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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뇽이 May 05. 2024

비오는 일요일에

이런저런 잡생각들(56)

 커버 이미지는 어젯밤에 먹은 닭강정. 닭강정 맵을 확장하는 중인데 재밌다. 닭강정 콜렉터 칭호 미션 12/30 정도 될까? 점찍어둔 새로운 닭강정 집이 한군데 더 있다. 쿨타임 돌면 거기를 가야겠다.


 시험 기간에 공부를 하면서 '내 글씨체가 엄마랑 비슷한가?' 하는 생각을 했다. 비슷한 부분이 있다. 아빠도 글씨 쓰기를 좋아하고 잘 쓰신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경필부도 하고, 학창시절 동안에는 글씨가 예쁘다는 말을 듣고 살았던 것이 개체의 독특한 특성은 아니구나 싶었다.  


 아빠도 요즘 붓글씨를 배우러 다니시면서 아빠의 흥미를 쫓아 살아가는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붓글씨"라는 말을 생각할 때, 자꾸만 '코리안 캘리그라피.' 하고 속으로 뇌까리며 실없는 웃음을 짓는다. '차이니즈 캘리그라피거든?', '붓글씨가 캘리그라피보다 훨씬 먼저거든?' 따지기 좋아하는 내 말대답은 무시해버린다. 


 또 시험기간에 내가 맹목적인 쓰기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으며 쓰면서 공부했었는데 그다지 기억에 많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엄마랑 나의 글씨가 비슷한가 하는 생각과 더해져서 내가 작년부터 노트북에 모아놓은 책 메모들이 엄마의 설교노트랑 겹쳐보이게 만들었다. 


 엄마는 예배당 맨 뒷자리에서 늘 노트에 설교 필기를 했다. 수년동안 모인 것이 20권 가까이 되는 것 같다. 몇년 전 이사를 할 때 "엄마, 이거는 다 가져갈 거죠?" 했더니 버려도 된다 하셨었던 게 의외여서 기억에 남아있다. 버리지는 않았고 이사 후 안방 책장 한 층에 모여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쓰여졌던 이후로 다시 읽히는 일은 없었는데 어쩌면 그것도 관성적이고 맹목적인 필기였을까? 하는 의심이 든 것이다.


 잊혀졌더라도, 다시 읽히지 않았더라도 썼던 순간 자체에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다시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놨다라는 것도 의미라면 의미일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엄마도 돌아보고 싶어지면 그것들을 꺼내어 읽어보실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다시 읽히는 일 없을 메모나 필기를 작성하는데 매몰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일까? 나는 강의를 듣다가 비슷한 내용을 다뤘던 책이 떠오르면 노트북 메모장을 찾아 다시 읽어보곤 한다. 책을 다시 빌리러 가지 않아도 돼서 가장 좋고, 형식적인 일회성 책읽기로 끝나지 않아서 좋다. 남겨놓은 기록을 유용하게 써먹었다는 이득도 놓치지 않아서 좋다. 남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시간만 버리고 허영만 채운 것 같다. 그리고 트위터나 인스타나 유튜브나 인터넷 커뮤니티는 생각, 사고방식까지 유행시켜버리는 면이 종종 느껴져서 그게 좀 매력이 없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책 속의 생각을 배우는 것이 일종의 홍대병처럼 생각될 때도 있다.


 어떤 상자에서 나오기 위해 다른 상자로 들어가는 남자의 인생을 그린 단편이 떠오르는 느낌도 없잖아 있지만.



 어릴 때부터 원했던 상자를 찾아서 들어갔다. 잘 맞는 상자다. 뚝섬에 가서 보드를 탄 것이다. 잘 타는 동아리 멤버가 신입 여자애만 트릭을 가르쳐줘서 아쉬웠다. 그래 내가 유례없는 아저씨 멤버라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어렵고 불편할 마음이 있을 걸 안다. 서운해하지 말아야지. 트릭용 보드를 크루저처럼 쓴 건 갔다와서 알았지만 재밌게 쌩쌩 타고 놀았으면 됐다. 점프대도 몇 번 올라타봤는데 제대로 내려와진 적은 없지만 시도해본 용기가 가상하다. 


 힘들어서 먼저 돌아간다고 인사를 하고 한강을 바라봤다. 작년 서울시 은둔고립청년 지원사업에 참여 확정이 되고 첫 활동을 나왔던 날, 나는 이곳에 처음 왔었다. 그 날 참 좋았는데. 청년들이 생각났다. 혼자였지만 언제까지 혼자라고 침울해할 수는 없다. 혼자서도 편안할 수 있도록 순간을 그 즐겨보았다. 그러고 찍은 사진에는 표정이 썩 괜찮아 보인다. 


'그 날 보드를 빌려 타고 내가 어떤 걸 좋아했는지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겨울엔 스노보드도 타러 갔고, 보드동아리도 가입했고, 스케이트 보드도 사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 거겠지.'


 학교로 돌아와서 닭강정을 먹고 2차로 한번 더 탔다. 뚝섬에서는 기가죽어 따라해보지 못한 몇가지 기초적인 트릭을 연습해봤다. 잘 안돼도 너무 재밌다. 그러다가 구석 쪽에서 진하게 풍겨오는 아카시아 냄새가 정말 너무 황홀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그만 "학교에서 좋은 냄새가 나요!!" 하고 살짝 소리를 질렀는데 알고보니 어둠 속에 사람이 둘 있었다. 그,그렇다구요. 마, 맡아보시라구요..

 



 뜬금없지만 요즘에 유치원에서 어떤 아이 몇 명의 모습에서 느낀 것이 있다. 방학 때 7세 반에 있을 때도 느꼈지만 지금 있는 5세 반(만 3~4세)에서 더 뚜렷하게 보이는 특징인 것 같다. 간혹 주변 애들보다 규칙같은 것에 더 민감한 아이들 "~하면 안돼~!" 하고 친구를 통제하다가 곧잘 싸우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 않기로 약속된 걸 잘 모르거나, 무시하고 자기 하고싶은대로 하거나, 거기에 동참하는 아이들끼리는 그렇게 싸울 일은 없다. 유치원을 못 다녀서 모르지만 나는 유치원에서 저런 모습을 보였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완벽주의 극복하기 특강에서 봤던 내용이 생각난다. 


 자신의 불완전과 실수를 자동적으로 찾아내고 작은 결함도 용서하기 힘듦.     

자신한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남들까지 자신의 잣대로 보게 되고 대인관계 갈등을 낳는다.


 유순한 사람이 되어보자. 볼까? 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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