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픔에서 성장이 시작된다
시련은 우리를 위한 거름을 지니고 있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온통 비난으로 물들여버립니다. 바깥의 가장 빛나는 별을 선망할수록 내면의 빛을 잊어버리게 되는 일도 허다하죠.
저는 어려운 환경 속에 살면서도 스스로를 진솔하게 바라보려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한 질문을 어영부영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실적'이라는 이유로 내면세계에 대한 관심은 가장 후순위로 밀려나곤 했죠.
그러나 삶이라는 것은 마냥 달콤하지도
마냥 고요하지도 않은 법 아니겠습니까.
대충 마음 편한 대로만 살면 그만이라고 여겼던 반복적 일상이 무너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는 것을 어리고 무지했던 과거의 저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자기중심적인 해석과 판단만을 줄줄 늘어놓았죠.
"대체 왜 이런 시련이 나에게만 오는 거지?"
고난이 닥치면 한 번쯤은 던져 볼 원망이 우리에게는 존재합니다. 불행은 다른 불행을 함께 가져온다고 했던가요? 각본이 정해진 듯한 평범한 불행의 공식이 저에게도 다를 바 없이 나타났습니다.
원망의 끝에 서있는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그 원인을 찾아내려고 혈안입니다. 그때 당시 저에게 세상은 거짓되고 간악하고 치사하고 무가치한 어떤 대상으로만 보였습니다.
무언가를 열렬히 미워하면 그 끝에는 오직 스스로만 남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그 상태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자신도, 자신의 경험도, 자신의 삶과 세상도 모두 미워하는 것 말고는 떠올릴 수 없는 상태였죠.
그렇게 자신과 세상을 동시에 증오하며 더 이상의 출구도 없던 그때. 무심코 봤던 유튜브 영상 속 댓글에서 어떤 문장을 발견합니다. 그 문장은 제 인생을 송두리 째 바꿔 놓았습니다. 그것은 모든 관점이 온통 바깥세상으로 향하던 저를 일으켜 세워 스스로의 내면으로 되돌리도록 만들었습니다.
삶이 불행한 것은 모두 자기 자신의 마음에 그 원인이 있다.
그때 당시의 저는 이 문장을 보고 분개했습니다. 모든게 다 내 탓이라는 것인가?
'대체 내가 뭘 어쨌다길래 내 마음이 원인이라는 거야.' 라며 전투적으로 접근했습니다.
이것은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모든 발생 원인이 당사자에게 있다고 하는 말이 아니었지만, 저는 마치 제 탓이라고 하는 것만 같아 상당히 화가 났었습니다. 어쩌면 뻔해 보이는 이 문장 안에 단순한 진리와 선명한 지혜가 담겨있다는 것을 저는 오랜 시간을 방황하고 혼란 속에 헤매기를 반복하며 돌고 돌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시각적 정보와 이미지입니다. 환경이 척박하고 여건이 곤궁할수록 인간은 내적 가치보다 외적 절망에 몰입하기 쉽다는 것을, 당시에는 분노와 절망으로 점철되어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으로서 자유롭기를 희망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사 거기서 거리라지만, 누구든 자신의 삶이 특별하기를 고대하기도 합니다. 무력하고 나약한 내면의 혼란 속에서 저는 그렇게 스스로를 찾아내기로 결심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것의 시작이 사소하고 개인적인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주 보잘것없고 어리석은 저의 욕망이 지금의 교훈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은 흡사 기적 같은 선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당시 저는 상당히 어리석고 무지한 상태였습니다.
돈이 없었고, 직업적 커리어도 없는 상태였고, 억대 빚이 있었으며, 트라우마의 증기가 폭발 직전이었으며, 가정 안에선 무관심 속에 고립되어 삶을 비관하고 구원을 기다리는 상태였으니 마음의 여유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개인적 욕망을 바탕에 둔 의도를 가지고 내면세계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좁은 식견과 정서적 혼란, 세상에 대한 분노를 더 해 자기 자신을 만나는 여정이 시작된 것이죠. 깨달음에 대한 동기가 타인을 위한 것도 아니었으며 목적이 순수하지도 않았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시작이었는지 짐작이 되시나요?
첫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감사할 것들을 찾으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도대체 내 인생에 감사할 일들이 뭐가 있다고 감사하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고, 감사하면 인생이 기적처럼 바뀔 것이라는 말에 잔뜩 현혹되기만 했었죠. 그렇게 '억지 감사 일기'를 쓰며 스스로 몇 주간 속이기를 반복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수가 없던 제 마음속 기만은 결국 탈이 나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겪을만한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것만을 경험한다는 사실에 얼만큼 동의하시나요?
제 삶에 대한 감사를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저는 스스로에게 작은 벌을 주고 말았습니다.
아르바이트를 위해 출근하던 겨울 아침,
그날은 유난히 도로의 군데군데가 미끄럽고 살얼음판이었습니다. 언덕 위의 집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내리막 길을 종종걸음으로 내려가고 있었죠. 당시에 대부분의 도로는 거칠었지만 하필이면 제가 디딘 곳이 두꺼운 얼음으로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주의가 지금 이 순간에 뿌리내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무심하고 성의 없게 뻗은 다리는 그 얼음을 딛고 힘없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또각"
뼈의 분리가 온몸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어쩐지 일어날 수가 없어 발목을 보니 '덜렁'거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스스로 겁이 없다 자신하고 있었지만 그 덜렁거림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마치 좀비 영화 속 다리 부러진 좀비 혹은 귀신 같았던 제 발목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꼭 제 마음속 심지가 부러진 것처럼 의지가 금방 꺾여버렸습니다. 분명 그날 저를 도와주셨던 아저씨가 계셨고 그 덕분에 응급차를 타고 병원에 갈 수 있었는데도 저는 그날부터 하루 종일 한 생각에 집착했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렇게 힘들기만 한거야!"
원망의 불씨는 잦아들기는커녕 세상에 대한 분노가 점점 커져갔던 그 시기로부터 제 자신을 스스로 구원하는 진실된 한 걸음을 내딛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주 많이 돌아왔지요.
우리는 우리 삶에서 각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보물을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보물이라는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해둬야겠습니다. 그것은 보물처럼 보이는 독약일수도 있고, 보물처럼 보이는 삶의 가르침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이런 자기 함정에 빠져버릴 수 있습니다.
삶은 우리를 사랑하기에, 인간을 지혜롭게 다듬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런 자기 함정들은 우리 자신을 다듬어 스스로를 깨닫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누구나 각자의 개성과 모양이 있으며
그것에 맞는 가지각색의 여정이 존재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우스꽝스러운 시행착오와 실수를 사랑으로 품어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앞으로 저의 이런 좌충우돌 수행기를 홀로 수행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들과 함께 차근차근 써내려가보겠습니다. 제가 그동안 빠져있던 자기 함정과 실수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교훈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일어났던 모든 경험과 시행착오들을 이 공간에 담담히 고백해보고자 합니다.
스승을 찾고 명상을 하지만 방구석 밖으로는 도통 나갈 생각을 하지 않으며 영성 '뽕'에 차올라 있던 게으른 재가수행자의 수행기를 낱낱이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어리석음이 여러분에게는 교훈으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는데요. 이 고백이 여러분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는 작은 지혜의 울림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국민 시를 마지막으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따뜻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