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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 Oct 10. 2023

공을 좋아하는 달수씨

탐욕적인 달수씨

저와 달수씨는 도토리 축구를 좋아합니다. 이건 요새 같은 시기에만 잠깐 할 수 있는 놀이인데요, 공원에 나가서 상수리나무 아래 깔려있는 나무 데크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데구루루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와 달수씨는 재빠르게 뛰어가서 도토리를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렇게 도토리 축구가 시작되는 겁니다.      


달수씨는 성격이 모나서 패스 개념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도토리를 혼자 독점하고 입에 물고 뛰는 것도 부족해서 끝내는 그것을 깨서 먹어버립니다. 두 번째 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나무 데크 아래에서 귀를 기울이다가 도토리가 구르는 소리가 들리면 게임이 시작됩니다. 제가 먼저 현란한 발재간을 부려 도토리를 가로챕니다. 달수씨는 평소에는 이족보행을 잘도 하더니만 이런 때에는 불공평하게도 네 개의 다리로 빠르게 뛰어다니면서 도토리를 빼앗아간 다음 또 이빨로 물어서 깨뜨려 반으로 갈라서 먹어버립니다.     


달수씨는 기분이 좋으면 북청사자탈놀음에서 사자춤을 추는 것 마냥 머리를 좌우를 흔들면서 흥겹게 뛰어가는 습관이 있습니다.      


강아지 귀에 뭐가 들어간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기분이 좋아서 그런 겁니다. 도토리 축구를 하는 것이 신나서 양쪽 귀가 펄럭거리도록 머리를 흔들면서 달려가는 겁니다. 저렇게 뛰려면 어지럽겠다 싶으면서도 그런 모습을 보면 언제나 저까지 신이 납니다. 아쉬운 대로 솔방울을 갖고 놀 때도 있는데 그건 먹을 수가 없으니까 금방 흥미를 잃어버리더군요.     


탐욕적인 달수씨


가끔 다음 산책에서 갖고 놀기 위해 도토리를 두 개만 땅에 파묻어 두면 어떨까 싶습니다. 우리가 묻어두고 깜빡 잊어버린 도토리가 싹을 틔워 아름드리나무가 될 때까지 달수씨가 함께 지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구운 밤에 싹이 트면 이별하겠다고 하지는 않았으니 너무 큰 욕심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달수씨를 비롯한 많은 강아지들은 동그랗고 굴러다니는 물체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강아지 놀이터에서 누가 공을 꺼내면 큰일 납니다. 개들이 싸우기도 하고 물림 사고가 나기도 하니까요.    

 

남편도 그걸 모르지 않는데요, 며칠 전 강아지 놀이터에 갔더니 달수씨가 어디 철조망 너머로 앞발을 집어넣어 버려진 공을 주워왔다고 합니다.      


그건 안 돼!      


이야기를 듣던 저는 사색이 돼서 비명을 지르고 귀를 막았습니다.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훤히 보였기 때문입니다.     


공은 삑삑 소리가 났기 때문에 다른 강아지들의 관심을 끌었고, 달수씨가 그 공을 입에 물고 도망 다니면서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으르렁거리고 사납게 굴어서 남편 입장이 몹시 난처했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과묵한 편인데 오죽하면 거기 모인 분들에게 이 공은 제가 준 게 아니라 개가 어디에서 주워온 거라고 큰 목소리로 변명을 해야 했다고 화를 냈습니다.      


달수씨가 예민하고 난폭하게 구니까 강아지들이 얘를 피해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집으로 돌아가려면 달수씨한테 공을 빼앗고 목줄을 해야 할 텐데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이빨을 드러내고 물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을 생각했다고 말했어요.


저는 양아치 달수씨로도 부족해서 이제 망나니 달수씨로 불리게 되겠구나 심란해졌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달수씨가 순간적으로 놓친 공을 재빨리 주워 멀리 던져버렸고, 둘이 강아지 놀이터 벤치에 외롭게 앉아 친구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강아지와 보호자분이 오셨다고 했어요.      


그런데 보호자분이 공을 꺼내더랍니다. 남편이 펄쩍 뛰면서 공은 안 된다고 말했는데 그분이 웃으시면서 괜찮다고, 이런 때를 대비해 공을 두 개 가져왔다고 하면서 하나씩 나누어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하, 좋은 분이네.     


그랬더니 달수씨가 공을 하나 입에 물고, 친구 강아지에게 뛰어가서 나머지 공까지 빼앗아 두 개를 다 입에 물더니 도망 다녔다고 했습니다. 친구 강아지가 하나 달라고 하니까 으르렁거리고 저리 가라고 위협하며 난폭하게 굴었다고 했어요.      


공이 입에 다 안 들어가니까 걸어가다가 하나를 떨어뜨리고 얼른 다시 입에 물었다가 또 떨어뜨리면 줍느라고 입에 흙이 다 들어가서 자신의 탐욕 때문에 달수씨도 괴로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강아지 친구 보호자분의 냉랭한 시선을 견디다 못해 남편이 목숨을 걸고 공을 두 개 다 빼앗아서 돌려드렸고 결국 남편은 공을 향해 절규하며 저항하는 달수씨를 질질 끌고 강아지 놀이터를 나왔다고 했습니다.      


하여튼 쟤는 못된 놈이라고 남편이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어렸을 적에도 탐욕적이었던 달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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