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기능사
도배기능사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 결과 발표는 아직이지만 미완성했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수 있다. 아쉽다. 제법 아쉽다.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처음부터 서둘렀으면 시간 안에 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어서다.
오늘 아침엔 건축목공기능사 시험을 봤던 금요일과 똑같은 시간으로, 평소보다 40분 정도 일찍 일어났다. 맛이 없어 방치되고 있던 오트밀로 아침 식사를 했다. 뜬금없지만 냄비에서 끓고 있는 오트밀을 보면서 전쟁 중이거나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느 유럽 마을의 나무로 된 집 안 부엌 모습이 떠올랐다. 제대로 먹을 것이 없을 때 먹는 음식 같아 보인 것이다. '오트밀로 아침을 때우는 이른 출근으로 바쁜 사람들은 전쟁 같은 삶을 사는 건가.' 오트밀 포장지에 쓰인 "바쁜 아침 어쩌고"를 보니 든 생각. 밥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로, 그렇게까지 사람이 바빠야 할 이유가 뭘까.
도배 과정 시뮬레이션을 방해하는 잡생각을 마치고 집을 나섰다. 춥지 않고 시원한 정도의 기온과 맑은 날씨에 기분이 좋았다. 2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해 시험장에 도착했다. 어제저녁 마지막 간이 연습 시간에 칼날을 갈아 끼우다 베인 왼손 검지가 욱신거려 신경 쓰였다. 목도 새롭게 뻐근했다. 컨디션이 좋지는 못하다는 게 느껴졌다.
초배라고 부르는 밑작업을 1시간 40분 걸려서 마쳤다. 내 기준 역대급 최단 기록이었지만 초배는 1시간 20분이나 늦어도 1시간 30분 안에 마쳐야 시험 시간 안에 완성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 감독관에 중간 검사를 받고 정배라고 부르는 벽지 바르기 작업을 시작했다. 시험 시간이 한 시간 남았을 때 남은 작업을 다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확신했다. 30분 남았을 때는 기권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도 모자랐지만 실격 사유에 해당하는 실수가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했다. 시험에서 허용되지 않는 방법으로라도 일단 실수를 커버해 놓고 남은 시간 동안 미친 것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그랬더니 마지막 작업을 마무리하기까지 5분 정도만 더 필요할 때 시험 시간이 종료되었다. 12시 20분이었다.
처음부터 뒤에 미친개가 쫓아오는 것처럼 달렸으면 완성을 했겠다는 걸 알았다. 그게 사무치도록 아쉬웠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 번 해 본 전 과정 연습에서 내 작업 시간을 40분 정도나 단축해야 된다는 걸 알았을 때, 그 이후로 내가 사실은 마음속으로 포기를 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시험 도중에 칼날을 교체하거나, 손가락에 밴드를 천천히 다시 붙이거나 하는 여유를 부렸던 이유는 '어차피 안 될 거'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속상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자랑스러운 점도 있었다. 스퍼트를 너무 늦게 시작했지만 절망적인 마지막 30분의 순간에도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 속도를 내서 끝까지 부딪쳤다는 것, 모의고사 때보다 30분 넘게 작업 시간을 줄였다는 것. 합격까지는 역부족이었지만 어쨌든 수정, 보완 과정을 통한 성과가 있었다는 게 뿌듯했다.
아쉬움과 후련함, 벅참을 동시에 느끼던 대기실 복도에서 동기 두 분과 인사를 나눴다. 고생하셨다고. 나머지 분들과도 인사를 했다. 응시생들 모두 얼굴이 벌겋고 머리는 땀에 젖고 눈은 풀려 지친 기색이 역력했는데 처음 보지만 서로에게 건네는 "고생하셨습니다" 인사에서 따뜻함과 힘을 나눠가졌다.
직후에 펼쳐지는 오후 시험을 위해 도배 부스를 깨끗이 청소하고 짐을 챙겨 이동했다. 집으로 가지는 않고 혜화에 있는 기지개 센터로 향했다. 이제 학교 시험공부를 해야 했다. 더 이상 미룰 날짜도 없었다. 기능사 시험 기간과 학교 기말 시험 기간이 겹쳐 있었다. SMAPxSMAP(기무라 타쿠야가 속했던 일본 아이돌 그룹 SMAP이 출연했던 예능)을 보고 지었다고 하는 토가시 요시히로의 『헌터x헌터』제목이 떠올랐다. 시험기간x시험기간.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 건 아마 손가락과 온몸의 통증 때문이겠다.
공부를 2시간 정도 하다가 버틸 수가 없어서 빈백에 누웠다. 안대를 쓰니 얼마 안돼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언제부터 이렇게 낮잠도 잘 잘 수 있는 인간이 됐는지 신기하다. 잠깐 자고 일어나니 몸이 뜨끈뜨끈했다. 빈백이 발열 기능도 있나 싶었지만 검색해 보니 내 체온이 갇혀서 그런 거라고 설명했다. 뭐가 됐든 찜질 같은 그 뜨끈함이 몸을 노곤하게 해주는 게 아주 기분 좋았다.
개설 첫 학기인 탓에 여기저기 수정이 필요한 [조직개발] 강의 자료로부터 도망 나와 쓰는 일기지만 오늘이 내일의 이불을 덮어 잠들기 전에 기록을 남겨서 다행이다. 최후의 양심으로 공부를 30분만 더 하고, 집에 가서 사용 기한이 3개월 남은 엔디펜이라도 한 알 먹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