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의 내면에서 그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일들이 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의 깊은 내면 속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감정들이 있었다. 그 실타래는 풀려야만 했고, 풀린 실들로 글이 직조되고는 했다. 그는 그저 그 직조되는 것들을 나열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미 시작된 일들이 있고. 그러기에 완결돼야 할 일들이 있었다. 그는 그 완결점을 향해서 글들을 진행시킬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건 결코 선택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글의 형태가 아니어도, 그 실타래들은 때로는 꿈속의 기묘한 악몽으로, 또는 기분 좋은 몽상들로 헤쳐 나타나고는 했다. 무엇이든지 그 감정들은 터져 나오고 싶어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것들은 대부분 상처에서 시작되는 일이었다. 마음속 푹 파여있는 상처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피가 나오고 , 그 피로 딱지가 만들어지고, 그렇게 흉터가 남아도 상처가 치유되듯 글 역시 그에게는 그러한 종류의 것들이었다.
그가 외톨이일 때도 그의 옆에는 글들이. 그가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낄 때도 그의 옆에는 글들이 놓여 있었다. 그는 때로는 걱정했다. 자신 안에서 맴도는 이 감정들을. 때로는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내리는 이 감정들을. 그는 감정의 폭풍우 속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는 했다. 글이 이 감정들을 불러낸 건지. 감정들이 먼저 글을 불러낸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닭과 계란의 문제였다.
그러기에 그는 글을 미워하고는 했다. 그가 지금까지 만나온 글을 써오는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안고서 오랜 시간 동안 끙끙 앓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아주 천천히 자신의 상처로부터 실을 뽑아내고 그 실로 글을 직조해 내는 사람들이었다 , 그건 매우 답답한 과정이다. 매우 느린 과정이다. 성미가 급한 그는 그런 이들을 별로 보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그에게 삶이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가끔 그들의 글에 매혹당했다. 마음속으로는 깊이 끌리고 있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그의 성미에 맞게 많은 사람의 글을 읽고자 했다. 빠른 속도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글을 쌓아두고 읽고 또 읽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외톨이였기에. 글을 읽을 시간은 차고 넘쳤다. 그는 글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을 품고 살았다. 정말로 소중하게. 책갈피를 꽃아 두고. 기록해 두고. 몇 번이고 되돌아보고 되새겼다.
그리고 반복해서 말하듯. 어는 순간부터는 그는 자신의 글을 쓴다는 선택지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끔 자신의 글을 미워하고는 했다. 또 어떤 날은 한없이 읽고 또 읽고 그 글에서만 맴돌기도 했다. 하루는 모든 글을 지워버리고 글 따위는 다시 안 쓸 거라고 저주를 한없이 퍼붓기도 했다. 그게 그의 삶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글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건 여러 번 강조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에게는 글의 형태로 그의 내면 속 무엇인가가 피어났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형태로 무엇인가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였다, 어떤 씨앗이 심어져 있든 , 어떤 형태로든 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 피어남은 모든 이들의 삶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피어남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나 글에 매혹당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