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깨어나는 햇살 속으로 흰 꽃들이 날리고 있었다. 춘삼월의 눈은 얇고 가벼우며 푸른 향이 났다. 이제 막 새로운 싹을 내놓은 나뭇가지들도 그네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예쁜 이별을 하듯 포근히 안아 녹여주었다. 봄눈은 지난겨울 이야기를 잊지 말라며 차가운 빌딩 한편, 닫힌 창문 틈새, 무심한 벌걸음 걸음마다 스며들어 눈물짓는다. 아직 전해야 하는 이야기가 남은 걸까. 하지만 지금은 봄이다. 미련이 남았더라도 금방 기화되고 사라져 버릴 옛이야기인 것이다.
벌써 남쪽의 동백은 다 져버렸고 멀리 있는 섬에는 유채꽃의 노란 물결이 시작되었다. 우리 집 베란다 다육이 꽃이 몽글몽글해졌고, 빈 화분에 제비꽃은 활짝 피어 수줍게 고개 숙이며 봄을 노래하고 있다. 눈이 온다고 해서 봄이 오는 걸 막기에는 너무 때가 늦어버린 것이다. 오늘이 지나고, 지금의 찬 바람이 지나고 나면 봄꽃으로 만개한 세상에서 환하게 웃음 짓는 내일을 맞이하게 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