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호
단발에 반묶음한 머리를 높이 올린 소녀의 갈색 머리는 햇빛을 받으면 수확 직전의 황금빛 밀밭의 그것과 같이 빛났다. 소녀는 웃으면 앞머리가 펄럭 흩날렸으며 광대가 뽈록 나오고 쌍거풀 없는 작은 눈은 눈매가 가늘어져 끝을곱게 접었고, 입가가 환히 벌어지고 토끼같이 매우 큰 앞니가 튀어나오곤 했다. 소녀의 이름은 소라였다. 나는 소라가 꼭 자기답게 웃는다고 생각했다. 소라는 자주 웃었고, 웃을 때마다 온 몸을 떨며 부산스럽게 웃었다. 나는 소라의 웃음에 전염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소라의 웃음을 볼 때마다 같이 웃어서 배가 찢어지거나 입가가 찢어질 것도 같았다. 이후로도 산만하지만 귀여운 동물을 볼 때마다 소라답게 움직인다며 이름을 붙이고 다녔다. 내게 소라다움은 그런 것이였다. 천방지축이지만 사랑스러운 어떤 것.
소라와 나는 초등학교에서 만났다. 3월 1일 새로운 반이 편성되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나는 책을 읽으며 앉아있었다. 매년 새학기,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교과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며 새로운 정보들을 빠르게 수집해야 하는 이 시기가 제일 피로했다. 원래대로라면 선생님이 분명히 말했겠지만 듣지 못한,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화장실의 위치와 내 사물함 위치, 수업시간표를 파악하고, 친구들의 얼굴과 이름을 정해진 자리 순대로 찾아보며 빠르게 관찰하고 추측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앞과 뒷자리 친구와 짝꿍에게 사탕을 주고 웃으면서 친해지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날은 어쩐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어른이 된 내가 이 순간을 보면 초등학생 주제에 그게 힘들었나 싶지만 동시에 그 당시의 작은 머리로도 내가 왜 그렇게 아등바등 적응해야 하는가 라는 실존적 우울감이 덮쳐왔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손이 눈 앞에서 흔들었다. 화들짝 놀란 나는 손의 주인을 보았다. 그 아이는 옆 자리에 앉아있었다. 아마 이 아이가 이번에 내 짝꿍이 되었으리라.
“안녕! 나는 오라야! 너는 .........이지? 내가 ................ 왔~지~”
“뭐라고? 다 못 들었어. 다시 말해줄래?”
그 애는 웃는 표정으로 천천히 말했다.
“안녕!”
나는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응.” 했다.
“나는 소라야.”
“오라?”
“아니, 소~ 음메음메할 때 소~” 그 애는 책상에 손가락으로 ‘소라’라고 적었다.
“응.”
“너는 이거 맞지?” 책상에 손가락으로 내 이름을 적었다.
“응.”
“내가 저기 자리배치표 있잖아” 손가락으로 TV의 자리배치표를 가리켰다.
“응.”
”다 보고 와~서~ 너를 안다는 말이였어~”
그 당시의 초등학생들은 어리고 성급했다. 나 역시 그런 아이였다. 그래서 설명을 대충 해도, 말을 잘라먹어도 대부분의 순간은 그냥 알아들은 척 넘어갔다. 그때까지는. 그래서 완연하게 그 애의 모든 말을 이해한 그 순간,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소라야, 너 같은 애도 세상에 있구나. 너같이 하나하나 알려주는 애도 있구나. 너와 나는 처음 만났는데 첫 만남부터 이렇게 나를 속속들이 잘 아는 듯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우리는 단짝이 되어 어디든 함께 다녔다. 거의 소라가 나를 찾다시피 했다. 특유의 웃음으로 내 이름을 부르며 부산스럽게 뛰어왔다. 화장실 갈 때도, 교실 이동할 때도, 하교할 때도 꼭 손 잡고 다녔다. 그 시절에는 인형 스티커를 붙이고 그 위에 다양한 옷과 가방, 악세서리류 스티커를 붙이고 꾸미는 게 유행이였다. 소라는 활발하고 외향적이여서 다른 아이들을 이끌고 왔으며 쉬는 시간에는 공책을 펼치며 다 같이 인형에게 다양한 옷스티커를 붙이며 이야기했다. 나는 아이들과 웃다가도 슬며시 공책을 세우고 몰래 소라에게만 우정과 친밀감의 표시로 예쁜 옷 스티커를 주곤 했다. 그 때는 스티커가 많으면 많을수록 화려하게 캐릭터를 꾸밀 수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알록달록하고 예쁜 스티커들은 아이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나는 돈이 생길때마다 스티커를 샀고, 소라와 내 공책에는 서로 주고 받은 스티커로 가득했었다. 스티커를 받은 소라는 정말이지 너무 잘 웃었다. 걔가 웃은 횟수만큼이나 공책도 늘어갔다.
