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정의인가' 영화 <킹 메이커>

by twitty

0. 프롤로그


영화 <킹 메이커>를 봤다. 20대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영화관에서 봤고, 리뷰를 남기기 위해 선거가 끝나고 한번 더 봤다.

같은 영화인데도 보는 시점에 따라 느낌도 묘하게 달랐다. 공통점이 있다면 90년대 중반 격동의 정치사를 그린 이 영화가 오늘날 현실과 너무나도 닮아있다는 것. 마치 이번 선거를 미리 내다보고 만든 것처럼 국회의원 선거, 당내 경선, 대통령 선거로 이어지는 영화 속 흐름이 최근의 크고 작은 사건들과 매우 비슷했다.

그렇기에 영화의 흐름 자체는 전혀 새롭지 않다. 내가 느낀 영화의 재미는 등장인물의 치열한 가치 싸움을 지켜보는 일에 있었다. 김운범 서창대 그리고 이 실장 세 사람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정의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어떤 게 더 숭고한 정의일까를 영화 내내 고민해봤다. 명쾌하진 않지만, 내가 얻은 해답을 적어보고자 한다.


1. 수단과 목표


잠시 동네 약방을 맡아 일하고 있는 서창대. 그에게 한 주민이 찾아와 억울한 사연을 토로한다. 닭들이 통 달걀을 낳지 않아 새벽에 나가 닭장을 지켜보니, 옆집 박창식이라는 사람이 달걀을 훔치고 있었다는 것.

마을 주민은 날이 밝자마자 이장에게 달걀 범인을 신고했지만, 알고 보니 이장과 범인이 5촌 관계였던 탓에 마을 주민은 도리어 ‘엄한 놈 도둑 만든다’는 오명만 쓰게 됐다.


영화 초반, 자신을 찾아 온 마을 주민에게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서창대


그런 주민에게 서창대는 ‘효과적이지만 그리 착하지 않은 방법’을 제시한다.

“거, 아재 닭들 발에다가 이 실을 묶어 놓으쇼. 그리고 옆집 닭장에다가 닭이 좋아하는 걸 하나 몰래 넣어놓는 겁니다. 그리고 아침에 동네 사람들 죄다 불러다가 박창식이네 집으로 쳐들어가요. ‘그 도둑놈이 이번에는 달걀이 아니라 닭을 훔쳐갔다’하고."


영화는 시작부터 서창대라는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를 또렷하게 묘사한다.

서창대는 ‘나쁜 놈을 잡기 위해선 나쁜 방법이라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서창대의 조언을 듣고 마을 주민은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고 망설인다. 그가 제안한 해결책은 달걀 범인을 잡기 위해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 그러나 서창대는 별일 아니라는 듯 주민에게 한 마디를 덧붙인다. “사악한 방법이지요. 아니면 뭐, 착한 호구로 살든가."


목표는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서창대와 김운범은 이 지점에서 부딪힌다. 열심히 정책과 비전을 설명하지만, 공화당의 '빨갱이'라는 공격 한번에 매번 무기력하게 선거에 지고 마는 김운범. 서창대는 그런 김운범이 답답하기만 하다.


김운범의 사무실을 찾아 간 서창대
“그렇게 고루하고 순진한 방식으로 접근하다간 이번 선거도 미역국 드시게 될 겁니다. 7년간 4번이나 떨어지셨는데, 아직도 모르십니까?"


서창대가 이토록 답답해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서창대가 꿈꾸는 세상과 김운범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 같기 때문이다. 김운범과 서창대는 ‘국민이 발언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 '개인이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두 사람은 같은 목표를 공유하는 관계다.


특히 서창대에게 공화당의 '색깔 공세'는 현실이자, 공포다. 이북 출신인 서창대의 아버지는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세상을 떠났다. 빨갱이라는 세 글자가 이 나라에서 어떤 의미인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그는 잘 안다. 세상 순수하기만 한 김운범의 대처가 못마땅한 이유다.


“돈을 벌든, 표를 벌든. 그게 뭐가 다릅니까” -서창대
“다르지. 장사는 돈이 버는 게 목적이 될 순 있어도, 정치는 표를 버는 게 목적이 되면 안 되는 거야.” -김운범


첫 만남에 김운범과 서창대는 '목표와 수단'이라는 주제로 작은 언쟁을 벌인다. 수단에 있어서 두 사람의 의견은 달랐으나, 김운범은 서창대가 지닌 목표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두 사람은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의기투합한다.


