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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권 독서

[현자들의 죽음]- 고미숙

by 조윤효

죽음은 느닷없고 삶은 요행이다’ 한 줄 글이 책을 말해준다. 죽음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오고, 하루를 건강하게 살아가는 건 천복이다. 건강한 몸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천금만큼 가치가 있다. 욕망과 결핍 사이클이 아니라 감사와 사랑의 사이클을 만들어 내야 함을 작가 고미숙의 책 <현자들의 죽음>은 알려 준다.


삶 속에서 욕망과 결핍이라는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죽음은 재앙이 되지만, 감사와 사랑 속에서 살다가 맞이하는 죽음은 평온함이 된다.

‘생사는 둘이 아니다. 삶은 충만하게 죽음은 평온하게......’

죽음에 대한 우리의 사유는 빈곤하기 이를 데 없다. 공포와 무지, 둘 사이에서 오락가락할 뿐이다.

현자들로부터 죽음법을 배우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과학이고 모든 과학을 초월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조언이 강하게 인상에 남는다.

‘자연은 나에게 몸을 주어 태어나게 하고, 삶을 주어 애쓰며 살게 하고 늙음을 주어 편안하게 하고, 죽음을 주어 쉬게 한다.’


소크라테스, 장자, 간디, 아인슈타인, 연암, 다산, 사리 붓다 그리고 붓다의 죽음은 평온하고 지극히 유쾌한 과정이었음을 책은 이야기한다. 죽음이 삶과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충만한 삶 이후에 자유를 향한 비상처럼 느껴지게 한다.

죽음이 무의 미로 해석이 되면, 삶의 모든 가치도 증발해 버린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이 죽음 연습임을 보여 준다. 또한 죽음은 영혼을 정화하는 행위이고, 영혼을 잘 돌보는 일이 철학임을 이야기한다. 최초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죽음 변론 이야기는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냉철하고 차분하게 주위 사람들을 달래며 맞이하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영혼이 계속된다는 ‘상기론’을 이야기한다. 생각하기에 따라 모든 세상일들이 복이 될 수도 있고, 화가 될 수 있다. 죽음 또한 넘쳐나는 생의 열기를 가진 사람들이 철학적인 공부로 진행할 때, 삶을 더 찬란하게 살아갈 수 개념이 되어 줄 것 같다.


아내 죽음에 대한 애도가 아니라 노래를 부른 장자의 죽음 해석은 독특하다. 우리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 편하게 쉬고 있을 아내를 위한 축가를 불러 준 장자. 장자가 전해주는 교훈은 단순하며 강하다.

시선은 원대하게, 일상은 세밀하게’

자연의 리듬과 원리를 채득해 난세에서도 ‘명랑하게 살아가는 일’이 최고의 철학임을 보여 준다. 자아에 대한 집착을 비우고 그 텅 빈 곳을 덕으로 채우라는 조언이다.


인간의 모든 종교를 고차원적 차원에서 연결하는 ‘메타종교’를 지향하는 간디의 삶에서 ‘죽음이 영광스러운 해방’ 임을 보여준다.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치열한 종교적 갈등 속에서 3발의 총성으로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한 간디의 삶은 살아생전 말했던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나의 삶이 곧 나의 메시지다.’

자신의 삶을 메시지로 여기는 사람의 삶은 깊은 공부를 부른다.


이 한 번의 생으로 충분하다는 아인슈타인의 삶도 치료를 거부하고 기꺼이 죽음을 맞이한 대범한 현자의 모습이다. 전쟁을 반대하는 퀘이커 교도인 영국인 에딩턴으로 인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증명되었다. 1919년 일식 관찰로 어떻게 보면 적대 국가인 독일인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세계에 증명해 준 애딩턴은 무명의 과학자 아인슈타인을 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1차 세계 대전의 포화 속에서 피어난 평화적 연대의 상징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연암의 묘비명들은 살아가는 동안 만나든 일상적 죽음을 이야기한다.

‘죽음이 도처에 있다.’

나보다 어린 사촌의 죽음이나, 학원생 남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일상에서 느닷없이 찾아드는 충격이다. 생활 속에서 문득 숫자 4시 44분을 만날 때, 죽음을 잊지 말라는 나만의 상기의식을 가지게 된다. ‘다 내려두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은 지금 고민하는 모든 문제들의 덩치를 줄여준다.


500권 저자의 정약용 다산의 삶은 책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으나, 회혼식날이 장례식이 된 사실은 처음 알았다. 60년 세월 동안 부부 인연을 맺었고, 그중 18년 유배 생활 속에서 서로의 소중함을 절절히 느꼈으리라. 마치 삶의 마지막 무대까지도 하나의 공연으로 승화시킨 것 같다. 회혼날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실은 세상과 이별하는 장례식을 준비한 것이니 말이다.


죽음을 인지한 붓다의 제자 사리 붓다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마지막 깨달음을 선물하고 열반했다. 가장 큰 선물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떠났다.

붓다의 삶 또한 용맹, 정진한 현자의 모습이다. 죽음과 시간의 마주침을 깨우치면 어떤 죽음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책의 말이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


환생을 통해 계속 생을 살아간다는 티베트 불교 이야기를 통해, 달라이 라마의 존재 위치를 알 것 같다. 14번의 달라이 라마가 실은 같은 영혼으로 계속 환생한다는 믿음. ‘전생의 내가 이생의 나에게 보낸 편지’ 이야기 들은 죽음에 대한 타부가 아니라,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대범하게 받아들이는 용기를 준다.


작가 고미숙의 책 <현자들의 죽음>이라는 책은 농도가 진한 책이다. 읽는 속도가 느리지만, 오랫동안 고아 만든 첫 곰국 물 같다. 욕망과 결핍의 그물이 촘촘하게 느껴질 때, 일독하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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