는 남편의 살해 용의자로 아내를 지목하고 결국 아내를 용의자로 만들어 무기징역형을 받게 했다. 드라마가 전개되며, 아내는 누명을 쓴 것이고 실제 진범이 있다는 근거가 제시된다. 하지만 극 중 검사는 결코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순간 그동안 쌓아온 성과와 명예,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진실보다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는 일을 택했고,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못했다.

사실 우리도 그 검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단순한 반성의 행위가 아니다. 그 안에는 관계, 자존심, 사회적 위치, 내가 붙들고 있는 모든 것들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못을 인정하는 일에는 ,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깔리는 것이다.


나 역시 그 두려움을 잘 알고 있다.


내 잘못이 적당히 숨겨질 수 있다면, 대충 둘러대며 넘긴 적이 있다. 그러나 감춰진 잘못은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오면 우리는 계속해서 숨기며 더 깊은 곳으로 미끄러질 것인가, 아니면 용기를 내어 인정의 자리로 나아갈 것지에 대한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서게 된다.


회개, 즉 죄에서 돌이킨다는 건 말은 참 쉽다. 그리고 남의 일을 3인칭 관점으로 볼 때도 참 쉽다. 그러나 아주 작은 잘못에 대한 인정도 사실상 결코 쉽지가 않다. 그렇지만 그 길로 계속해서 우리를 이끄신다. 잘못을 안 할 수 있는 실력을 키우는 동시에,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을 위해서 말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