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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울 (Soul)': 주인공 '조'의 심리

'성공(success)', '목표(purpose)'라는 함정

by cogito
너의 꿈은 뭐니?
넌 무엇을 이루고 싶니?
나중에 뭘 하고 싶니?

어른들을 만날 때마다 흔히 듣는 질문이다.

그럴 때면 난 쉽게 답하지 못한다;

무엇에 이끌리는지 어렴풋한 감만 있을 뿐,

정확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미래를 향해 나아갈지...

여전히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저 '으음....' 하며 얼버무릴 수도 있지만...

(분명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이 뻔하니), 난 항상 꿈이나 목표를 급조해서 말하곤 한다.

목적 없이 사는, 대책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사회는 하나의 길을 꾸준히 파고들어, 최고가 되는 '외길 인생'을 이상적으로 여긴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만 연습해서 일인자가 된 사람,

스포츠에 평생을 바쳐 '월드클래스'가 된 선수,

혹은 오랜 노력 끝에 선망받는 직업을 얻은 사람...


이들은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그들의 이야기는 '낭만'으로 비춰진다.


반면, 살면서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하고,

한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쌓지 못한 사람들은 불안에 휩싸이기 쉽다;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건가?'라는 자기 비난은

'내 삶은 무의미한 건가?'라는 깊은 회의로 이어진다.

이런 질문들은 마음 한켠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힌다.

나 역시 한 가지 목표를 꾸준히 파지 못하는 내 모습이 못마땅했다 -

'왜 나는 영화 속 위인들처럼, 한 가지에 몰두하지 못할까?'

'변덕을 일삼는 내 성향과 취향이 문제인걸까?'

이와 같은 생각에 빠져 스스로를 탓한 적도 많다.


하지만, 정말로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며 사는 게 삶의 정답일까?

외길 인생이, 과연 진정한 행복을 보장해 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픽사의 애니메이션, '소울 (Soul)' 속 주인공,

조 가드너 (Joe Gardner)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려 한다.


(스포 (有)! 하지만... 최대한 줄여볼게요......)





난 오늘 죽을 수 없어! 내 삶은 이제야 시작됐는데....
(I 'm not dying today. Not when my life just started.)


- 영화 '소울(Soul)'의 주인공, 조 (Joe Gardner)가 외치는 대사다.


조는 중학교에서 밴드를 가르치는 음악 교사지만,

그에겐 어릴 적부터 간직해 온 하나의 꿈이 있다.


- 바로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어, 무대에 서는 것.


조는 벽면에 재즈 거장들의 사진을 걸어두고,

언젠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그 꿈과 너무도 동떨어져 있었다;

허름한 학교에서 의욕 없는 중학생들을 가르치며,

매일 뉴욕의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반복적인 일상.

재즈를 사랑하지만, 그 열정을 인정받지 못한 채 허비하는 나날들....

조는 그런 자신의 삶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조에게 인생을 바꿀 기회가 찾아온다;

오디션에 합격하여, 유명한 재즈 뮤지션과 함께 공연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뿔싸.....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오디션에 합격한 바로 그날,

조는 사고로 인해 죽는다.

(뭐... 정확히 말하면, 맨홀 안으로 떨어져 혼수상태에 빠진다.)


죽음을 맞이한 조의 영혼(soul)은 저세상(the great beyond)으로 향하게 되고.

영화 '소울'은 그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 분투하는 여정을 그려내고 있다;



꿈에 그리던 무대에서 피아노를 치는 조 (Joe)


결론만 얘기하자면, 조는 저세상에서의 탈출에 성공한다;


현실로 돌아온 그는 마침내 꿈에 그리던 무대에도 서고,

관중의 기립 박수까지 받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조'는 문득 허무함을 느낀다....


꿈을 이룬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여느 때와 변함없는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일상은 여전히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고, 의욕 없는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과들로 채워져 있었다.

