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또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백수비망록 EP11] :: Can I do well?

by 버터 바른 토스트

반팔을 입기엔 살짝 춥고, 긴 팔을 입자니 더운 날이었다. 고요한 소음이 무기력하게 짖누르는 새벽이 고통스러웠다. 실업급여가 만료되고, 더 이상의 수입이 끊기며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백수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풍선처럼 커져가고 있었다. 그간 내가 해왔던 것들을 차분하게 돌이켜보며 다시 시작해볼 수 있는 직무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봤다. 새로운 일을 도전하기엔 애매하게 차버린 나이가 걸렸고, 특정 직무는 끔찍했던 직장생활과 개인사의 트라우마가 얽혀 있는 기억에 머리가 아찔해왔던 것 같다.


무질서하게 어지럽혀져 있는 것들을 정리하는 것이 좋았고, 화려하기보다 단순한 것이 좋았다.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은 애매한 직장생활 기간에 있어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기간이 2/3정도 되었다. 무릇 디자이너라 하면 예술계통과 밀접하게 관련지어 생각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나는 유형물에 대한 디자인보다 무형물에 대한 디자인 경험이 많았다. 무언가를 계획하거나, 리서치하며 정리해나가거나, 구조화하는 그런 일들 말이다. 싹 다 버리자니 아쉬웠고, 새로운 직무를 도전하기엔 준비된 것도, 손에 쥔 것이 없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결정한 직무와 관련된 회사에 이력서들을 넣었다. 한참 100통이 넘는 이력서를 넣고도 회신이 없거나, 괜히 시간만 뺏겼다는 생각이 드는 면접만 보며 점점 지쳐가는 때였다. 생각치도 못하게 이력서를 넣은 회사마다 면접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입사를 결정해야하는 곳은 딱 2곳으로 좁혀졌다. 한 곳은 건축 관련 그룹 계열사 계약직이었고, 한 곳은 중소기업이었다. 연봉으로만 따지자면 그룹 계열사가 훨씬 높았다. 주된 복리후생을 보아도 그룹 계열사가 훨씬 더 좋았다. 그러나 6개월의 계약직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무조건 짤린다는 보장도 없었고, 일을 아무리 잘한다 한 들 무조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앞자리 부터 차이나는 연봉만 생각했을 땐 당연히 그룹 계열사로 가야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번만큼은 선뜻 내 판단과 결정에 자신이 없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해 선뜻 결정내리지 못하고 있는 나의 상황과 고민들을 흩뿌렸고, 그들 역시도 선뜻 방향성이나 조언을 해주기 어려워보였다. 심지어 둘 중 어느 곳으로 입사하는 것이 좋을지 우리집 강아지와 친구의 강아지 까지 동원되었다.


최종적으로 결정한 곳은 중소기업이었다. 차떼고 포떼고 보아도 일단 장기적으로 다닐 수 있는 회사가 우선인 상황이었다.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있는 전 회사의 임금체불로 고통받는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인만큼, 또 다시 수입이 끊기는 일은 없어야했다. 스스로를 불안하게 하는 일은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계열사는 오퍼레터를 준지 하루만에 입사를 재촉했고, 중소기업은 다행히도 입사까지 한 달간의 넉넉한 기한을 줬다. 다급하게 사람을 찾는만큼, 생각보다 일에 치이다못해 갈려버릴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도 없지않아 있었다.





벌써 입사를 결정한 곳에서 일을 한지 2달이 지나가고 있다. 짧은 시간에 정신없이 꽤나 많은 일을 쳐내고, 아직까지도 사람과 분위기를 파악하느라 하루하루가 정신이 없다. '잘' 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보다 '사고치지 않고' 해낼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청산된 백수생활이 그립지 않은 마음가짐을 오래 갖고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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