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기타 Sep 16. 2023

이런 이웃도 있네요

센스 만점 새댁의 두 번째 이야기

   이사한 다음 날 생글거리는 표정으로 관리소에 온 젊은 새댁은 떡을 담은 접시를 들고 왔다. '안녕하세요. 어제 이사 잘했어요. 이사 떡을 해서 가져왔으니 떡 좀 드세요.' 하며 내미는 쟁반을 경리 주임이 받으며 떡을 다하셨냐며 잘 먹겠다 하고 회의용 탁자 위에 놓았다. 경비 아저씨도 드렸으나 아직 몇 집 못 돌린 집이 있어 가보겠다며 맛있게 드시라는 인사와 함께 종종걸음으로 돌아갔다. 그런 뒷모습에 저리 살갑고 고운 심성을 지닌 새댁을 만난 행운남은 누구일까 궁금했다.


  이사, 백일, 돌 등 경사스러운 일이나, 잔치를 한 경우 이웃에 떡을 돌리는 것이 예전의 우리 풍습이었다. 그런 후손으로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나, 요즘 세태에 새댁 같은 마음 씀씀이를 보는 게 드문 일이다. 그런 풍습에 익숙지 않았을 나이인 젊은 새댁의 그런 마음이 대견하기도 했다. 떡을 싼 비닐을 걷어내자 따뜻한 기운과 함께 구수한 떡 내음이 코끝에 물씬 풍긴다. 직원들과 한 조각씩 떼어먹으며 요즘 이사 왔다고 떡 돌리는 경우가 드문데 젊은 새댁이 어찌 그런 생각을 다 했나 하며 요즘 사람 같지 않다는 등 새댁의 마음 씀씀이에 모두가 칭찬하였다.


  떡 한 접시 들고 온 새댁의 마음씨에 관리소 식구 모두 새댁의 팬이 되어 버린 셈이다. 마침 관리소에 들른 배 둘레만큼이나 넉넉한 성품의 대표회장도 웬 떡이냐며 합석했다. '떡이 맛있다, 새댁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이사 왔으면 좋겠다.' 하며 잠시나마 업무를 벗어나 마음 편하고 여유로운 한때를 가졌다.

  젊은 새댁의 예쁜 마음이 담긴 떡을 한 입 먹는 저나 관리소 식구들, 대표회장의 마음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새로 이사 왔으니 무슨 불편 사항이 있다고 하면 잘 챙겨줘야지’, ‘전기, 수도 등 무슨 세대 내 시설이나 설비에 문제가 발생하면 열 일 제쳐놓고 가서 손봐 줘야지’, ‘모든 입주민이 새댁 같은 저런 마음을 가진다면 이웃 간의 분쟁이 사라질 텐데 대표회의 의결로 이사 오는 전입자는 모두 떡을 해서 돌려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면 어떨까?’


  떡 한 접시에 마음을 홀랑 빼앗겨 새댁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새댁이 고마운 것은 다음 일 때문이다. 관리소에 떡을 건네준 며칠 후 다시 관리소를 찾아온 새댁이 조금은 조심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제가 오지랖이 넓어서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라며 앞집 이야기를 꺼냈다.


  요 며칠 이사 떡을 본인이 사는 라인의 전 세대에 다 전해 드렸으나 앞집만 아직 전하지 못했다며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집수리하는 동안 몇 번 왔다 갔다 하며 앞집 분을 한 번 뵌 적이 있었는데 연세가 많아 보였다. 이사 후 며칠간 인사 겸 떡을 전해 드리려고 아침저녁으로 벨을 눌렀으나 대답이 없고 집안에 인기척도 없다라고 했다. 처음엔 어디 외출이라도 하셨거니 하고 계속 집을 살펴보고 두드려도 보았으나 만날 수 없고 떡도 전해 드리지 못해 아직 냉장고에 보관 중이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관리소에 알려드리는 것이니 오지랖 넓다고 생각하지 마세요했다.


  이런 고마운 일이. 이런 입주민이 다 있나 하는 생각에 "오지랖은 무슨, 고마운 일이지요. 이웃이 걱정되어 알려주시니 우리로선 고마운 일이지요. 며칠씩이나 인기척이 없었다 하니 우리가 잘 살펴보지요. 경비초소에 얘기하여 저녁에 불이 켜지나 살펴보라 하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주말 격일제로 24시간 교대 근무하는 경비원 간에 번갈아 가며 주시하였으나 집안에 사람이 있는 기척이 없고 불도 켜지지 않았다기에 내심 혹시나 하는 마음이 커졌다.


