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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권 독서

[구두를 신은 세계사]- 태지원

by 조윤효

사람을 감싸며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신발이 세계사를 만났다. 역사를 걸어온 신발을 통해 재미있게 세계사를 만날 수 있다. 청소년 책이라 어렵지 않아 지치고 더운 여름 가볍게 산책하듯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욕망의 대명사가 된 구두, 내가 누구인지 말하는 존재로서의 신발, 환경이 빚어낸 발명품, 신발에 담긴 차별의 역사 그리고 저항의 상징으로서의 신발을 이야기한다.


한 두 켤레 신발로 충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계절별로 수켤레가 필요한 사람도 있다. 가볍고 실용적인 신발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가의 제품으로 부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신발은 인간의 욕망을 닮았다. 필리핀 독재자 부인 이멜다의 명품 구두 1.000켤레 이야기로 시작한다. 1965년 한국보다 잘 살았던 필리핀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되었다. 독재 21년 만에 나라가 후진국이 되었다.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는 8년 동안 한 번도 같은 구두를 신은 적이 없었다. 장기 독재를 물리쳤지만, 독재자는 하와이에서 자연사하고, 부인 이멜다가 필리핀으로 돌아와서 국회의원을 하고, 그녀 아들이 2022년에 필리핀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의 부인에서 대통령의 어머니가 된 이멜다는 쇼핑 중독에 빠져 나라를 후진국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그들을 용서하고 다시 최고 권력을 쥐어준 필리핀 국민들은 또다시 후손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해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가 떠올랐다. 같은 상황이 될 뻔했지만, 집단 지성이 강한 한국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고 있다. 적어도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역사의 극복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농구 천재 마이클 조던의 신화를 업고 한정판 운동화가 재테크 수단이 된 이야기도 흥미롭다. 우리가 가진 욕망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알아야 한다. 빛을 쏘는 자본주의 상업 광고에 불나방처럼 맹목적으로 달려가고 있는 건 아닌지 멈춰 서서 자신의 욕망을 조용하게 지켜봐야 한다. 왜 가지고 싶은지, 꼭 필요한 것인지 질문해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국적 기업들이 만들어 내는 값싸고 질 좋은 제품들이 개발 도상국의 노동자나 고사리 같은 손을 가진 어린이들이 만든 상품이라 알려지며 수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생계를 담보로 최소한의 임금으로 기업의 최대이익을 위한 반인륜적 행태를 묵인하는 사회는 결국 함께 자멸한다. 세계적인 비난으로 노동조건이 나아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살기 위해 자신을 소멸시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프랑스의 기업 베자(Vezar)는 정당한 임금 지불로 운동화를 만들어 낸다. 베자는 대부분의 회사들이 광고비로 나가는 70%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아마존에서 신발 밑창을 만드는 고무제작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한다. 당연히 노동자들의 삶은 안정이 되었고, 살기 위해 무작위로 벌목을 하는 일들이 줄어들었다. 지구의 허파에 해당하는 아마존 열대림이 간접적 영향으로 보호되는 것이다. 선한 영향력이 결국은 지구촌의 좋은 삶을 이끌어 가게 된다.


반 고흐의 <신발> 그림은 여전히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견이 나뉘지만, 고달픈 삶의 흔적을 담고 있어서 그런지 애잔한 느낌을 준다. 신발은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을 보여 준다.

루이 14세 초상화를 보면 현대 여성들이 전유물인 하이힐을 신고 있다. 하이힐을 프랑스 남성 귀족들이 먼저 신기 시작했다. 중세 시대는 15~60 센티미터 높이의 신발인 초핀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하인들의 도움 없이는 그 높은 신발을 신을 수 없다. 신발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재력을 보여주는 도구가 되었다.


2010년에 크록스는 최악의 발명품 50위 안에 든 상품이었다. 유명 연예인이 신기 시작하면서 대중들에게 갑자기 인기를 얻게 되었다. 크록스의 기원이 네덜란드 나무 신발 클로스로부터다. 네덜란드 농민들이 가볍고 실용적인 나무 신발을 만들어 신었다. 우리의 나막식과 같으나 모양 자체가 더 가벼워 보인다.


차별을 담아내는 역사로 빼놓을 수 없는 게 중국의 ‘전족’ 문화다. 여자가 귀하던 시절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기능과 집안에서만 여자들이 생활하도록 공간 제한을 만들기 위해 전족을 채웠다. 10~15센티미터의 신발안에서 기형적으로 자란 여성의 발은 작은 발을 선호하는 남성 중심 사회 분위기가 오랫동안 부추겨온 악습이었다.


한국 관료들이 신었던 검은색 장화 형태의 신발 또한 권위를 상징하는 도구였다. 아무나 신을 수 없다는 제약은 다수의 사람들을 쉽게 자신의 아래 계급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명품을 가지고 싶어 한다. ‘보세요, 나는 이런 제품을 쉽게 사서 쓸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나를 존중해 주세요’라고 조용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헝가리 수도 부다 페스트에 있는 다뉴브 강변의 60켤레 신발 조각은 아픈 역사를 담고 있다. 유대인들을 강 앞에 일렬로 세워두고 총살시켰던 잔인한 역사에 대한 반성의 의미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발견된 10만 켤레의 구두 사진들은 한때, 누군가의 소유물이었고, 가스실에서 소리 없이 사라져 간 사람들 것이었다. 버려진 신발은 항상 주인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강물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신발을 벗는 이유가 한 때 지상을 밟고 살았던 존재로 작은 반점을 하나쯤은 남겨 두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신발은 저항의 상징을 담고 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부시에게 날아든 신발은 경멸을 보여 주기 위한 도구였다. 평화시위자 간디는 영국산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의 일환으로 엄지발가락만 끼워 신는 슬리퍼 모영의 체펄을 신었다. 그의 발 사진은 약해 보이지만 강한 역사의 발자국을 남겼다. 후에 히피족들은 간디가 신었던 체펄을 유행시켰다.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면서 벗겨진 270미리 운동화는 그 한 짝만이 유족들에게 돌아갔다. 전두환 독재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다시 복원돼 이한열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한열 열사의 몸을 사리지 않은 저항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피어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부당함과 차별에 대한 저항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동반한다. 두려움과 함께 용기를 내어 저항해 온 역사적 인물들의 정신은 역사 속에 살아 있다. 역사적 인물들이 신었던 신발은 단지 눈에 보이는 물건이 아니라 그들이 걸어왔던 길을 보여준다. 신발이 담고 있는 역사 이야기를 보면서, 근 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느낀다. <구두를 신은 세계사>라는 책은 신발로 보는 역사를 통해 지나온 길들에 대한 관심을 더 갖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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