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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 Oct 08. 2023

달수씨의 삼일천하

여행에서 돌아온 남편이 반가웠던 이유 

남편은 달수씨를 예뻐하지 않습니다. 주말마다 목욕도 시키고, 밥도 잘 주고 하루에 두 번 산책도 열심히 챙기지만 달수씨가 좋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달수씨를 반려견으로서 가정 내 규칙을 준수하고 선을 넘지 않도록 교육해 왔습니다.     


글쎄, 달수씨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우리는 비즈니스적인 관계랄까? 일로 만난 사이?      


남편이 둘째만 데리고 며칠간 남부지방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입니다. 히말라야 등반을 떠난 것도 아닌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진 속의 남편 수염이 점점 덥수룩해지고 눈 밑이 검게 변해갔습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니까.      


집에 남은 큰아이와 저는 마음껏 휴대전화를 쓰고 드라마를 보았으며 배달 음식도 시켜 먹었습니다. 남편이 없으면 우리는 이런 일탈을 즐깁니다.


물론 우리만 엉망진창으로 지낸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 남편이 부재하는 기간 동안 제일 심하게 일탈을 했던 존재는 바로 달수씨였습니다.


원래 달수씨는 소파 위에 올라오지 않도록 가르쳤는데, 남편이 떠나자 소파를 차지하고 앉더니 저나 아이가 거기에 앉으면 으르렁대고 우리를 밟고 다니면서 때때로 물듯이 위협하였습니다.     


달수씨의 카리스마 넘치는 뒷모습


또한 멀쩡히 안방 침실로 걸어가는 저를 따라와서 발뒤꿈치를 물고 앞다리로 발목을 붙잡아 할퀴었습니다. 제 양말을 이빨로 잡아당겨서 구멍을 내고, 빼앗아 물고 좌우로 휘둘렀습니다. 그리고 이족보행으로 식탁 주위를 맴돌며 우리의 음식을 훔쳐가고, 명절 음식 뒤처리를 하느라고 송편을 쪄먹는 우리를 못살게 굴어서 흰 떡을 하나 얻어가기도 했습니다.     


달수씨가 거실 흰 커튼의 끝자락을 물고 자기 켄넬로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썼던 일도 기억이 납니다. 커튼이 팽팽하게 당겨졌고, 저러다 커튼이 떨어지겠다 싶어서 혼을 냈더니 윗입술을 들어 올려 저를 위협하면서 저리 가라고 화를 냈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간식을 던지고 달수씨가 그걸 먹으려고 달려간 사이에 재빠르게 커튼 밑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전날 얻어간 흰 송편을 커튼 뒤에 숨겨놓았고, 돌처럼 딱딱해진 그것이 커튼에 쩍 달라붙은 것을 자기 집에 가져가고 싶어서 그것을 꽉 물고 온몸에 힘을 잔뜩 준 다음 뒷걸음질을 쳤던 것이었습니다. 커튼이 더러워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천에 구멍이 나서 올도 나갔습니다.      


이건 못 먹겠다. 달수씨.     


저는 송편을 돌려달라고 간절하게 호소하는 달수씨의 눈을 못 본척하며 그것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개는 소파를 지키면서 점점 예민해졌습니다. 사료도 안 먹고 생활습관이 엉망이 되더니 작은 소리에도 컹컹 짖으면서 잠을 잘 못 자고 심지어는 똥도 누지 않았습니다.      


달수씨는 자신이 우리 집의 새로운 지배자로 등극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민주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는커녕 점점 악당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달수씨가 꼴 보기 싫어서 피해 다녔습니다.     


우리 집의 자그마한 대장님이 점점 더 꺼칠해져 가던 바로 그때 둘째와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오자마자 이게 왜 여기 있어? 하면서 소파 위에 놓인 달수씨 개껌을 바닥으로 툭 내려놓았습니다.


달수씨는 얼른 손하게 자기 짐을 챙겨서 소파 아래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강아지는 평화로운 얼굴로 푹 잠을 잤고 다시 상냥해졌습니다.     



'마라의 죽음' 이미지가 떠올라서 같이 올려봄. 참고로 달수씨는 안 죽었음.


달수씨가 똥을 누지 않아 걱정이야. 산책 나가면 그것 좀 한 번 봐줄래?

    

간이 된 음식 맛을 보더니 식사를 거부하는 못된 강아지를 잡아다가 남편은 사료를 자기 손바닥에 부어서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먹였습니다. 그러더니 저한테 카톡을 보내서 산책하면서 두 번이나 대변을 봤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집으로 돌아와서 처음으로 크나큰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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