  보름 전쯤에 성직에서 은퇴 후 성당 사택으로 사용 중인 B2층에 거주하고 계신 노 신부님이 주위에 알리지도 않고 일주일가량 지방에 다녀오셔서 비상이 걸렸었다. 대표회장이 해당 성당의 사목회장이라 은퇴하신 신부님이 그곳에 기거한다는 얘기를 진작부터 듣고 있었으나, 며칠째 주머니에 넣어 둔 우유가 그대로 있다는 배달 아주머니의 신고에 깜짝 놀라 대표회장에게 알렸다. 즉시 지역 성당에도 알려져 비상이 걸렸으나 휴대전화가 꺼진 상태이고, 알만한 분과 가실만한 곳에 수소문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결국 경찰의 도움을 청하는 등 부산을 떨었으나, 며칠 후 신부님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귀가하셨다. 강원도 지인의 집에 있었으며 휴대전화 배터리 방전으로 연락이 안 되었다는 말씀에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난 적이 있었다.


  별일 없겠지 하면서도 주말에 잘 살펴보라 경비대원에게 당부하고 차기 대표자회의 정족수에 거푸 미달하여 3차 공고까지 해야 했던 피곤한 한 주를 마감하고 귀가하였다. 월요일 출근 후 그 집 상황을 물었더니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현관문 틈새로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창문과 버티컬도 살폈으나 그대로인 것 같다고 했다. 더 방관하고 있을 상황이 아닌 듯하여 경리 주임에게 입주자 카드에 기록된 연락처로 전화해 보라 했다. 다행히 우려와 달리 단번에 전화 연결이 되었다. 들려오는 목소리가 부인인듯했다. 경리 주임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남편 건강상의 문제로 잠시 요양 차 시골에 내려가 있다 서울의 코로나 상황도 그렇고 해서 예정보다 귀가 일정이 늦어졌다. 어제 늦게 왔으며 지금은 집에 있다고 했다.   

  앞집 새댁의 이사 떡과 관련하여 그간의 일을 자초지종 설명하니 그런 고마운 이웃이 다 있느냐며 얼굴도 볼 겸 찾아가 보겠다고 했다. 이어 그 집에 갓난아기가 있던데 지금 가봐도 괜찮은지 모르겠다고 한다. 아기가 잠을 자고 있다면 현관 벨 소리에 놀라 잠을 깰지 모른다는 육아 경험이 있는 여성만의 지혜로움과 배려심이다. 그럴지도 모른다며 앞집에서 인기척이 있을 때 만나보시라 하고 어쨌든 별일 없으니 다행이라 하고 통화를 끝냈다. 두 사람의 통화 내용을 들은지라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새댁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요즘 세상에 새댁 같은 마음 씀씀이는 쉽지 않다. 내 사생활에 대한 타인의 간섭과 관여를 허락지 않고, 또 남의 일에 상관하지 않으려는 게 요즘 세태가 아닌가? 현관문만 닫으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앞집인들 알 수도 없다. 이사 떡 전하려고 서너 차례씩 걸음 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예전의 풍속으로 어른들은 저녁을 먹고 나면 이웃집으로 마실 다녔다. 나이 드신 어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저녁 일과였다. 이웃과의 왕래가 잦아 그 집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안다고 할 만큼 이웃의 사정을 잘 알고 지내는 게 그 시절 삶의 방식이었다. 쉽사리 용인되지도 않고 시도하기도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 되어버린 요즘 때로는 그런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발코니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되었다. 깜빡이등을 비롯해 예쁜 색깔의 꼬마전구가 번갈아 깜박인다. 아기를 위한 것이나, 이를 보는 이웃들의 눈과 마음도 즐겁다. 새댁이 이사 오기 전 살던 분노 조절 장애자에 비하면 가히 천사 같은 새댁이다. 내년 아기가 첫돌을 맞이하면 예쁜 장난감을 선물하리라. 아가야, 예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 엄마처럼 심성 곱고 착한 사람이 되어라하는 마음을 담뿍 담아..


작가의 이전글 엄마, 나 반장 됐어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