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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caa Dec 02. 2021

다산의 공감 연습(4장)

4장 공감의 경제학/아애기례我愛其禮

그럼에도 서恕는 유학 전통에서는 물론이고, 성리학 전통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인仁, 애愛, 경敬과 같은 기존의 정치적 용어들에 비해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사서에서도 《논어》 외에 나머지 책들에서는 단 1회씩만 등장한다. 그리고 《중용》과 《대학》의 서는 《논어》의 개념을 그대로 사용할 뿐 부가적인 내용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맹자》에서도 서는 인과 더불어 “서를 힘써서 행하면 인을 구함이 이보다 가까울 수 없다强恕而行 求仁莫近焉”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맹자》에서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소개되어, 서를 대체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중국의 학자들은 측은지심과 서를 거의 같은 의미로 보고 있다. 결국 서는 ‘측은히 여기는 감정의 측면’, 즉 연민이나 공감으로 볼 수 있다.


현대의 서는 용서의 의미로 고착되어 버렸고, 그런 점에서 본래의 뜻을 되찾는 것은 매우 어렵거나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리고 공감이라는 단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굳이 그것을 서恕라는 단어로 대체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사서에 오늘날 통용되는 ‘공감’의 개념이 제시되었다는 것 자체가 공감을 현대적으로 재정의하는 데 매우 유용하며, 큰 의미가 있다.       


공감이라는 개념이 서양철학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에 대한 서양의 학술적인 연구도 역사가 길지 않다. 공감은 심리학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었는데, 철학 또는 윤리학적으로 유의미한 작업을 시작한 사람은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다. 그리고 흄의 제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국부론》의 저자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의 첫 번째 책 《도덕감정론》의 첫 장은 공감sympathy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서양사상사적으로 데이비드 흄의 철학보다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철학이 많은 반향을 일으켰듯,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보다 《국부론》이 더욱 많은 연구 주제를 양산했기 때문에 이들이 주창한 공감의 개념은 이전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애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이라는 도덕철학 서적과 《국부론》이라는 경제학 서적을 모두 저술했다는 사실은 자공과의 연관선상에서 매우 흥미롭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인물이지만, 연구 주제나 문제의식이 매우 유사했기 때문이다. 흄의 철학을 연구한 최근 책들을 보면 흄이 공자와 매우 닮았다는 인상을 주는데, 흄의 제자 스미스와 공자의 제자인 자공도 그러하다. 이들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윤리와 경제로 인식했다. 그리고 그 둘을 연결 짓는 개념이 자공에게는 서였고, 스미스에게는 공감이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슈는 윤리와 경제 문제다. 한국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더 윤택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기를 추구하면서도 부자나 권력자에 대해 어딘가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 이는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부와 권력을 획득하는 사회 지도자들의 행태, 근본적인 경제 문제 해결에 힘쓰기보다 일시적으로 눈 가리기에 급급한 선심성 정책 그리고 점점 더 심해지는 양극화에 박탈감과 염증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지도층에게 요구되는 공직 윤리를 막연하게 청렴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한 ‘내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는 지도자들의 뻔뻔한 변명에 빌미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이 시대에 맞는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윤리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공감 윤리’에 대해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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