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3 아들과 떠나는 전국 역사탐방
언젠가부터 아들이 변했다. 3세부터 7세까지, 오매불망 공룡만 외쳤던 너였는데. 지금의 너는 '태정태세문단세'를 부르고, '선을 넘는 녀석들'을 반복시청한다.
계기는 아주 심플했다. 초2, 우연히 찾은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아주 우연히 설민석의 역사만화를 집어들었고, 또 우연히 흥미롭게 읽은 게 전부였다.
그날은 기억이 선명하게 난다. 집에 돌아온 아들은 내게 설민석의 역사만화를 사달라고 요구했다. 평상시에도 넌 내게 많은 걸 요구했었지만. 그날만큼 가슴 뿌듯한 소비는 오랜만이었다. 난 당장(네 마음이 달라지기 전에) 쿠팡 앱을 열고 역사만화를 결제했다.
그렇게 너의 한국사 사랑은 시작됐다. 조선시대로 시작된 관심은 점차 고려시대, 삼국시대로 번져나갔다. 한지에 튄 먹물이 번져나가듯이, 메마른 나무 뿌리가 수분을 찾아 끝없이 뻗어나가듯이, 역사에 대한 너의 관심은 점차 깊어졌다.
나는 (정작 한 건 없지만) 뭔가 애를 잘 키운것 같은 뿌듯함을 느꼈다. 사람들이 '어린 애가 어쩜 역사를 저렇게 잘 아느냐'고 하면 머쓱해하면서도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어른 못잖은 역사지식을 가졌다'는 방과후 선생님의 평가에는 하루종일 기분이 좋아 (꼭 반드시) 냈어야 할 화도 꾹 참았다.
근데 거기까지였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역사만화책을 사주고, '선을 넘는 녀석들'을 보기 위해 OTT 결제를 해주는 것 이상은 없었다. 나는 아이와 역사 대화를 나눌만한 지식이 부족했고(까진 아니고 얕은 것으로), 아이에게 새로운 자극과 동력을 불어넣어주기엔 역부족이었다. 아들은 그저 자기 딴에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방과후 수업으로 '역사탐험대'를 선택해 듣고, 역사 학습지를 풀고, 역사만화를 틈틈이 읽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참 만남 참 문화유산 스탬프 투어'를 만난건 그쯤이다.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알못'인 우리는 인사동의 한 호텔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종묘를 찾았다. 다둥이카드가 있으니 입장이 무료라며 그저 좋아했던 철없던 우리 부부. 한참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문화설명사 분께서 스탬프북 하나를 권하셨다. 문화재청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스탬프북이었다. 눈을 반짝이던 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서울시내 곳곳, 그리고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저 멀리 제주도까지 이어지는 스탬프 할당량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그만큼 얻어낼 성취감도 커질 터.
종묘에서 첫 스탬프를 기록한 그날부터 우리의 스탬프 여정은 시작됐다. 오로지 내 발로 걷고, 내 손으로 도장을 찍어낸 그 시간은 때론 행복했고 또 때론 고됐다. 추억으로 가득 물든 시간들을 기록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