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이해하려는 기록 15
사람들은 보통 양적긴축, 즉 QT라는 말을 들으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중앙은행이 돈을 거둬들이면 시장 유동성은 줄어들고, 그러면 주식이든 코인이든 위험자산은 약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도 QT는 기본적으로 유동성을 줄이는 정책입니다. 연준 역시 2022년 이후 보유 자산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차대조표 축소를 진행해 왔고, QT 후반기까지도 준비금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수준 위에서 이 과정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시장은 늘 교과서처럼만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현실에서는 QT가 한창 진행되는 동안에도 시장이 꽤 오랫동안 버텼고, 심지어 우상향 했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연준은 긴축 중인데 왜 자산시장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까요?
유동성을 회수한다면서 왜 시장은 생각보다 강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단순히 "연준이 돈을 푼다, 거둬들인다"는 수준을 넘어서, 그 돈이 금융시스템 안에서 어디에 머물고 있었는지를 봐야 합니다.
연준의 역레포란 ON RRP(Overnight Reverse Repurchase Agreement Facility)입니다. 이것은 머니마켓펀드(MMF) 같은 대형 단기자금 운용 주체들이 남는 현금을 연준에 하루짜리로 맡겨두는 일종의 주차장 같은 곳입니다. 팬데믹 이후 양적완화로 시중에 넘쳐난 유동성은 전부 주식시장이나 대출시장으로 바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이 이 연준의 역레포 시설 안에 잠시 머물러 있었습니다. 2023년 6월에는 그 잔액이 2조 5천억 달러를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역레포 덕분에 양적긴축의 충격이 곧바로 시장의 심장부를 때리지 않았습니다. 많은 분들은 양적긴축을 직선적인 과정으로 생각합니다. '연준이 자산을 줄인다, 시중 유동성이 줄어든다, 시장이 바로 타격을 받는다.' 이렇게들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구조는 그보다 한 단계 더 복잡합니다. 금융시스템 안에는 역레포라는 거대한 완충지대가 있고, QT의 초기 충격은 은행 시스템의 핵심 자금인 준비금이 먼저 직접 줄어드는 대신, 역레포에 쌓여 있던 자금이 먼저 줄어드는 방식으로 흡수됩니다.
비유를 들면 더 쉽습니다. 수영장에서 물을 빼기 시작했다고 해서 본 수조의 수위가 곧바로 급격히 낮아진 것은 아닙니다. 먼저 옆에 붙어 있던 보조 탱크의 물이 먼저 빠져나간 셈입니다. 겉으로는 분명 물을 빼고 있는데, 정작 본 수조는 한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QT 시기의 시장도 어느 정도는 이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실제 숫자도 이 점을 보여줍니다. 연준의 2025년 6월 통화정책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6월에 대차대조표 축소가 시작된 이후 연준의 자산은 크게 줄었지만, 같은 기간 준비금은 순감소가 아니라 오히려 순증가했습니다. QT가 주는 준비금 감소 효과가 재무부 일반계정(TGA) 감소와 ON RRP 잔액 감소에 의해 상쇄되었기 때문입니다.
연준은 역레포 감소가 머니마켓펀드들이 더 높은 수익률을 주는 단기국채나 민간 레포시장으로 자금을 옮긴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점은 생각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단순히 "돈이 연준 주차장에서 나왔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 자금이 국채 시장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재무부의 발행 여건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했기 때문입니다. 즉, QT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국채 시장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소화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는, 역레포에서 빠져나온 수조 달러가 T-bill 시장의 수요자가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연준의 긴축, 국채 발행 증가, 그럼에도 불구한 시장 안정이라는 얼핏 모순처럼 보이는 퍼즐의 핵심 조각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야기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 구조를 떠받치던 완충재가 예전만큼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준 H.4.1 기준 2026년 4월 현재 역레포 잔액은 약 3,449억 달러 수준입니다. 피크 대비 2조 달러 이상이 소진된 셈입니다. 준비금은 약 3.12조 달러, 재무부 일반계정(TGA)은 약 6,971억 달러로, 전체적인 유동성 여건이 과거보다 훨씬 빡빡해진 상태입니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제는 같은 유동성 변화라도 시장이 훨씬 더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국채 발행이 늘어나거나 TGA가 움직여도 그 충격이 먼저 ON RRP에서 흡수될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완충 공간이 거의 소진되었기 때문에, 충격은 준비금과 시장 자금 사정에 더 바로 연결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과거에는 충격과 시장 사이에 두꺼운 쿠션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 쿠션이 많이 닳아버린 상태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연준도 지난해 말 정책 운영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연준은 2025년 12월 10일, 준비금을 충분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단기국채(T-bill) 매입을 시작한다고 밝혔습니다. 필요하면 잔존만기 3년 이하 국채도 매입할 수 있다고 했고, 첫 달에는 약 400억 달러 규모의 매입을 예고했습니다. 2026년 3월 연준은 설명 자료에서도, 2025년 12월 FOMC가 준비금이 충분한 범위에 도달했다고 판단한 뒤 이를 유지하기 위해 이른바 '준비금 관리 매입(reserve management purchases)'을 시작했다고 명시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연준은 2025년 12월 1일부로 QT를 공식 종료했습니다. 다만 MBS 런오프는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그 유입 자금을 국채 매입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연준의 공식 표현은 어디까지나 경기부양이 목적이 아니라 준비금을 충분한 범위 안에 유지하기 위한 운영상의 조치입니다. 하지만 시장의 시선에서 이 변화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연준이 더 이상 아무 부담 없이 대차대조표를 계속 줄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유동성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직접 방어에 나서야 하는 단계로 넘어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구조적 변화가 연준 내부의 문제에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그 위에 대외 불확실성까지 겹치고 있습니다. 2026년 초 이후 미국의 관세 정책 충격은 금융시장 전반에 불확실성을 키웠고, 달러 약세와 함께 미국 국채에 대한 외국인 수요가 예전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미국 국채가 오히려 매도 압력을 받는 장면도 나타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ON RRP라는 완충 공간마저 소진된 현재, 유동성 충격이 온다면 그 파급은 과거보다 더 직접적이고 빠르게 시장에 전달될 수 있습니다.
결국 양적긴축 시기에 시장이 우상향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긴축이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긴축은 분명 있었습니다. 다만 그 충격이 처음부터 은행 준비금이라는 시장의 심장부를 직접 때리지 않았고, ON RRP라는 거대한 현금 저장고가 먼저 그 충격을 흡수해 주었기 때문에 시장이 버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저장고에서 나온 자금이 국채 시장으로 흘러들어 가 발행 여건까지 뒷받침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맞물리면서, 연준의 긴축과 시장의 강세가 한동안 공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구조는 지금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완충 공간은 소진됐고, 연준은 방어적 매입에 나서고 있으며, 외부 환경도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지금의 시장은 유동성이 남아도는 상승장이 아니라, 부족해지지 않도록 간신히 버티는 더 예민한 국면에 가깝습니다.
지금 이 흐름을 읽으려면 연준 H.4.1의 준비금 잔액 추이, TGA 잔액 변동, 부채한도 협상 타임라인, 그리고 T-bill 수급 상황을 함께 봐야 합니다. 숫자들이 말하는 것이 지표 하나하나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국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