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 라이브스튜디오 (영주시 부석사)
겨울은 사찰의 본모습을 가장 또렷하게 드러내는 계절이다. 나뭇잎이 떨어진 자리에는 건축의 선과 지붕의 곡선이 더욱 선명해지고, 고요한 공기 속에서는 시간의 깊이가 한층 짙게 느껴진다.
우리 불교사에서 사상적 전환점을 이룬 공간이라면, 그 의미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선다.
화엄사상의 발원지로서 국가적 위기 속에서 창건된 사찰은 역사와 철학, 건축 유산을 함께 품고 있다.
통일신라에서 고려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문화재는 이곳이 단절되지 않은 전통의 축적 위에 서 있음을 증명한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 라이브스튜디오 (영주시 부석사)
2월의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 불교사의 정수를 마주하고 싶다면, 지금부터 그 사찰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
“7세기 창건, 신라~고려 문화재가 한 곳에 모인 사찰”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 김지호 (영주시 부석사)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에 위치한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인 676년 해동 화엄종의 종조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화엄종의 수사찰이다.
의상대사는 당나라 유학 중 당 고종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 귀국하여 이를 알렸으며 화엄의 도리로 국론을 통합해 내외의 시련을 극복하고자 이 절을 세웠다.
이로써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발원지가 되었다. 절 이름은 불전 서쪽에 위치한 큰 바위가 아래 바위와 붙지 않고 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뜬돌’이라 불린 데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고려 시대에는 선달사 또는 흥교사로 불렸으며, 1916년 해체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묵서명에 따르면 고려 초기에 무량수전 등이 중창되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 김지호 (영주시 부석사)
이후 공민왕 7년인 1358년 병화를 겪었으나, 우왕 2년인 1376년에 무량수전이, 우왕 3년인 1377년에 조사당이 재건되었다.
경내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유물과 고려 시대 문화재가 고루 남아 있다. 무량수전 앞 석등과 석조여래좌상, 삼층석탑, 당간지주, 석조 기단은 신라 장인의 조형 감각을 보여준다.
고려 시대에 조성된 무량수전과 조사당, 소조 여래좌상, 고려 각판, 원융국사비 등은 사찰의 위상을 입증한다. 특히 무량수전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조사당 벽화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사례로, 현재는 유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무량수전 내부에 봉안된 여래좌상은 국내에 전래하는 최고의 소상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 이범수 (영주시 부석사)
또한 무량수전 서쪽 우물은 의상대사의 호법룡이 머물렀다고 전해지며 전통 신앙과 설화가 함께 전승되고 있다.
부석사는 연중무휴로 개방되며 입장료는 무료다. 주차도 가능해 접근성 면에서도 부담이 적다.
한겨울의 맑은 공기 속에서 천년 고찰의 건축과 유물을 차분히 살펴보며 화엄사상의 뿌리를 되짚어보는 시간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역사와 전통을 품은 사찰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