소라의 엄마와 우리 엄마도 친했다. 우리는 방과 후에 엄마들과 자주 만났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면 소라와의 인연도 모성이 발휘한 순간인 것 같다. 엄마끼리의 친분이 있으면 아이끼리도 친구가 되는 법이다. 엄마는 이것을 이용한 것이리라, 엄마의 사회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내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선생님을 통해 나와 소라가 같은 반으로 편성됨을 알았던 엄마가 소라의 엄마와 각각 딸의 이야기로 꽃피우며 친해졌다가, 소라의 엄마에게 부탁했고 소라의 엄마는 자신의 딸에게도 친구가 있으면 좋으니 소라에게 내 이야기를 넌지시 했을 것이다. 그래서 소라가 그 첫 만남에서도 이상하게 내 장애에 대해 낯설지 않은 반응을 보였던 이유가 설명되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에서 그 순간을 다시 되짚어보아도, 소라가 손가락으로 내가 유달리 알아듣기 힘들었던 자신의 이름과 내 이름을 한 획씩 적어주었던 그 순간은, 소라가 스스로 한 행동이었다. 단순히 내 입장에서 시각적으로 보는 게 더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이의 배려였다. 그렇게 추측할 수 있도록 나는 소라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소라를 잘 알았다. 소라는 웃음만큼이나 밝고 선하며 모든 아이들에게 두루 상냥한 아이였다.
그렇게나 친했던 소라인데 시간이 많이 흘러서 이제 세세한 추억도 떠오르지 않는다. 소라에 관해서 명확히 기억나는 것은 우리의 첫만남과, 반묶음한 갈색 머리와 특유의 웃음, 그리고 소라가 이사 가던 날의 풍경이다. 그 날의 조금 흐린 날씨와 우중충한 분위기가 기억난다. 소라네 집이 이사 가게 되었고 전학 처리 되어 학교에서 더 이상 만날 수 없었다. 이사하는 날까지 그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집에서 엄마가 어떤 전화를 받다가 내게 수화기를 넘겨주면서 말했다.
“소라야. 소라가 지금 이사를 간대. 잘 가라고 인사를 해줘.”
수화기를 생명줄마냥 꼭 붙잡고 소라야 잘 가라고 했던 것 같다. 아니 그냥 울어버렸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 순간은 명료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이 정체불명의 소리가 소라의 마지막 말이라는 것을 알고 온 사력을 다해 청력을 증폭시켰으나 끝끝내 그 아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나는 지금까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들으려고 하다가 알아들을 수 없어서 알아들은 척하고 “응응,,,”만 반복했다. 보다 못한 엄마가 전화가 끊어졌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끊어진 수화기에 대고 서럽게 울어댔다. 소라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 슬퍼서 목놓아 울었다. 그냥 엄마에게 바로 수화기를 넘겨서 그 말이 뭔지 듣게라도 할걸. 목소리를 듣고 싶은 욕심으로 아무 것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 때 느꼈던 최초의 좌절감과 실망감, 후회로 훗날 이 순간을 뇌리에서 지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감정이 강렬하여 십년이 지나고 이십년이 흘러도 그 슬픔이, 그 무력감이 마치 어제 일인 것처럼 생생하다. 감정과 별개로 어린아이의 힘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생애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이라서 그런 것일까. 자기 힘으로 이룰 수 없고 막을 수도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인연을 지속하고 싶어도 주변 상황을 이유로 끝내 놓아버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상황을 타개해볼 수 없었던, 그래서 마지막 말을 끝내 알 수 없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환멸감을 처음으로 느낀 것인지도.
이제는 소라와의 추억이 기억 속에서 사라져간다. 사실 이름이 맞는지조차 자신이 없다. 그 애의 얼굴만은 잊히지 않길 바라며 보낼 수 없는 기억의 끝자락을 잡고 또다시 사계절을 살아간다. 소라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무엇이었을까? 잘 지내라고 했을까?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약속이었을까? 전화기가 아닌, 너와 얼굴을 맞대고 헤어졌다면 그 말을 명확히 알 수 있었을까. 분명한 것은 상냥한 너의 성정대로라면 이렇게 이별했을 것이다.
“안녕, 나 소라야. 그동안 고마웠어, 꼭 행복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