2. 빛과 그림자


제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서창대는 김운범의 캠프에 합류한다. 서창대는 대단한 지략가였다. 상황을 인지하고 파악하는 눈이 뛰어났으며, 목표를 위해선 어떤 전략도 과감하게 사용할 줄 알았다.

김운범의 캠프에 합류한 서창대


서창대의 도움으로 김운범은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목포 지역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


선거 이후, 공화당의 제안에 갈등하는 서창대


그의 뛰어난 활약에도 서창대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북 출신'인 탓에 그의 존재 자체가 김운범에게 약점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창대의 존재가 알려지면 안 그래도 빨갱이라는 정치 공세에 시달리는 김운범은 더 큰 짐을 떠안을 수 있었다.


“우리가 그쪽한테 별명 하나 지었소예. '그림자'라고. 참 슬픈 별명이지요.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아무도 모르니까" -이 실장


애써 묻어둔 섭섭함은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와 서창대를 괴롭힌다. 당내 경선을 앞둔 어느 날, 서창대는 자신의 속내를 김운범에게 털어놓는다.


처음으로 속내를 털어놓는 서창대


“제가 예전에 선생님께 곶감 단지 그 이상이 되고 싶다고 말씀드린 적 있지 않습니까. 이기면 이길수록 커지는 선생님 등 뒤를 보고 있자니 ‘왜 나는 아무도 몰라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창대는 끝까지 김운범의 옆을 지킨다. 당내 경선 2차 투표 결과, 김운범은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다. 이번에도 서창대의 승리였다. 당내 비주류였던 김운범은 서창대의 탁월한 협상 전략으로 평생 본인이 꿈꾸던 세상에 한 걸음 더 다가선다.


40대 기수론의 주인공 김영호, 김운범, 이한상 의원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김운범


'빛이 세질수록 그림자가 짙어지는 게 당연한 거겠죠. 그래도 전 선생님이 빛나는 게 좋은가 봅니다'
-서창대


당내 경선 직후, 서창대의 독백이 기억에 남는다. 지역 국회의원에서 당내 대선 주자가 되기까지 무명 정치인이던 김운범의 존재감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던 사이, 서창대가 꿈꾸던 세상도 현실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만큼 서창대의 남모를 씁쓸함도 같이 커지고 있었나 보다.


3. 나쁜 수단과 상처


두 사람의 갈등은 대선을 앞두고 폭발한다.


대선을 앞두고 회의하는 김운범 선거 캠프


둘의 사이가 완전히 어긋나게 된 계기는 ‘김운범 자택 테러 사건’이었다. 김운범이 미국에서 공식 일정을 소화하는 사이, 김운범의 자택에서 정체불명의 폭발물이 터지는 일이 발생한다. 해당 사건은 공화당과 경찰의 합작품이었으나, 경찰은 이를 신민당의 자작극으로 몰고 간다.


“지난번 서창대가 쇼하자고 한 거 기억나시죠?”
“지금 서창대 의심하는 거요?”


서창대는 신민당 내부에서도 사건의 배후자로 의심받는다. 이러한 당 안팎의 상황을 서창대가 모를 리 없다. 그런 그에게 김운범은 서창대를 사건의 배후자를 의심하는 듯한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서창대는 무너져버린다. 그동안 쌓아 온 설움이 폭발한다.


김운범과의 독대에서 눈물 흘리는 서창대


“네, 제가 했습니다. 제가 할 줄 아는 게 그딴 짓밖에 없어서”


그렇게 두 사람은 정치적 동지로서 완전히 갈라서게 된다. 평생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받은 김운범이 향한 곳은 공화당이었다. 그는 공화당에서 선거 전략가로 활약하며 처음으로 '지역 감정'을 선거판에 끌어들인다.


지역 감정을 자극하는 선거 전략들


선거를 하루 앞두고 잠에 들지 못하는 서창대


“왜요, 질 것 같아요?”
“아니, 우리가 이길거야.”


