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귤
“이번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나가보지 않을래?”
유독 낙엽이 많이 흩날리던 어느 날, 동아리 선배가 은밀한 제안을 해왔다. 대전 팀에서 쇼트트랙 선수로 활동하고 있던 승한 선배는 곧 다가오는 대회에서 함께 출전할 선수 영입에 애를 먹고 있었다. 대전 팀 선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에이! 제가 어떻게 선수를 해요!”
출전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망설였다. 어떤 종목으로 출전해야 하는지 모르겠거니와, 내로라 하는 선수들이 모인 대회에서 내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승한 선배는 비장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고는 더 은밀하게 속삭였다. 이 대회에 나가면 K2 패딩과 훈련 비용을 받을 수 있다고. 아니! 무려 K2 패딩이라고? 흔들리는 내 동공을 포착한 그는 기회를 놓칠세라 한 번 더 박차를 가했다. 대전 팀에서 공문을 보내주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수업을 빠질 수 있다고. 그 말에 현혹된 나는 그날로 대전 팀 소속 선수가 되었다.
정말이지 충동적인 결정이었으나 성냥에 불이 붙듯 화르르 열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나는 피구를 하면 끝까지 살아남아 팀의 기둥이 되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체육 시간에 가위바위보를 해서 팀을 고를 때면 앞다퉈 나를 뽑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윗몸일으키기를 1분에 50개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무려 검은 띠 2단에 빛나는 태권도 유단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네팔의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다녀온 적이 있는 만큼 폐활량은 자신 있었기에 육상 종목에서 모두가 기피하는 1,500m 달리기 종목에 나가기로 했다.
이제 대회까지는 세 달 정도가 남았다. 운동장에서 연습 삼아 한 바퀴를 돌자마자, 엄청난 후회가 찾아왔다. 이걸 어떻게 4바퀴 반이나 뛰지? 지난날의 자만을 반성하며 그저 뛰었다. 다 뛰고 나니 목에서 피가 콸콸콸 나는 듯 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콱 넘어져서 발목을 삐어버릴까 잠시 고민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승한 선배와의 의리를 위해 그대로 나가기로 했다.
드디어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당일이 되었다. 이제는 3바퀴 반까지는 무리 없이 뛸 수 있다. 남은 1바퀴 반은 다른 선수들의 페이스를 보며 조절하는 것으로 전략을 잡았다. 대전 팀에서 나눠준 단체 유니폼은 화사한 하늘색 나시와 반바지였다.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면서 점차 가슴이 벅차올랐다. TV에서나 보던 이 멋진 유니폼을 내가 입다니! 기대하는 마음으로 거울을 보다 절망에 빠졌다. 거울에는 잔근육 없이 둥근 곡선을 그리는 통통한 팔과 뽀얗고도 튼실한 다리가 보였다. 결국 나는 초라함을 감추기 위해 하얀색 반팔 위에 나시를 입기에 이르렀는데, 문제는 반바지였다. 레깅스를 미리 준비하지 못해 다리를 가릴 방도가 없었다. 게다가 추운 초겨울이었다. 승한 선배의 제안에 같이 넘어가 400m 종목에 출전하는 예지가 해결책을 제시했다.
“야. 괜찮아. 편의점에 스타킹 팔잖아!”
예지와 함께 급히 편의점으로 출동했다. 검은색 스타킹을 비교하여 제일 촘촘해 보이는 스타킹으로 골랐다. 최대한 레깅스처럼 보여야 한다. 숙소로 돌아와서 입어보니 허벅지 쪽의 살이 조금 비쳐 거슬리지만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탈의하고 나와서 예지에게 물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지? 멀리서 보면 레깅스 같겠지?” 예지는 바닥을 뒹굴며 한참이나 웃더니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 “아니, 이건 누가 봐도 스타킹이야!” 스타킹을 신을지 말지 고민하다가 추위에 덜덜 떨릴 다리를 상상하고는 잠깐의 쪽팔림을 선택하기로 했다. 지금에서야 말한다. 다시 돌아간다면 스타킹을 신지 않겠다. 차라리 추위에 떨겠다. 나는 그때 찍은 사진을 지금까지도 꺼내보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사진 속의 나는 육상 선수가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에어로빅 선수였기 때문이다.
1,500m 종목에 출전하는 선수는 나를 포함하여 총 4명이었다. 잘만 뛰면 메달권에 들 수 있겠다. 총성과 함께 깃발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 옆에 있던 선수들이 앞다투어 뛰더니 금세 격차가 벌어졌다. 벌써 금메달과 은메달은 물 건너갔으니, 이제 남은 동메달을 가지고 겨룰 차례가 되었다. 나는 일부러 꼴찌로 뛰면서 페이스 조절을 했다. 마지막 바퀴에서 전력을 다해 뛰면서 앞에 있는 선수와 간격을 좁혀갔다. 그때였다. 갑자기 스텝이 꼬이더니 넘어지고 말았다. 다름 아닌 내 앞에서 뛰고 있던 선수가. 그 순간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내려 그가 괜찮은지 살펴봤다. 크게 넘어진 것 같지는 않지만 갑작스럽게 넘어졌기에 다시 일어나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일으켜주고 싶었다. 그와 점점 가까워지며 일으켜주려고 손을 살짝 내밀려다가 저 멀리 시야에 무언가가 걸려 고개를 들었다. 승한 선배와 예지를 비롯한 대전 팀 선수들이 얼른 들어오라고 양 손을 빠르게 휘젓고 있었다. 순간 나는 맹렬한 그들의 기세에 주춤하여 넘어진 그를 뒤로하고 앞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결승선으로 들어온 그에게 다가가 다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하고는 나의 동메달을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차마 고맙다고 화답할 수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도, 시상대에 올라 동메달을 받는 순간까지도, 대전 팀에서 마련한 을씨년스러운 모텔 침대에 누워서도 계속해서 생각했다. 그냥 일으켜줄걸. 동메달 그게 뭐라고. 내가 받은 동메달은 결국 녹슨 메달이 되어버렸다.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는 할머니를 보면 아무리 바빠도 꼭 도와드리려고 했다. 고된 하루 끝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모처럼 난 지하철 자리에 앉았다가도 나보다도 자리가 더 필요한 사람에게 기꺼이 양보하려고 노력했다. 길거리에서 스티커를 내밀며 설문 조사를 부탁하는 청년을 외면하지 않으려고 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녹슨 메달을 계속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