유일하게 달라진 점이라면, 밤에 '재즈 공연'이라는 일정이 추가된 것뿐이었다.

공연 무대에서 인정받으면, '새로운 삶이 시작될 거라'는 조의 굳은 믿음은, 이렇게 무너진다.


오랫동안 갈망했던 목표를 손에 넣었음에도,

왜 조는 만족할 수 없었을까?




빅터 프랭클 (Viktor Frankl)이라는 심리학자는, 해답의 실마리를 던져준다;


인생은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Life is a quest for meaning'
-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


그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력이 '쾌락'이나 '권력(성공)'이 아닌,

삶의 의미(meaning)와 목적(purpose)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 의미를 찾지 못하면, 우리는 공허감에 빠진다고 했다.


빅터 프랭클의 명언. 그는 '의미 요법 (logotherapy)'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영화 속 조 역시, 평생 '의미 있는 삶'을 갈망했다.

하지만, 목표로 삼았던 '재즈 공연'을 이루자마자 깊은 허탈감을 느낀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좋은 집을 사도, 직장을 얻어도, 승진을 해도....

이로 인한 만족감도 잠시일 뿐이다.

간절히 원하는 목표를 이루면 모든 것이 변할 거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의 경우, 대학에 합격하기만 하면, 시험에서 좋은 성적만 거두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다.


그러나 성취 후에는 찰나의 기쁨이 스쳐 지나갈 뿐....

오히려 목표를 이루고 나니,

삶의 '지향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허무함'만 남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살면서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야 할까?

이에 대해, 프랭클은 이렇게 말한다;


"성공을 목표로 잡지 마라.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쫓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니까."
(Don't aim at success... For success, like happiness,
cannot be pursued; it must ensue.)


성공과 행복은, 공기처럼 손에 쥘 수 없다.

제자리에 담아두려 해도,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진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매 순간 의미를 찾으며 살아가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조는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삶의 소소한 아름다움을 깨닫는다;


평소에 자주 먹던 피칸 파이의 풍부한 맛,

자주 들르던 이발소에서의 따뜻한 대화,

지금까지 모르고 지나갔던 자연의 풍경과

자신이 앞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그리고 그는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된다;

그는 지금까지 훌륭한 선생님이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음악을 가르치는 동안,

음악을 향한 조의 열정은 일부 학생들에게 스며들었고,

그로 인해 음악을 사랑하게 된 아이들도 있었다;


그의 삶은, 무대 위에서 인정받기 전에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정작 조 본인은 '무대에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자신이 일궈낸 가치 있는 변화들을, 보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조는,

더 이상 '무대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성취를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대신,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 자체를 즐기며,

학생들과 관중에게 음악의 가치를 전하는 과정 자체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



영어 표현 중, 이런 말이 있다.

"It's all about the journey.
(그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여행 그 자체야.)


우리는 종종 목표를 이루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 겪는 경험들이 쌓여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쭉 뻗은 고속도로를 타고, 일직선으로만 나아간다면,

목적지에는 빠르게 도착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길을 가는 도중 마주치는 작은 쉼표들 아닐까?


잠시 들르는 휴게소와,

우연히 맛본 근사한 음식,

평생 눈에 담고 싶은 절경,

그리고 여행의 동반자와 함께 만든 소중한 추억들.

.... 이러한 쉼표들이 모여, 여행을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준다.


그래서 이제 누군가 내게 '꿈이 뭐냐'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저는 삶을 온전히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당연히 후속 질문이 따라오겠지만 (ex) 그래? 그건 어떻게 할 건데??)..... 그건 그때 생각하기로 하자.)


나의 초심이 흐려질 때마다,

하나의 목표에만 매몰되어,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칠 때마다....


주기적으로 '소울'을 다시 보면서,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다음 글>

다음 편에서는, 영화 '소울'의 또 다른 주인공, '22(twenty-two)'에 대해서 다뤄보겠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페이지, 영화 스틸컷.

GRACIOUSQUOT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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