선거를 하루 앞두고 잠에 들지 못하는 서창대. 그는 공화당이 선거에 승리할 것을 알고 있다. 그는 공화당의 승리를 누구보다 도왔지만, 기쁘기보다 괴로움을 느낀다.

그날 서창대는 본인의 선택을 후회했을까. 후회했다기보다 깨달았을 것 같다. 선거에서 이기는 것,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보다 '무엇을 위해' 이겨야 하는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서창대는 뒤늦게 깨닫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대통령 선거는 공화당의 승리로 끝난다.


4. 무엇이 정의인가


대선이 끝난 후, 서창대와 이 실장의 대화 장면

서창대는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의를 이루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는 본인이 옳다고 믿는 신념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평생을 지켜온 정의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서창대는 이제부터라도 본인이 믿는 정의를 지키겠다며 공화당에 정식으로 합류하라는 이 실장의 제안을 거절한다.


이 실장은 정의와 대의를 운운하는 서창대에게 정의란 '승자의 단어'라며, 서창대가 본인이 믿는 정의를 위해 싸웠듯이 자신도 나름의 정의를 위해 싸웠다고 말한다.


“그쪽에만 대의가 있습니까? 당신이 김운범의 대의를 믿었듯이 나도 각하의 대의를 믿습니다. 그게 제 정의입니다. 본래 정의라는 게 승자의 단어 아닙니까? 우리가 이겼고, 그래서 우리가 곧 정의인 겁니다.” -이 실장


대선 기간 공화당 이 실장의 모습




이 실장의 말처럼 정의는 승자의 단어일까.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대의를 갖고 산다. 그게 소소한 것이든 거창한 것이든 말이다. 그리고 각자가 지닌 대의가 곧 각자의 정의가 된다.

이런 식이라면 이 실장의 말도 일리가 있다. 정의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기에 서창대의 정의가, 김운범의 정의가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개의 정의가 존재한다. 이런 이유로 이 실장은 정의를 지키겠다며 떠나는 서창대에게 일침을 날렸을 테다. 그가 믿는 정의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민당의 대선 후보로 선발된 직후, 김운범이 서창대와 대화하는 장면


서창대와 김운범 두 사람의 정의는 어떤가. 둘의 정의도 '수단과 목표'라는 관점에서 같지 않았다. 서창대는 '나쁜 놈을 나쁜 방법을 동원해 응징하는 것'도 정의라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마을 주민에게 헛소문을 퍼뜨리라는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일종의 사기극을 펼쳤듯이 말이다. 반면 김운범은 이러한 서창대의 방식은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김운범은 수단이 목표를 삼키는 것을 누구보다 경계한 사람이었기에 그렇다. 어쩌면 두 사람은 처음부터 함께 갈 수 없는 길을 걸은 게 아닐까 싶다.


서창대와 이 실장의 정의도 다르다. 언뜻 보면 서창대와 이 실장은 목표 지향적이며 실용적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인물이다. 그러나 서창대는 이기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지 않은 반면, 이 실장의 대의는 선거에서 이기는 것 자체에 가까웠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지역 감정을 조장하고 나라를 분열시킨 이후, 이 실장은 승리가 눈 앞에 다가왔다며 서창대에게 건배를 제안한다. 그러나 서창대는 기쁘기보다 불편하다. 그의 대의는 그저 이기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창대가 이 실장의 술잔을 거부하는 장면에서 두 인물의 차이점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결론적으로 김운범과 서창대 그리고 이 실장의 정의는 모두 달랐다. 영화는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세 인물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 정의는 누구와 가장 가까운가?'



영화는 그 대의가 이기는 것 그 자체가 되어선 안 된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람마다 각자 품은 대의가 다를 순 있지만, 그것이 그저 이기는 행위가 되는 것은 경계하라는 메시지 말이다. 정치판에선 이기는 것 자체가 대의로 둔갑하기가 쉽다. 진영의 승리만을 위해 싸우다 보면 아무런 철학이나 가치 판단ㆍ신념 없이 오직 상대방을 꺾고 이기는 게 유일한 목표가 된다. 극 중에서 나온 김운범의 대사처럼 이런 식이라면 독재를 하는 것도, 나라를 팔아먹는 것도 대의라며 합리화가 가능해진다.


