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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 Oct 07. 2023

무서운 사춘기 (강아지)

그리고 양아치 달수씨

오늘은 모처럼 애견 놀이터에 왔습니다. 간헐적으로 비가 내리는 날 진흙탕 놀이터에 누가 올까 싶었는데 이미 많은 개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강아지 키우는 분들, 불쌍합니다.     


소 아니고 강아지 놀이터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달수씨


달수씨가 냄새도 맡고 신나게 놀다가 진흙 언덕 위에 엎드려서 쉬고 있는데 꼬맹이 강아지가 달려와서 마운팅을 하려고 했습니다. 달수씨가 처음에는 당황하더니 곧 그렇게 하지 말라고 으르렁거렸습니다. 그래도 계속 달수씨 몸통 위로 달려들자 달수씨도 꼬맹이에게 덤벼들었습니다.     


달수씨가 은근히 곤조가 있습니다. 네, 사실 쟤도 꼴통이란 뜻입니다.     


달수씨랑 그 강아지가 격렬하게 싸움을 시작하자, 지켜보던 보호자들이 덤벼들어 급하게 개들을 떼어냈습니다. 빨리 개입했는데도 달수씨는 흙투성이에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말티푸 강아지 두 마리: 오른쪽이 달수씨

그 집 개의 보호자분이 강아지가 아직 어려서 원래 좀 산만하고 다른 친구들을 못 살게 구는 일이 있다면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말은 바로 해야지 못 살게 구는 일이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개를 못 살게 굴지 않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다른 보호자가 큰 소리로 그 집 강아지 덕분에 자기네 강아지가 겁을 먹어서 쉽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 안전문을 지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원래 강아지 놀이터에서 다른 강아지들이랑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개들이 도망 다니면서 집으로 안 가려고 안간힘을 쓰기 때문입니다. 우리 강아지 놀이터는 저녁 7시에 문을 닫는데 6시 50분이 되면 더 놀고 싶어서 도망 다니는 강아지와 각자 자신의 강아지를 잡으려고 뛰어다니는 보호자들 때문에 진풍경을 이룹니다.     


마침내 따가운 눈총을 못 이기고 그 강아지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우리 집에 있는 사춘기 아들 두 명을 떠올려 봤습니다.


으응, 요약하면 저 강아지가 사춘기라는 말이네. 여기도 사춘기, 저기도 사춘기. 어휴, 사춘기 정말 싫어. 미친 사춘기는 당해낼 수가 없다니까 그치? 달수씨.     


달수씨가 그 말을 듣고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참, 우리 달수씨가 강아지 놀이터에 오랜만에 온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는 아니고... 강아지 놀이터에 열심히 오던 시절에, 달수씨가 강아지 놀이터에 온 보호자들의 가방 속에는 간식을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꾸만 벤치 위에 놓인 남의 가방을 뒤져서 다른 분들한테 미안해서 자숙의 의미로 한동안 강아지 놀이터에 발걸음을 멀리했던 것입니다.          


그때 달수씨가 어떤 분의 가방을 열심히 뒤져서 제가 말리려고 뛰어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가방 주인분이 달수씨를 보고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휴, 저 녀석, 양아치네."     


그래서 몇 달 만에 온 거였는데 이렇게 만신창이로 다른 개한테 물려서 집에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한참 잘 걸어가고 있던 양아치 달수씨가 사춘기 강아지는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다는 듯이 몸서리를 치더니 앞장서서 집으로 걸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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