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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으로 분류된다는 건

by 박현주

차트에 파란색이 그어졌다. 이제 마지막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내 책에도 나왔던 한 아버지가 계신다.
책에는 여든여덟이라고 적혀있지만 늘 "내 나이 팔십여덟이다"라고 첫마디를 여셨던 아버지였다.
연세에 비해 정정하셨고 재밌었다. 실례가 될지 모르나 마냥 귀여운 분이셨다. 표정도 다양했지만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하셨고 얼굴에 튄 침을 연신 닦아내면서도 열변을 토하시던 그 모습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한데... 이제 그 모습을 다시는 볼 수가 없다.

"샘, 요새 ㅇㅇㅇ아버님 왜 안 오시지?"
"어? 그러네요? 잠시만요."

자판으로 아버지 이름 석자를 두드렸다.
난 곧바로 손을 가져가 입을 막았다.
"헉, 어째요... 돌아가셨어요. 잠시만요. 병원 다녀가시고 보름도 안 됐는데?"
혈압약을 받아가신지 보름도 안 됐는데 보험이 상실되어 있었다. 그건 돌아가신 것을 뜻하기에 너무 놀라 잠시 얼어버렸다.
잠시 뒤, 따님이 보름 전에 오셔서 혈압약을 받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불과 한 달 전, 기침이 심해서 엑스레이를 찍었고 폐렴소견이 있어서 입원을 권유했으나 아버님은 철저히 반대하셨다. 그러다 대학병원에 입원하셨으나 결국은 퇴원하지 못하신 채 생을 마감하셨다.
요 근래 유독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았다. 종이차트가
하나씩 꺼내지고 파란색이 칠해지면 가슴이 한동안 먹먹해진다. 병원에서 만나고 대화한 게 전부인데도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상하는데 가족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을까. 그런 마음이 들 때면 가족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어 진다. 내가 줄 수 있는 사랑과 관심을 무한정 쏟고 싶어 진다. 어느 날 다가 올 오랜 이별 앞에서 덜 힘들고, 덜 후회하고 싶어서.


아버지께서 편안히 잠드셨길 바라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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