정의를 승자의 단어라고 하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정의가 승자의 언어라면, 이기기 위해선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무엇을 위해 이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기기만 하면 모든 게 정의라는 달콤한 단어로 덮이는 탓이다. 이기는 순간 모든 수단과 방법이 정의로 둔갑하는 세상은 사람들이 아무런 고민 없이 이기기 위한 싸움에 뛰어들도록 만든다.


그토록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서창대는 공화당에서도 갈증을 해소하지 못했다. 아니, 그는 오히려 더 큰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이 실장은 김운범과 달리 서창대를 '정치할 자격이 충분한 사람'으로 추켜세우지만, 서창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화당 건물을 나와 버린다.

5. 에필로그: 비록 지난 할지라도


1988년 다시 만난 서창대와 김운범


시간은 17년 후인 1988년으로 넘어간다. 백발이 된 서창대와 목발을 짚은 김운범. 두 사람은 오래된 식당에서 재회한다. 김운범은 한결같다. 서창대가 그토록 못 마땅해하던 ‘고루하고 순진한’ 선거 운동을 아직도 하고 있다. 역시나 선거에서는 번번이 떨어졌다.


그런 그에게 서창대는 오래 전 마을 주민의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김운범에게 똑같이 들려준다.


“제가 닭을 한 마리 키우는데, 어느 날 얘네들이 통 달걀을 낳지 않는 겁니다. 그러다 옆집 놈이 달걀을 훔쳐가는 걸 목격했습니다. 이장한테 신고했는데 이놈이 이장 친척이라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겁니다.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서창대
“다음날 새로 나온 달걀을 선물로 줘야지. ‘의심해서 미안했습니다’하고. 양심 있는 인간이라면 뭐 느끼는 바가 있겠지” -김운범


참 그다운 답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걀이 훔친 범인이 누군지 알면서도 그를 나무라기보다는 스스로 변화하길 유도하고 기다리는 사람.

정치인으로서 김운범의 모습도 그랬다. 평생 세상이 바뀌길 원한 그는 바뀌지 않는 현실을 나무란 적이 없었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우직스럽게 어찌 보면 미련할 정도로 요령 없이 밀고 나갔다. 그게 김운범이 생각한 정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998년 다시 만난 서창대와 김운범


17년 동안 선거에서 낙방한 그도 때로는 현실 앞에 흔들렸을 테다. 김운범은 인간의 가능성을 미련하리 만큼 믿는 사람이다. 달걀 도둑의 양심을 믿고 그의 죄를 모르는 척 해주는 것처럼, 김운범은 인간이 스스로 죄를 뉘우칠 줄 알며 양심에 가책을 느낄 줄 아는 존재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하지만 고단했던 17년간의 정치생활이 언제나 본인의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럴때 김운범은 서창대를 찾았을 것 같다. 제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서창대를 고용했고 당내 경선을 앞두고 또한번 서창대의 힘을 빌렸던 것처럼 말이다. 김운범은 처음부터 서창대의 선거 전략이 본인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승리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서창대가 방법이 효과적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이루지 못한 정의와 현실 사이에서 번뇌하는 자신의 모습도 어느 순간 발견했을 것이다. 계속해서 흔들리던 본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폭발물 테러 당시, 서창대를 독하게 끊어냈을 수도 있다.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는 투표로 정권 교체를 이룬 최초의 선거였다.

영화는 해당 자막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자그마치 27년이 지난 뒤였다. 끝내 김운범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가 품던 대의를 이뤄냈다.


그렇다고 김운범의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말할 순 없다. 만일 김운범이 서창대의 조언을 들었더라면, 그가 꿈꾸던 대의는 30년 일찍 이뤄졌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세상은 훨씬 일찍 진보했을 것이다. 미련하게 정공법을 파느니 조금은 요령을 피워 더 일찍, 더 많은 일을 이뤄내는 게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물론 타당하다.


그러나 김운범이 이룬 대의는 그가 믿던 '가능성'이 결코 허상이 아님을 세상에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인간의 가능성, 옳은 것을 위해 싸울 줄 알고 나쁜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인간에게만 허용된 가능성 말이다. 누구도 이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면 세상의 진보는 이뤄질 수 없다. 세상을 변하게 하는 힘은 '가능성을 믿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